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13
덥다. 덥고 무료하다. 심심해서 쓰는 글이다. 할 일이 없다. 하고 싶은 일도 없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있는데 글자를 탐닉하진 못하고 있다. 전엔 아무리 마음이 안 생겨도 글자는 꼬박꼬박 읽어 넘겼는데 이젠 그러지 않는다. 안 읽히면 마는 거지. 언젠가 읽을 거란 생각도 안 해. 그냥 처분한다. 하루에 한두 권으로는 티도 안 나지만 하다 보면 줄어들 것이고 그럼 좀 낫겠지. 뭐라도 나아지겠지. 안 읽는 것보단 읽는 게 덜 심심하고, 안 치우는 것보단 치우는 게 더 깔끔하고.
오늘은 남의 일기를 읽었다. 우울하고 가난한 사람의 일기였는데 연민도 공감도 없이 그냥 어쩌라는 건가 싶었다. 그렇다면 내 블로그 글을 읽는 사람들도 뭐 어쩌란 건가 싶겠지. 안 읽으셔도 좋습니다. 담긴 게 없는 글이니까 그래도 좋습니다. 정말 좋은가? 안 좋다. 나는 누가 내 글을 읽고 나를 사랑했으면 싶다. 나와 관계되지 않은 채로. 오로지 글만을 보고.
광고 톡이 너무 많이 오는 것 같다. 하나하나 다 내가 추가한 채널들일 텐데 어떻게도 이렇게 쓰잘데기없는지. 어쩌다 정말 어쩌다 유용할까 봐 추가했을까? 오는 대로 차단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계속 온다. 매일 온다. 뭐가 이렇게 많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쓸모들이.
기억. 어제오늘 기억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일상에 지장은 없지만 내 무료함엔 한 몫 하는 것 같다. 초등학교 이전, 기억 전혀 없음. 초등학교 저학년, 그냥저냥 일본 살 때 정도는 기억을 했던 것 같지만 이제는 아님. 고로 기억 없음. 초등학교 고학년, 트라우마적인 단상 빼면 기억 없음. 중학교...... 마찬가지로 아주 단편적. 고등학교...... 난 도대체 뭘 기억하며 사는 거지? 그보다 왜 다 잊어버리는 거지? 나들이를 가면 엄마는 말한다. 너 우리랑 여기 왔었잖아. 기억 안 나? (네. 기억 안 납니다.) 어릴 때 말고, 대학 가고도 왔었잖아. (기억 안 납니다.) 고로 어린 나를 너무 방치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릴 필요는 없다. 나는 혼자였던 기억까지도 없으니까. 얼마나 좋아, 망각이란.
과거에 친했던 사람들과 안부를 주고받아야 할 때는 고역이다. 친했던 건 분명 알아. 내가 알아. 그런데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으니. 동갑이면 그나마 나은데 나이가 다르면 곤란해진다. 대상이 연상이면 내가 반말을 했는지 존대를 했는지, 연하면 내가 뭐라고 불렀는지. 우리 그냥 초면 할까요? 다시 시작합시다. 내가 그대를 잊었으니 그대도 나를 잊으세요. 학창시절의 나를 기억할 사람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뭘 기억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나는 남은 것도 모조리 망각해도 좋으니 당신들도 그러세요...... 라고 하면 이상한가?
좋지 않은 기억력와 무료함에는 상관관계가 있을까? 분명 있다고 생각하지만 깊게 파고들면 머리가 복잡해질 것이다. 나는 증명을 좋아하지 않는다.
몇 달 전에 사촌동생이랑 함께 있다가 떠오른 게 있다. 호박제리(아마도 제리였던 것 같다. 내 어린 기억이 그렇다고 한다.)라고 하는 옛날식 젤리인데, 어릴 때 외가에 가면 할아버지가 동네 마트에 데려가 사 주곤 했다. 할아버지 용달을 타고 나가면 항상 그걸 먹었다. 쫀득한 젤리였는데 너넨 먹어본 적 없지? 하고 동생들에게 물었다. 걔넨 관심도 없지만 내가 그걸 다시 먹고 싶다. 검색하니까 금방 나온다. 아마도 장수제과에서 만드는 듯하다. 한 박스 시켜 볼까 하다가...... 아니 이미 시켰다가 취소했다. 75개가 들었다는데, 심지어 나는 겨우 그것에만 배송비를 쓰기가 아까워 두 박스를 시켰는데 다섯 개나 집어먹을까 싶었다. 사탕도 그렇게 버린 게 몇 갠데. 나는 사놓고 묵히다가 버리기만 하는 것 같아. 어릴 때부터 군것질을 잘 안 했다. 좋아는 하는데 군것질에도 성실함이 필요해서, 나는 그러지 못했다. 다른 친구들 집에 방문할 때마다 느꼈던 건데, 우리 집엔 군것질거리 자체가 없었다. 까다 먹을 사탕이나 과자 같은 것들이 없었다. 그리고 어린 나는 뭘 잘 사 오는 성격이 아니었다. 뭐라도 샀다 치면 엄마가 알아냈거든. 숨길 생각도, 숨길 이유도 없는 것들을 엄마는 내가 숨긴다고 생각했다. 거기에서 오는 갈등은 해결하지 못한 채 내가 집을 떠나게 됐다. 아무튼. 없었다는 게 중요한데, 아빠는 말한다. 너는 어릴 때부터 방에 먹을 걸 두고서 자꾸 군것질을 했다고.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굴 키운 거야? 종종 아빠가 내가 아닌 나를 있었다고 표현할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반대의 경우도 잦았다. 내가 내내 말해온 것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고 아빠는 자주 그랬다.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어떤 기억은 망실되고 어떤 기억은 분실된다. 나는 평소에 생각이란 걸 잘 하지 않으므로 글을 쓰다 보면 저절로 생각을 하고, 그러다 보면 분실된 기억들을 마주친다. 바로 위에 적은 것들처럼 평소엔 잊고 있다가 떠올리면 울컥하게 만드는 사실 같은 것.
외롭다. 외로운 것 같다. 아니, 확실하게 외롭다. 가장 큰 죄는 살인일까? 그렇다고 치자. 그렇기에 나는 내가 사람을 죽여도 내 편일 사람을 원해 왔고, 한 명쯤은 확고하게 있다. 위로가 돼야 하는 점인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겨우 한 명이라서 그런가? 사람을 죽일 계획은 없으므로 아무튼 이건 패스. 그보다 나는 시간을 함께 보낼 새로운 사람이 필요하다. 너무너무 심심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