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이는 좋은 사위일 수 없다
어떻게 하다 보니 이야기의 대부분이 나의 연애이야기로 가득하게 되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민을 결심하기 전의 나, 결혼적령기가 되기 전의 나는 사랑이 내 인생의 가장 큰 가치였고 추구해야 할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순수하다면 순수했고, 한편으로는 현실감이 없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사랑'만 있다면 지하 단칸방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말. 그러나 정작 내 주변에 그 어느 누구도 지하단칸방 아니 심지어는 지하에서 신혼을 시작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내 주변이 그렇다고 해서 세상에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 삶의 기준점과 행복의 척도는 내 경험과 환경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바라보고 있던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혼은 특히나 너와 내가 사랑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사랑하고 그리고 너의 부모님과 나의 부모님이 우리들을 인정하고 사랑해야만 할 수 있는 그런 제도이다. 내 여자친구가 나를 아무리 사랑한다고 한들, 그녀의 부모님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그 결혼은 이뤄질 수가 없거나 혹 이뤄진다 한들 순탄히 유지되기가 힘든 게 한국의 결혼 현실이다. 내가 집이 있었더라면 아니 최소한 전세금이라도 있었더라면 과거의 만났던 여자친구들 중 누군가와는 벌써 결혼을 하고도 남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 외의 내 개인적인 조건으로 본다면 아주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 모난 구석이 없고 술, 담배를 하지 않으며 취미는 운동과 요리이며 대학교직원으로 철밥통 직장에 수입도 웬만한 대기업만큼 받고 있었고 타고난 유머감각까지 겸비한 딱히 모자라는 구석이 없는.... 이렇게 적고 나니 남편감으로서는 정말 상위 그룹에 속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내가 집을 가질 재력이 없다면, 또 부모님의 재력이 그만큼 뒷받침이 되지 않는다면 이 모든 조건이 아주 쉽게 무시되고 무용해져 버리는 이상한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재밌는 일화를 하나 이야기 하자면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로 지내온 한 여자아이가 있다. 학창 시절엔 서로 연애상담도 많이 해주기도 했고 그래서 그 누구보다 서로의 연애사를 가장 잘 아는 사이였다. 지금 그 아이는 아직 미혼이고 꾸준히 선을 보고 있다. 스무 살 초반 시절 오랜 기간 연애를 해왔던 대기업 출신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끝끝내 부모님의 반대로 헤어지게 된다. 그 이후로 지금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최소 몇 십 명의 선을 봐오면서도 매듭을 짓지 못하는 이유는 친구 부모님이 갖고 계신 너무나도 높은 기준점 때문이다. 대부분의 선 상대들은 전문직 종사자들로 검사, 판사, 의사들이었고 개중에는 돈이 많은 집도 그렇지 못한 집도 있었다. 결국 조건을 따져 이것저것 계산하다 보면 늘 그 부모님들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고 내 친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결혼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들을 오랫동안 지켜봐 온 내가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친구에게 말했던 적이 있다. "야, 그러고 보니 내가 네 친구니까 너희 어머님이 날 좋아해 주시고 이뻐해 주셨지 만약 내가 네 남자친구였으면 아마 내 인사도 안 받아주셨을 거 같은데?" 실제로 그러했을 것이다. 친구 어머님은 어릴 때부터 나를 봐오셨고 가끔은 집에 불러 식사도 대접해 주시곤 하셨었다. 하지만 딸의 결혼상대로서 만약 나를 평가하신다고 하면 나는 저 밑에 등급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