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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채 살아내어

by 잎새달 이레

어느 날,
그가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살고 싶지 않다고.


그 말은 바람처럼 들려왔다.
불쑥 스쳐가지만
분명히, 내 안 어딘가를 건드리고 가는 바람.


나는 그를 말리지 않았다.
어떻게 말릴 수 있을까,
같은 언덕 아래서 겨우 숨을 고르고 있는 중인데.


그의 마음은 무너지고 있었고
나는 이미 무너진 채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무너진 우리는 잘 안다.
다시 일어나는 일이
얼마나 더디고, 또 얼마나 아픈지를.


그러니 우리는 말없이,
그저 서로를 잠시 안아주는 일로
순간을, 시간을, 오늘을 건너기로 한다.


이유 없는 무기력은
날마다 천천히 퍼지는 안개 같아서
누구도 끝을 짐작할 수 없고,


어디서부터 물든 건지도 모른 채
어느 날 갑자기
숨이 차오른다.


그 안에 스며 있던 낯선 무게가,

결국 내 것이었단 걸


우리는 매일 스스로를 달래 가며
무너지고, 무너지면서도
다른 누군가의 벽돌을
조용히 다시 쌓아주는 사람들이다.


애석하게도
그렇게 우리는 살아간다.


누군가의 부서진 마음을 닮은 채
누군가의 생을 지탱하는 언덕이 되어.


이해받지 못한 말들이
가슴 안에서 쌓이고 쌓여
이젠 말조차 힘겨운 날이 오면,
나는 혼잣말처럼 되뇐다.


살아 있자고.


그 말을 하는 사람도
그 말을 듣는 사람도
매 순간들이 유서의 한 조각이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는 방황 중이다.

끝도 없이 흔들리는 중심 속에서

어쩌면
우리라는 사람은
무너진 자리에서

누군가를 안아주는 방식으로

구태여 살아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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