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4
내일은 바쁜 날. 하지만 우려한 만큼 바쁘진 않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정해진 것보다 한 단계 높은 악을 상상한다. 악이라고만 하니까 이상하다. 하지만 최악이 아닌 걸 어떡해.
오늘은 퇴근길에 책을 판 돈으로 빵을 사 왔고, 별로 맛있게 느껴지지도 않는(사실은 매우 짜고 달고...... 그뿐이었다) 그것들을 멍청하게 여물처럼 씹어 삼킨 후 변기에 몸을 숙였다. 그러니까 이제는...... 이제는 정말 이게 하나의 습관이자 질병으로 자리잡은 것 같아. 먹고 토하기. 먹고 싶지도 않으면서 습관처럼 먹고 습관처럼 토하기. 토한 후의 나는 꼭 도깨비 같다. 정확히는 일본의 오니 같다. 도깨비와 오니는 다르다. 차이가 극명하다. 하지만 나는 두 언어를 모두 사용하니까 차이를 두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한국 귀신 중에는 처녀귀신과 가장 비슷할 것 같다. 머리를 풀어헤치지는 않았지만.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머리 만큼은 질끈 묶고 토하지만. 세면대의 짝꿍은 거울. 후지고 사특한(사특이란 단어를 어제 처음 알게 됐는데 써먹고 싶었다) 낡은 술집 화장실이 아니고서야 세면대와 거울은 언제나 함께 있다. 토를 하고 나면 세수를 해야 하고, 나는 깔끔하게 토할 줄 알게 되어서 입을 헹구기보단 세수가 하고 싶어진다 입안보다 얼굴이 더 엉망이거든, 세수하기 전에 손을 한 번 씻어야 하고, 그러려면 거울을 마주봐야 한다. 거울 속의 나는 눈이 부리부리. 빨갛고 부었고 튀어나왔고 충혈됐고 눈물이 고였고 눈꺼풀이 진하고 슬프다기보단 화가 나 보인다. 원한을 가진 채 지상에 오래 떠돈 귀신 같다. 거울 속 나와 눈이 마주치면 웃어보게 된다. 나는 독이 그득한 귀신의 눈을 하고 웃는다. 얼굴이 일그러져 보인다. 내일은 바쁜 날인데. 평소보다 사람들을 많이 마주칠 테니 평소보다 아주 조금은 더 예뻐 보이고 싶은데. 갈수록 덜 붓는다곤 해도 부을 것이다. 부을 부을 붓 붓. 신기한 건, 속을 다 게워내도 똑같이 배가 부르다는 사실 하나.
오늘은 어쩐지 편두통을 불러오는 시집 한 권과 표지가 홀로그램틱한 외국 작가의 에세이 한 권을 읽었다. 솔직하기 때문에 외국 작가들 글을 좋아했는데 요즘은 읽다 질려버린다. 솔직한 이야기들은 때로 변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