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31
먹은 것을 다 토했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먹지 않으면 될 텐데. 토할 걸 알면서도 식욕은 돈다. 욕망이라는 건 다 이렇게 사람을 추접하게 만든다. 요리를 잘하면 좀 다를까? 맛도 형편없고 양도 들쑥날쑥인 음식이라 먹고 나서 속이 안 좋나. 물론 최근 계속 속이 안 좋긴 했다. 약 다시 먹고는 좀 나아지는 것 같기도 했고. 스트레스에 취약한 몸이라는 건 여러모로 거지같다. 굶어도 아프고 먹어도 아프고 조금 먹어도 많이 먹어도 적당히 먹어도 그냥 뭘 해도 아프다. 칼로 몸을 난도질하는 상상을 자주 하듯 먹은 것을 게워내는 상상도 자주 한다. 목구멍이 열렸는지 이젠 얼굴도 그다지 붓지 않는다. 원래는 붕어눈이 되고 눈가의 핏줄이 다 터졌었는데. 머리는 좀 지끈거린다. 압력 때문인 것 같다. 얼굴형과 목소리가 좋지 않은 형태로 바뀔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동안은 음식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먹으면 엄마아빠가 싫어하는데. 이걸 먹으면 슬퍼할 텐데. 내 입에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길 바랄 텐데. 그런 생각이 강해지면 오히려 음식이 당겼다. 식이장애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시작된다. 대책없이 굶고, 억지로 먹고, 토하고, 또 먹고. 인간은 생각보다 이성적이지 않다. 내가 지금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한다. 그건,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비극이 당장에 한꺼번에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느리게 망가지고, 천천히 추락한다. 갑자기 물에 빠진 사람은 헤엄쳐 나오려 하겠지만 꾸준한 속도로 늪에 당겨진 사람은 알면서도 잡아먹힌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꾸준하게 깨닫고 있는 점인데, 나는 현장에서 직접 겪고 느끼는 것보다 글로 읽는 것을 더 좋아한다. 여기에는 아주 많은 이유가 붙겠지만 깊게 생각하거나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예를 들면 여행. 새로운 장소에서 바다를 보고(나에게 여행의 제1요소는 바다이다) 바람을 맞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물론 좋지만...... 좋은데. 남들만큼 즐겁지는 않다. 내가 있을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따지고 들자면, 이 세상 어디에도 내가 있을 곳은 없다. 그래도 저번 부산 여행 때 친구의 추천으로 갔던 카페 하나는 기억에 남는다. 거기 단호박 빙수 또 먹고 싶다.
주말에 뭐 하냐는 질문을 들으면 그냥 있는다고 답한다. 그냥. 변화 없이 그대로, 조건도 의미도 없이 같은 형태로 나는 있어 왔다. 잠으로의 도피. 자는 동안에는 노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한다. 그야 나는 엄청 자니까. 주말에 어딘가 갈까, 싶다가도 갈 곳을 정하지 못해 침대에 있길 택한다. 타지에 간다면 교통비가 든다. 교통비 만큼 좋은가, 그건 아닌 것 같다. 어딜 가도 똑같다는 걸 안다. 같이 갈 사람이 있는가, 그것도 없다. 타지에 있는 사람에게 내가 찾아갈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 사람은 나를 만나 즐거울까? 나는 함께 있는 사람을 즐겁게 해 줄 만큼 유쾌한 사람이 아니다. 오늘 문득 백일장에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해 본 (비교적 남들에게) 낯선 행위고, 매일같이 백일장에 다니던 시절의 내가 즐거웠던 것 같고, 이동의 확실한 목적이 생긴다. 그런데 너무 멀거나 너무 이르거나 너무 가성비가 떨어져서 관두고 만다. 어쩌면 나는 효율을 중시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완벽주의자라고 해서 일을 완벽하게 하는 건 아닌 것처럼, 효율을 중시하지만 비효율적인 사람인 거지.
내일은 또 뭘 먹어야 할까. 또 뭘 욱여넣고 얼마나 토할까. 내장을 모두 잘라내서 던져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