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 22
나는 지금 시외버스 첫차를 타고 고향에 가고 있다. 밤새워 입사 지원서를 쓰고 나니 딱 첫차 타기 좋은 시간이 됐다. 친구들끼리 타임어택이라 부르는 아슬아슬하게 도착하기 게임을 이번에도 했다. 터미널까지 아예 뛰었으면 몸에도 좋았겠지만 무거운 신발을 신는 나는 오래 뛸 수가 없고...... 지하철의 힘을 조금 빌렸다. 어딘가에 지원할 때 이렇게 심장 뛴 적이 없었는데, 나는 제법 변변한 직장이 갖고 싶은가 보다. 어쩌면 시험 삼아 먹어 본 고함량 비타민 탓일 수도 있지. 요즘 너무 자주 잊어서, 자주 깜빡거리고 잃어버려서 기억력에 좋다는 비싼 영양제를 샀다. 그것만 산 건 아니고 오메가3와 마그네슘도 샀다. 염증 때문에 몸에 낭종이 자꾸 생겨선 사라지지 않는다. 술을 마시면 안 된대서 안 마셨는데, 막상 마시니 오히려 염증이 사그라들었다. 사람의 몸은 쉽게 착각한다.
충동을 조절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걸 안다. 아는데...... 참지 못하고 사람을 때린다든지, 뛰어내려 버린다든지, 뭐 그런 것만 아니면 다들 이 정도는 하고 살지 않나. 나는 자주 나를 망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든 잘 될 거라는 근거 없는 착각에 빠진다. 사람의 정신도 쉽게 착각한다.
왜 집에 오려 하질 않아? 가족들이 돌아가며 하는 그 질문의 답은 간단하다. 살을 빼지 못했으니까.
당신은 내게 전화할 때마다-그러니까 매일- 살이 빠젔냐고 묻고, 내가 당신을 배신하고 있다 말하고, 빼지 못한다면 돈을 내놓으라 하고, 무엇을 먹었냐 묻고 먹었다면 먹지 말라고, 먹지 않았다면 먹으라고 한다. 이런 데 혼란스러워할 나이는 지났다. 하지만 어린 나는 소리지르고 사랑하고. 때리고 울고. 밀어냈다가 안는 당신 때문에 혼란스러웠겠지. 흔히 회피형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다들 끔직하게 싫어한다. 나는 끝까지 쫓아갈 것이다. 나에게 그래 주길 바라니까.
어쨌거나 나는 여전히 자주 토한다. 먹고 토하는 것과 먹으려고 토하는 것과 토하려고 먹는 것의 경계가 불분명해진다. 토할 때는, 글쎄. 언젠가 쓸 소설 구절들이 떠오른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내가 가족과 마주하며 사는 것은, 내 생에 큰 이변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엄청나게 즐겁지 않으면서. 만나면 후회하고 전화 끊으면 울고 싶으면서. 며칠 전 늦은 약속에 가느라 버스에 타 있었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 어디야? 버스. -여기 오는 거야? 지친 목소리의 엄마가 한순간에 밝아져서 나는 덜컥 무서웠다. 그래서 지금 집에 가고 있나 보다. 아니라는 말에 엄마가 화가 난 목소리를 해서. 나는 타인의 말투와 표정에 쉽게 휩쓸린다. 자꾸 나를 잃어버린다. 어디로 휩쓸려 갔는지 모르겠어서 새로운 나를 재구성한다. 잃어버린 나는 영영 간다. 어딘가에 표류한 채 허공을 보고 있겠지.
갑자기 속이 좋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