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7
수요일 밤에 수면제를 먹고 잔 후 목요일을 통으로 날려보냈다. 금요일은, 그러니까 오늘은. 예정보다 두 시간 일찍 영화를 봤고 오랜만에 나의 박애주의적 취향을 벗어나는 영화였기에 조금 피로해졌다. 여러 행사가 잡혀 있는지 충장로도, 문화전당 앞도 붐볐다. 춤 관련 무대 행사도 있는 건지 댄스팀이 엄청나게 많았다. 나는 언제부턴가 댄스팀의 춤을 잘 보지 않는다. 매체로 보는 건 괜찮은데 직접 보는 건, 뭐랄까. 껄끄럽다. 기분이 가라앉는다. 나는 춤을 추고 싶었을까? 그렇게 잘하지도, 무엇보다 즐기지도 못했는데. 어제는 오랜만에 좋아하는 작가의 만화를 다시 읽었다. 그때는 있고 지금은 없는 것. 언제 어디서 어떻게 없어졌는지도 모르게 흘러가버린 것. 나만의 일기처럼 세상이 어떤 색채를 담은 생물처럼 보였는데, 분명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저 풍경뿐인 것. 내가 뭘 해도, 어떻게 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 내가...... 그만큼 반짝였다면 사람들도 알았겠지. 엄마는 내가 만화를 좋아한다, 고 하면 싫어하겠지. 너는 이제 애가 아니라고 말하겠지. 하지만 나는 주기적으로 같은 만화를 보고 또 본다. 좋아서 보는 것도 있겠지만 어떠한 확인의 종류다. 내가 아직 나를 잃지 않았다는 것. 이런 걸 감성이라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의 감성이 달라지거나 아예 잃는 것을 경계한다. 그땐 정말 시체보다도 못한 껍데기가 될 것이다. 왜, 나는, 마음에 드는 작품들을 보면. 그것들을 보고 더없이 쓸쓸해질 때면. 그래도 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누군가들은 죽어도 읽지 못할 행간인 거다. 그런 때 너무 외롭지 않나? 도대체 외로움을 어떻게들 견디고 살지.
내 이야기를 하는 건 독이라고 했다. 그 원리를 이해하고 있다. 원인과 결과가 극명하다. 그럼에도 쓴다는 것. 요즘 나는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그 행위에 대해. 나는 살아 있나. 살고 있나. 나는 살아갈 생각이 있나. 살아낼 의지가 있나. 어쩌면 죽지 않을까. 나는 정말로 내가 스물에 죽을 줄 알았고 그게 이렇게 어영부영 미뤄졌다는 게, 가끔은 신기하고 가끔은 원망스럽다. 아마 난 일기도 뭣도 아닌 이 글들을 유서로 사용하고 싶은가 보지. 우울감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의 나는 예민해도 우울하진 않다. 그러니까, 나는 달리 말할 것도 없이 순도 높게. 단지 죽고 싶은 것이다. 이런 마음은 올바르지 않다고 하겠지만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사람이 한 명쯤은 있어야지. 나는 남들을 그렇게 받아들이는데. 그대로. 부정하지 않고. 너는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구나. 네가 그러면 됐다. 그렇게.
수요일에, 그 바쁜 날에. 밥을 정말 맛있게 먹었다. 행사 후 남은 도시락을 뒤늦게 먹었는데 입에 맞았다기보단 행위로써 맛있게. 누군가 봤다면 저 사람 정말 배고팠나 보다, 그런데 정말 복스럽게 먹네, 할 것처럼. 하지만 맛은 별로였다. 특히나 맛없기 힘든 계란샌드위치가. 이건 진짜 말하고 싶었어. 맛이 없었으니까. 그러고 보면 점심은 토하지 않는다. 점심이냐 저녁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을 마주할 상황이냐 아니냐겠지만. 수요일은 필사적으로 참았고(조금 불안했지만) 목요일은 날려먹었고, 금요일. 오늘은 역시나 게워냈다. 정신을 빼고 먹나 싶어서 양을 줄여도 봤다. 그게 문제는 아니었다. 내가 먹는 음식의 반절 이상을 매일 토하고 있다는 걸 알면 가족들은 속상할까? 속상하겠지. 하지만 내가 무언가를 삼키는 행위 자체도 속상할 것이다. 내가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을 더 좋아할 수도 있다. 그럼 결국엔 플러스마이너스 제로. 먹었지만 먹지 않았음, 의 상태가 되는 거니까 안심하지 않을까? 사특하다. 사특하기 그지없다. 저번엔 억지로 우겨넣은 단어였는데 이번엔 제자리를 찾았다. 무엇보다 토하는 게 괴롭지 않고. 내 몸 안팎에 어떠한 상흔이 남지 않는 것 같고. 요즘은 토하지 않고 음식을 속에 그대로 두는 게 더 힘들다. 거북한 느낌이 든다. 어딘가 문제가 있는 거지. 하지만 언제는 안 그랬던가. 내가 어떠한 증상을 호소하면 엄마는 언제나 말했다.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잊고 살다 보면 사라진다고.
광양에 내려가게 되면 그때는...... 정말 주저하지 않고 죽어버릴 것만 같다. 누구나 안 그렇겠냐는 반론이 날아오면 할 말이 없어지는 대목이지만, 나는 어딘가에 묶여 있을 사람이 못 된다. 좋아하고 말고의 범주가 아니라 견딜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려가면 남자 만나라 할 거고. 남자 만나면 결혼해야 하고. 상상할 것도 없이 그냥 그 두 문장만 놓고 봐도. 그건 내 삶이 아니다. 그때가 되면 나는 정말 송두리째 빼앗긴 인형이 될 거야. 나에게 내가 남지 않을 거야. 내가 나를 잊어버리면 그땐 정말...... 끝인 거지. 죽고 나서도 이어지는 세계가 있다면 나는 선택할까? 그 세계에서 깨어난 나는 이렇게 말할 것 같아. 왜요? 도대체, 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