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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드 Jul 30. 2024

이제는

2024.06.03

  토하는 게 하나도 괴롭지 않다. 생리적인 반응으로 눈물이 줄줄 나오지만 광대 언저리에 뭉쳐서 떨어질 때 말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위장이 소화하는 행위보다 도로 내보내는 행위에 더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지만, 입 꾹 닫고 살면 문제 될 것 없다. 아직까진 그렇다. 오늘은 마라탕에 꽂혔다. 먹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먹고 운동 좀 하면 되지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음식이 좀 들어가니까 속이 콕콕 아팠고...... 마라탕 먹을 땐 항상 이랬던 것 같기도 하고. 만 팔천 원이나 썼는데 만 원 어치쯤 먹었고 구천오백 원 어치를 도로 뱉었다. 어떻게 이렇게 비경제적일 수가. 돈이 너무너무 아깝지만 지나간 비용은 돌아보지 않는 게 여러모로 좋다. 다행인 건 어느 정도 토하고 나면 속이 편해진다는 점이다. 매 끼니 이런다면 좀 곤란하긴 할 것 같다.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주 토하게 된 이후로 입덧캔디를 먹고 있다. 전에 사탕에 꽂혀서 이것저것 주문할 때 함께 주문한 사우어 캔디인데 신 사탕이 입덧에 좋다고 한다. 입덧의 대표 증상 하면 역시나 토하는 거니까...... 토기를 진정시키는 작용을 할지도 모르겠다. 자몽 맛이 특히나 맛있다. 자몽 그 자체와 자몽 맛을 내는 다양한 음식들을 좋아하게 된 건 아마도 혈압약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믿을 만한지는 모르겠는 인터넷 정보들에 따르면 어떠한 약들-특히 혈압약들-과 자몽은 상성이 좋지 않아서...... 아니지, 너무 좋아서? 함께 먹으면 큰일 날 수 있다고 했다. 자몽은 먹으면 안 돼. 그 공식이 생기고부터 나는 자몽만 보면 달려들었다. 무슨 일이 나라고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안 된다고 하니까 먹고 싶었다. 좋아하게 됐다. 불가항력이다. 하지만 얼마 전 의사한테 자몽 먹으면 안 돼요? 하고 물어보자 의사는 정말 말 그대로 코웃음을 치며(......) 그런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했다. 어쨌거나 나는 지금도 자몽 맛 사우어 캔디를 입에 물고 있다. 고도로 발달한 신맛은 짠맛과 동일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약을 다시 먹고부터 엄청난 갈증에 시달리는 중이다. 갈증인지 입마름인지 모르겠다. 둘 다일 수도 있다. 버틸 만한 갈증이다. 입이 말라서 자다가 깰 때는 좀 괴롭지만 미칠 만큼 괴롭지는 않다. 익숙해지면 사라질 현상이다. 전에도 그랬으니까. 내가 약을 먹다 말다 하면 이 갈증도 지속될까? 세상 어딘가엔 견딜 수 없는 갈증에 평생 시달리는 사람도 있겠지.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면 내가 먼저 괴로워서 돌아버릴 것 같다. 가끔 이런다.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들, 죽어도 죽어지지 않는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 이건 공감일까. 넘겨짚는 것도 공감일까. 나는 누가 날 넘겨짚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그럼 사람들은 내가 속마음을 들켜서 반응한다고 생각한다. 실정은 그 반대다. 정말 하나도 나의 마음과 같지 않아서 화가 난다. 내가 아니라고 해도 저 사람은 이미 나의 아님을 아님으로 받아들일 것을 알아서 화가 난다. 넘겨짚음, 이라는 행위는 절대 가볍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주팔자나 예언 같은 것에 열광한다. 이상한 일이다.


