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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이 되어

by 잎새달 이레

나는 요즘

무엇이 되어야 할까를 생각하다가

그냥

없어지고 싶어지는 쪽으로 기울었다.


무언가 되지 못한 나보다

어디에도 없는 내가 더 가벼울 것 같아서.


마음에 바람이 부는 날이 있다.

유난히 깊고,

차고,

길게 스미는 날이 있다.


그럴 땐

자주 떠나는 상상을 한다.

목적지도, 남길 것도 없이

그냥 사라지고 싶은 마음만 안고

혼자 바람 드는 창가에 앉아본다.


그런데 알고 있다.

‘떠난다’는 말은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라

‘여기’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마음이라는 걸.


오늘도 위장이 뒤틀리고

머리는 안개처럼 흐려지고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지만

벌써 지쳐 있다.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은

죽고 싶다는 말보다

조금 더 조용한 언어다.


숨기기 쉬워서,

숨기다 보면 정말로 잊혀지는 감정이라서.


글을 쓰다가

생각들이 자꾸 흩어진다.

정리하려고 붙잡았던 문장들이

오히려 마음을 더 흐리게 한다.


당신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당신들이 있는 그 공간은

당신들에게 어떤 표정을 지어주고 있나요.


나는 요즘

나에게 어떤 말도 건네지 못한 채

시간을 넘긴다.


떠난다는 말로 감당하지 못한 감정들이

이렇게 또

하루를 흐려 놓는다.


갈구하는 것도 없으면서

늘 부족하기만 한 나는,

무엇이 되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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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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