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테러리스트에서 상위 20%로

나에게 '옷을 못 입는다'는 지적을 했던 남편에게서 듣는 재평가

by 지나킴 마케터

내 남편은 미적 감각이 뛰어난 어머니를 둔 덕분에, 어릴 적부터 평생 ‘패션 수업’을 받아온 셈이다. 결혼 7년 차인 지금은 배 나온 아저씨가 되었지만, 서른 살까지만 해도 꽤나 인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수많은 고백 세례를 받았다고 하지만, 증명할 길이 없으니 그냥 믿어주기로 했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남편 역시 시어머님만큼은 아니더라도 안목이 제법 있다는 점이다. 나에게 “옷 못 입는다”라고 단호히 지적한 것도 남편이었다.


솔직히 처음엔 그 냉철한 평가가 꽤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덕분에 지금의 나는 한층 더 세련된 모습으로 ‘진화’할 수 있었다. 내가 옷을 입을 때마다 끊임없이 잔소리하며 스타일을 바로잡아 준 조력자, 그게 바로 내 남편이었다.


<남편과 옷에 관한 에피소드들>


Ep.1 패션의 완성은 신발


내가 패션 테러리스트 시절을 벗어나 그나마 정상 범주 안에서 옷을 입기 시작했을 무렵, 남편은 내 신발을 자주 지적했다.

“그 신발 화이트 톤이 너무 노랗게 떠 보여.”


그제야 나는 화이트에도 웜톤과 쿨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쿨톤의 새하얀 의상에 웜톤의 노란빛 신발을 매치하면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남편은 늘 “패션의 완성은 신발”이라 강조했다. 그는 옷차림을 고를 때 항상 신발부터 머릿속에 그린 뒤 상하의를 맞췄다. 사람의 시선이 결국 마지막엔 신발로 내려가기 때문에, 아무리 옷을 잘 갖춰 입어도 신발이 어울리지 않으면 전체 룩이 깨진다는 것이다.


내가 예전에는 열 번 중 여덟 번은 신발 컬러를 엉뚱하게 매치했는데, 지금은 두 번 정도로 줄었다며 남편이 평가했다. 칭찬인지 빈정거림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하위 20%에서 상위 20%로 올라온 건 엄청난 발전 아니냐”며 심심한 위로를 덧붙였다.


Ep.2 유니클로에서 강호동으로


남편은 서른 살까지 70kg 아래를 유지했지만, 지금은 85kg에 이르렀다. 어느 날 유니클로에서 오버핏 트렌드를 따라 입어보겠다며 배기핏 바지와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거울 앞에 섰다.


잠시 후, 그는 “멧돼지 한 마리가 튀어나온 것 같다”며 황급히 옷을 갈아입었다. 나도 그의 빠른 판단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남편은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난 인지 능력은 빠르지?”


옷을 입을 때 자기 객관화가 중요하다고 외쳤던 남편. 그 순간에도 자화자찬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이라고 해두자.


거울에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은 옷을 입을 때 어쩌면 가장 중요한 덕목임은 틀림 없다. 그 냉철함 안에는 이 옷이 예쁜가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닌, 예쁜 옷을 입고 있는 '내가' 예쁜지를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Ep.3 블랙과 화이트 팬츠의 법칙


남편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블랙을 특별한 날에만 입는다고 생각했기에 평소에는 밝은 옷을 즐겨 입었다. 하지만 체중이 늘면서 예전 같은 핏이 나오지 않았다.


특히 중년 남성들에게 흔한, 배가 나오는 ‘상체 위주 체형’이 되자, 남편의 해법은 블랙 상의와 밝은 하의의 조합이었다. 블랙 상의는 체형을 슬림하게 보정해 주고, 밝은 하의는 전체 분위기를 무겁지 않게 만들어준다. 덕분에 단조롭지 않으면서도 세련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상의에 블랙, 하의에는 화이트로 매치한 코디

<남편이 바라보는 나의 변화>


남편 말로는 내 옷 스타일이 많이 발전해서 이제는 "눈에 거슬리던 것들이 많이 줄었다"라고 했다. 그의 말에서 ‘거슬린다’는 건 시각적인 불편함, 즉 컬러나 핏의 부조화를 의미하는 것이니 그의 직설적인 화법에 너무 놀라지 않기를. 상대가 본인 체형과 스타일에 잘 어울리는 옷을 입으면 보는 사람에게까지 안정감을 주는 반면, 본인 체형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까지 어색함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런 남편을 둔 덕분에 나는 새로운 ‘옷의 세계’를 탐험하고 있다. 물론 옷은 그냥 편하게 입으면 되지 않냐는 의견도 있을 것이다. 그말도 일리가 있고 나또한 옷은 입었을 때 무엇보다 편한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대충 입을 때가 아니라, 오히려 열심히 꾸몄을 때 실수가 드러난다는 데 있다. 열심히 단장한 뒤에도 그 노력만큼의 반응과 기쁨을 얻지 못한다면, 그보다 더 아쉬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기왕이면 나는 옷을 “열심히”가 아니라 “잘” 입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남편에게 조언을 구한다.


때로는 씁쓸한 에스프레소 같지만, 그 뒤엔 티라미수의 달콤한 한 스푼을 얹어주는 남편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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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킴 마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