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현숙 Oct 21. 2024

외로운 섬

콘퍼런스를 끝내고 내 마음이 맞닿은 곳

지난주, 샌디에고 컨벤션 센터와 주변의 상가들은 우리 회사 컨퍼런스로 북적였다. 우리 회사의 연례행사 중 규모가 가장 큰 행사로 올 해는 12,000 명이 참가했다. CEO와 중역들은 회사의 업적과 향후 비전을 설명하고, 고객들과 직원들은 500여 개 이상의 수업을 선보였고, 액스포관에는 우리 회사 제품뿐 아니라 타사의 제품 데모들도 볼 수 있었다. 그 이외에도 워크숍, 이벤트, 브리핑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모임들을 통해 네트워킹이 이뤄지고 새로운 정보가 교환되고, 업계의 흐름이 파악되는 등, 미국 테크기업의 방향을 볼 수 있는 소우주 같은 곳이었다.


나는 수업을 통해 우리 팀이 맡고 있는 제품의 로드맵과 방향에 대해 설명했고 세 번의 미팅과 워크숍을 통해 고객들의 피드백을 들었다. 간간히 다른 지역에서 근무하는 팀원들과 만나기도 하고, 관심이 가는 수업을 들었다. 특히 엑스포관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는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우리 팀이 만드는 제품이 타사의 제품의 데모에 나오거나 우리 제품의 릴리즈에 대해 긍정적인 피드백을 들을 때였다. 마지막 날, 목요일 저녁에는 컨벤션 센터 주변에 있는 큰 거리를 막고 콘서트가 열렸다. 길거리 곳곳에 다양한 음식과 술을 제공하는 부스가 있었고, 거리를 활보하며 먹고 마시고 음악을 들었다. 몇몇 사람들은 흥을 감추지 못하고 몸을 들썩이며 춤을 추기도 했다.


샌디에고를 뒤로하고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오는 금요일. 모든 것이 성공적으로 끝나 마음을 내려놓을 줄 알았으나 공교롭게도 내 마음은 부대낌으로 가득했다. LinkedIn에는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흥분어린 포스팅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고, 회사 내부 Slack도 마찬가지였다. 내 마음도 동요되어 함께 축하하고 기뻐했으면 좋으련만, 내 마음은 아무도 모르는 섬에 혼자 서 있는 것 같았다. 내 머릿속은 왜?...라는 답을 찾으며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녔다.


나는 아직 내 매니저와 돈독한 관계를 맺은 상태가 아니다. 나와 함께 일했던 매니저가 올초에 회사를 떠나고, 지금은 그의 예전 상사가 내 매니저로 있다. 그는 커뮤니케이션이 뛰어나며 일의 분배를 효과적으로 해내는 사람이다. 자기의 팀에 대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인간적인 매니저는 아니지만, 일의 효과는 좋은 사람이다. 윗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중간 리더로서 그의 능력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있지만, 나는 여전히 그와의 관계가 껄끄럽다. 그에게서 내 능력과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신뢰보다는 의심이 앞서고, 코칭보다는 답이 애매한 충고를 하는 것이 편한 그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이 내게는 영 껄끄럽다.


이번 행사에서 내 프레젠테이션이 끝났을 때도, 그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잘했다거나 못했다거나 정확하게 말이 없었다. 내가 어땠냐고 묻자, 행사가 끝나고 나중에 회사에 돌아가서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아.. 할 말이 많은 게로구나. 내 프리젠이션이 끝났을 때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수고했다는 말이었다. 칭찬을 바랐던 것도 아니고, 그저 내 수고에 대한 인간적인 인정이었다. 그래서였을까? 프리젠이션이 끝난 이후에 내 마음은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누구도 나를 지지하는 것 같지 않았다. 저만치 보이는 육지에서는 휘황 찬란 파티가 일어나는 데, 이 작은 섬에 혼자 오롯이 서 있는 느낌.


이 불안함은 내 머릿속 이곳저곳을 헤매며 더 깊은 골짜기로 파고들었다. 이렇게 내 커리어는 끝나가는 걸까? 이제는 더 이상 치고 나갈 수 없는 한계에 다다른 걸까? 테크니컬한 배경이 없는 내가 여기까지 달려오긴 했는데, 이제 막다른 골목에 와 있나? 회사를 떠날 때가 된 걸까? 불안한 마음에 다른 회사의 오프닝을 찾아보는데,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마음은 좁아 들고 자신감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 현실에서 도피해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고 싶은 마음. 번아웃일까? 우울증일까? 50대를 지나는 여성들이 겪는 호르몬 변화일까? 내 정신과 신체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긴 건 아닌가? 더 큰 구조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건가? 이곳에서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중년의 친구들, 우울증 약을 복용하는 것이 너무 흔해 마치 유행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해야 하나?


도움이 되지 않는, 근거 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내려가면서 다 끝나고 집에 올라오는 금요일, 얼마나 신이 날까 기대했었데, 내 마음은 더 복잡하고 어둡기만 하다. 다음 주 어떻게 견뎌내나? 내 50대의 직장생활, 여전히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 내 직업, chat gpt로 사라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