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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드 Jul 31. 2024

생일 전후로 아프다는 옛말

7월 일기

  그런 말이 있다고는 하는데 우리 이모가 한 말이라 사실확인은 안 해봤다. 7월 25일은 내 생일이다. 생일을 며칠 앞둔 시점...... 19일 저녁쯤 몸에 열감이 느껴졌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소나기가 자주 내렸고 우산을 사기엔 아까워 비를 맞고 다녔으니 그 탓이려니 했다. 열이 나는 상태로 운동도 했다. 그런데 20일에서 21일로 넘어가는 새벽이었나? 자다가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나는 열이 나면 해열제와 수면제를 함께 먹고 자버리는 안 좋은 버릇이 있는데(약을 먹었으니 푹 자고 일어나면 다 나아 있을 거란 헛된 믿음 때문) 정확히 새벽 세 시에 눈이 뜨였고 이대로는 죽을지도 모르니 당장 몸을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각은 했는데 삼십 분은 고민한 것 같다. 침대에서 일어나다 한 번 넘어지고, 어찌저찌 옷을 갈아입고 응급실에 갔더니 열이 38.8도. 피검사를 하고 엑스레이와 ct도 찍었는데 염증수치가 높다고 했다. 의사가 입원을 권유했고 나는 출근을 해야만 했다. 일 년에 두 번 찾아오는 조교의 필승 업무, 바로 시간표 짜기 중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엔 입원을 했다. 해열제와 항생제를 번갈아가며 계속 맞았는데도 이틀 정도는 열이 났다. 배가 계속 아팠기 때문에 금식이었다. 신기하게도 수액을 달고 있으니 배고픔은 물론이고 갈증도 안 느껴졌다. 약이 좋긴 좋다.

  가장 괴로운 건 혈관통이었다. 새로운 수액 라인을 꽂은 지 12시간이 되면 귀신같이 팔이 아파왔다. 약이 타고 흐르는 경로대로 손등부터 어깨까지 아팠다. 라인을 바꿔 봐야 또 아플 것임을 알면서도 바꿔달라 할 정도로 아팠다. 한 번은 신규로 추정되는 간호사가 주사를 놓으러 왔는데 혈관이 세 번이나 터졌고 평생 주사를 무서워하지 않던 나도 조금 겁을 먹었다. 어쩌면 나보다 어릴지도 모를 신규 간호사는 연신 사과를 하다 다른 분을 불러 오겠다며 나갔다.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보여서 걱정됐다. 바늘 빠진 김에 샤워를 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 매일 머리를 감았는데도 이상하게 씻고 나오는 즉시 찝찝해졌다. 병원 공기가 눅눅한가? 병실에는 창문을 열면 안 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환기는 자동으로 되니까 열면 안 된다고. 소방법에 위반된다고.

  생일 전날 퇴원했다. 이곳저곳에서 받은 본죽 기프티콘을 사용해 다양한 메뉴를 시켜 먹었다. 순한 것만 먹다가 괜찮은 듯하면 좀 매운 걸 먹었다. 바로 배가 아팠다. 먹고 일어서는 순간 배가 아프고, 그럼 더 아프지 말라고 다 토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쓰레기봉투 사러 나갔다가 당 떨어지는 느낌이 너무 강해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다 먹었는데...... 후회했다. 내장이 꼬여버리는 줄 알았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단 게 당겼다. 이온음료만이 나를 구원했다.

  시간표를 무사히 끝내고, 광양에 가족들 보러 다녀왔는데 문제가 생겼다. 엄마한테 감기를 옮았다. 목이 좀 아픈가 싶더니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학습능력이 없는 나는 또 해열제와 수면제를 먹은 후 잠들었고 새벽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깨어났다. 또 응급실에 갔다. 또 38.8도였다. 이쯤에서 나는 데자뷔를 겪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일주일 전과는 다르게 염증수치가 미미했다. 코로나도 아니고 독감도 아니고 염증도 아니고 '그냥 감기'로 추정된다고 의사는 말했다. 여전히 열이 나는 상태로 퇴원했다. 집에 들르지도 못하고 출근했다. 퇴사 직전이라 참을 수 있었다. 나는 퇴사를 약 한 시간 가량 앞두고서 이 글을 적고 있다. 아침으로 혈압약과 인후통약과 해열제를 먹었다. 요즘 약들은 빈속에 먹어도 속이 쓰리지 않다. 의학 발전 만만세.

  아무튼 생일 전에 아팠고, 생일 후에 또 아픈 걸 보니 이모가 한 말에는 신빙성이 있다. 당장 한 시간 후부터 나는 백수가 되는데 도대체 뭘 해야 할지...... 뭐라도 해야지. 하겠지. 그러려면 일단 몸이 멀쩡해져야 한다. 그리고 글.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생각은 24/7 365일 한다. 매일, 매순간 나는 다시는 글을 쓰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고등학교 때부터 내내 이랬고 이러다가도 어느 날엔 썼다. 하지만 그 어느 날이 영영 안 올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내 인생을 통째로 부정당하는 기분이 든다. 글에 내 인생을 바친 것도 아닌데. 대단히 사랑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든 쓰고자 하면 쓸 텐데, 그걸 알면서도 나는 자꾸 글에게 버려진 기분을 느낀다. 버리다의 주체는 나일 수밖에 없는데도 그렇다. 이전에 한예종 대학원에 지원할 때 쓴 자기소개서에 이런 문장을 썼다. 글이 싫었다. 언제나 나를 여기 가만히 둔 채 앞서 나가니까. 글이 무서웠다. 나를 영영 외지인으로 만들어 버릴까 봐. ... 글에는 관성이 있어서, 멀어지고자 할수록 나를 가까이 잡아당긴다. 그 관성은 여전한가? 내가 밀지도 당기지도 않은 채 있으니 글 또한 그럴 것이다. 부유하는 먼지 한 톨 없이 우린 냉전 상태다. 나는 또 사막인지 남극인지 모를 불모지 한복판에 버려진 채 고도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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