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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드 Aug 30. 2024

모든 계절이

2024.08.30


  글을 쓰며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건 어떠한 정신착란과 같은 느낌을 준다. 실존하지 않는 세계를, 보고 듣고 만질 수 없는 인물을 레고처럼 조립하며 생기를 얻는다는 건 신성모독적인 행위다. 모든 소설이 각각의 창세기라면, 신은 성경을 써내려가는 사람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계약만료로 일을 그만둔 지 딱 한 달이 되었다. 반년 정도 실업급여가 들어온다. 부모님은 그동안 자격증을 따라고 했다. 달리 할 일이 없으니 나도 그러려고 했다. 그러다 문득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찾아오면 찾아오는 대로, 오지 않으면 오지 않는 대로 불안한 이 창작욕은 내가 이제 더는 글을 쓰지 않게 되는 걸까, 체념하려 들 때마다 돌아온다. 무슨 일을 하든 일상과의 분리가 전혀 안 되는 나는, 글을 다 완성하기 전까지 연기처럼 자욱한 덩어리가 되어 세상을 부유한다. 유리가 조각나듯 뇌 속이 파편화되어 멋대로 빛을 투과시키고, 반사하고, 머금는다. 나는 끝없이 방황한다. 이 글을 쓰면. 이런 글을 쓰면. 앞으로의 나의 글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정의되지 않은 정체성을 손안에 품고서 나는 전전긍긍한다.

  비로소 살아있다는 환희. 여기도 저기도 그 어느 곳도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며 새벽을 거닌다. 각성 상태가 된 뇌는 쉽게 잠에 들려 하지 않고, 밥은 아침점심저녁에 맞춰 먹어야 한다든가 잠은 어두울 때 자야 한다는 공식의 강박에서 좀 벗어나기로 했다. 사회가 정한 속박에서 자유로워졌다. 이제야 좀 사는 것 같은데, 이제야 내가 나처럼 사는 것 같은데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을 것이다. 밤을 새우고 새벽을 뛰어다니고 낮을 경계하는 나 같은 인간을.

  한동안 글을 좀 쓰려고 해. 내 말에 엄마는 호흡으로 부정했다. 숨을 멈추기만 했는데도 앓는 소리가 절로 들리는 듯했다. 끊자. 다음에 들린 말은 그게 다였다. 아빠는 내게 글은 정신 나간 것들이나 쓰는 거라고 했다. 엄마는 아마, 내게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고 말하고 싶어할 것이다. 살아본 적 없는 도시의 해본 적 없는 업무가 적힌 일자리 지원 링크를 보내 주는 엄마는, 나라는 인간을 멸시한 채 자신만이 행복한 인형의 집을 꾸린다. 이럴 거면 나를 내려놓지. 이럴 거면 나를 없는 사람처럼 깔끔히 도려내어 무시해버리지. 이럴 거면 나를 사랑한다고 굳게 믿지 말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정처 없이 방황하는 나를 무엇이 이 세상에 잡아 두는지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는 내 가족은 자꾸 나를 짓밟는다. 이런 내게 엄마는 말한다. 그러는 넌, 나를 생각하니? 하지만 난 남의 마음 안심시키려고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이상하다. 자식을 불편한 집에 가둬놓고, 웃을 일 없는 직장에 넣어놓고 안심하는 부모 같은 건. 정말 이상해.

  고등학생인 사촌동생이 '나도 먹고는 살아야지' 하며 공부에 전념하겠다는 다짐을 전했다는 이야기를 우스갯소리로 꺼냈다. 걔가 벌써 그런 농담을 한다. 귀엽게. 엄마의 대답은 이랬다. 너보다 낫네. 가끔은 주변에 그런 질문을 한다. 내가 그렇게 막장으로 사느냐고. 대학을 졸업했고 꾸준히 일을 했고 뭐 하나 이룬 게 없더라도 손 놓고 쉰다고 할 만큼 나태하진 않은 것 같은데 내가 정말 그렇게 부모 가슴에 비수 박을 만큼 대책 없이 살며 남들 앞에서 잡고 있던 손을 뿌리칠 만큼 살이 쪘냐고. 우리는 서로를 할퀴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심장을 난도질하기 위해 나를 낳은 거라면, 나는 무엇을 하기 위해 태어나야만 했을까?

  행복하고 싶다. 내 행복에 엄마가 바라는 안정은 없다. 글을... 쓰다가. 아니, 역시 잘 모르겠다. 그래도 글 쓸 때만큼은 좀 즐거운 것 같은데. 내가 막 웃고 있는 것 같은데. 글 쓰는 나를 싫어하는 가족이라니. 가족이 내 글을 읽을 생각을 전혀 안 한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장점임과 동시에 단점이다. 학창시절의 내 글을 읽었더라면 우리는 어긋남 없이 화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기대하고 또 기대하다가 실망하길 반복하는 내가 한 번쯤은 체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읽지 않으니까 이런 글도 쓸 수 있는 거겠지. 쓰는 모든 일기가 유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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