  아이패드 배터리가 너무 빨리 닳는 것 같다. 요 며칠 사이에 더 그렇게 됐다. 배터리 효율이 100 퍼센트일 때도 시원찮았는데 삼 년인지 사 년인지 쓴 지금은 정말 어마무시하게 빨리 닳는다. 자기 전에 만땅으로 충전해 두었는데 퇴근해서 보면 배터리가 반절이다. 반나절 가만히 두는 것만으로도 50 퍼센트가 닳는다는 소리다. 배터리 교체(인지 리퍼인지 아무튼 덜 닳게 하는 것)는 대략 이십만 원 정도. 그만 한 가치가 있나? 나는 어떨 때는 너무 쉽게 소비를 하면서 어떨 때는 절대 소비하지 않는다. 저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가 다르고 기회비용과 기댓값이 다르니까 어쩔 수 없다. 삶의 질 향상. 일상의 질 향상. 향상에 투자하는 것은 절대 후회할 만한 일이 아닌데.

  이 글을 쓰다 말고 배터리성능을 확인했다. 82. 몇 달 전 수치 그대로다. 내 체감이 그렇지 않은데 왜 기계는 그대로일까. 분명 성능이 떨어질 때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혼란스럽다. 이런 것도 배신감인가?

  오늘 학과장이랑 싸웠다. 말다툼 조금 한 게 아니라 정말 대판 싸웠다. 계급장 떼고 덤빈 수준. 버릇없이 굴었다고 생각한다. 사과하는 게 좋을 것 같지만 적당한 타이밍을 못 잡았다. 뭐라고 사과하지? 아까는 제가 너무 감정적이었어요, 죄송합니다. 사람은 다들 남 탓을 한다. 나도 남 탓을 한다. 학과장은 내 탓을 했고 나는 학과장 탓을 했다. 당장 내 방으로 올라와, 하는 말을 들었을 땐 어디 한 번 제대로 붙어 보자는 마음으로 씩씩대며 나갔는데 막상 얼굴 보니 둘 다 험한 말은 못 했다. 점잖게 대화했다. 서로 일정 부분의 책임이 있는 것으로 하고 끝냈는데 점심시간 끝나자마자(정말로 한 시 정각이 되자마자) 학과장이 사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와서는 나를 이렇게 만든 건 네 잘못이야, 했다. 너무 웃겼다. 다방면으로 좀 귀여웠다. 소리를 아주 크게 지른 것도 아니고 언성을 좀 높인 수준이었는데도 스트레스가 한가득 풀렸다.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누가 무슨 개소리를 하든 웃으면서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싸우는 행위를 무지 좋아한다. 엄마한테 학과장하고 싸웠어, 하고 말하면서 혼날 것을 각오했는데 엄마는 잘했다고, 할 말은 하고 살라고 했다. 혼날 것 같으면 말을 안 꺼내면 될 텐데 나는 왜 자꾸 이실직고할까. 어릴 때부터 그랬다. 나는 들키면 혼나고 아니면 말 일들 앞에서 먼저 말하고 혼나버리기를 택했다. 엄마가 무서웠던 거지. 지금도 무서운가? 나는 아마 평생 엄마를 두려워하면서 살 것이다. 그림자란 사라지는 법이 없다.

  퇴근길에 태희가 그런 말을 했다. 이번도 저번도 네 탓 없잖아. 그 말을 보니 기분이 살짝 가라앉았다. 살면서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고, 미친 개들한테 물릴 일이 종종 있었는데 거기에 정말 내 탓은 하나도 없을까. 그럴 리가 없다. 비율로 따져서 더 큰 쪽이 잘못, 이라고 한대도 내 잘못이 아니라곤 못 하겠다. 미친 개 쪽으로 손을 아주 조금도 뻗지 않았다고 할 수가 있나? 눈이 마주치지 않았다고 할 수가 있나. 때로는 눈을 마주쳐버리는 것도 잘못이 된다고 한다. 누군가는 헛소리라고 하겠지만 나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구멍을 엿봐선 안된다. 함부로 동정해선 안된다. 하지만 나는 자꾸 남의 구멍을 엿보고 싶고, 남을 함부로 동정하고 싶다. 위선이 좋다. 그러므로 위악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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