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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정 Sep 04. 2024

내연관계인가

나는 어이없어서

작품1
                                  내연관계인가

   ‘그게 무슨 말이지.’ 내 귀를 의심했다. 나는 곧 어처구니가 없어서 일단 웃어넘겼다. 아무리 별 뜻 없이 추측한 말이라지만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다. 자신의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면 다 비정상이나 변칙으로 치부하는 그들의 편협한 사고에 아연하여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남편 직장 일로 일본에 가게 된 때가 세 번째 밀레니엄 시작되기 이태 전이었다. 서울에서 초등학교 오학년생이던 아이를 집에서 가까운 일본 공립 소학교에 전학시켰다. 처음엔 좀 헤매겠지만 아직 어리니까 말을 쉽게 익힐 테고 학제가 같으니 배우는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남편의 의견에 동의했다. 엊그제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타 넘고 앞지르길 바라는 건 부모의 조급한 욕심일 뿐이었다. 아이는 큰 문제 없이 말을 익히면서 학교에 적응했다.
  다음 해 신학기가 되어 보호자회(PTA) 임원을 정하는데 내가 덜컥 뽑히고 말았다. 뽑힌 것이 아니라 스스로 뽑았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임원 맡기를 자청하는 사람이 없어서 제비뽑기를 했는데 공교롭게 내가 걸렸다. 눈앞이 아득했다. 일본어를 배우며 더듬더듬 익히고 있는 처지인데 PTA 임원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한번 원칙으로 정한 것에는 예외나 사정 봐주기가 통하지 않는 것이 일본 사회라는 것은 안다. 커뮤니케이션이 바로바로 안되더라도 맡아서 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일 년 임기 이름조차 낯선 PTA 교양부장이 되었다.
  회장은 PTA 네 개 부서 중에서 교양부는 보호자들의 교양 강좌나 취미 강습을 한 학기에 한 차례씩 주최하고 교내 행사에 안내 등을 도우면 되니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부원과 협력해서 최선을 다해 보겠다고 했으나 집으로 돌아오는 마음은 맷돌 한 짝을 올려놓은 듯 무지근했다. PTA는 교내나 혹은 외부에서 종종 모임을 갖고 행사나 교내문제를 의논했다. 그들은 나를 박상(朴樣)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아들과 같은 반 친구 어머니에게서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몇몇 어머니가 대화 중에 나를 가리켜 ‘PTA 활동하는 박상이다.’라고 하는 사람과 ‘아니다. 육학년 최군의 어머니니까 최상이다.’ 라고 하는 사람이 서로 우겼다고 한다. 듣고 있던 한 사람이 ‘법적 혼인 관계가 아닌 내연관계인가.’ 농담 삼아 말하더라고 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우물 안 개구리 같은 그들의 상식을 혼자 마음껏 비웃었다. 그리고 한가지 계획을 세웠다.
  교양 강좌 세 번 중의 한 번은 이웃 나라 한국의 문화를 이야기하기로 했다. 하지만 한 시간 이야기하기에는 나의 일본어 실력이 부족하여 제대로 다 표현하기 어려웠다. 강의실이 아니라 학교 조리실에서 간단한 한국 음식 실습을 하고 시식하며 이야기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일본인들이 좋아할 만한 부추 해물부침과 오이소박이를 하기로 했다.
  요리 중이나 시식 시간에 한국 이야기를 곁들였다. 내가 벼르던 이야기도 했다. 한국의 법은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받은 성을 죽은 후 묘비까지 가지고 가며 여자가 결혼을 해도 성이 바뀌지 않는 부부 별성(別性)이라고 설명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자식은 아버지의 성을 쓰니까 한 가족이라도 어머니만 성이 다를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내가 아들과 성이 다른 것도 내연관계가 아니라 부부 별성이기 때문이라고 말해서 모두 웃었다. 사전 준비가 많았으나 애쓴 만큼 보람 있었다. 남은 임기 동안 교양부장을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일 처리에 제동이 걸린 일은 또 있었다. 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받던 미즈호은행 창구 직원이 학생과 등록금을 내는 사람의 성이 다르니 어떤 관계냐고 물었다. 한국은 부부 별성이고 자녀는 아버지의 성을 쓴다고 설명해도 결국은 뒷자리의 책임자까지 창구로 나와 가족관계가 증명될 것을 보여 달라고 해서 외국인등록증을 보여 준 일이 있다.
  이천 년대에 들어서서 한류 문화가 일본에 퍼지기 전, 대다수 일본인은 한국에 대해 문외한이다시피 했다. 그들은 아시아 제일 경제대국이라는 우월감에 빠져 주변국에는 관심이 없었다. TV 드라마가 한류의 물꼬를 텄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줄지어 대한해협을 건넜다. 일본인들은 그 문화에 빠져들었다. 반만 년을 이웃해 있던 한국인데 별안간 그들 앞에 불쑥 솟아나기라도 한 것처럼 열광했다. 그들은 한두 마디 익힌 한국어를 호들갑스럽게 흉내 냈고, 서울 여행을 하고, 한국 음식을 즐기며 여태껏 몰랐던 한국을 알고자 했다. 나와 동갑인 일본인 친구는 수년째 한국어를 배운다. 한국어로 대화하며 경험하고 싶어서 한국 방방곡곡을 혼자 여행한다. 우리 역사드라마를 줄줄이 꿰고 있으며 가끔 드라마의 뒷얘기를 물어 드라마를 안 본 나를 당황하게 했다.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지는 만큼 한국인을 보는 눈높이가 달라졌다. 일본이 새삼스레 몸을 낮출 리 없다.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게 분명하다. 교만하게 눈을 내리깔고 주변국을 무시하던 일본이 이제는 살살 주위의 눈치를 본다. 내연관계 의심을 받은 지 이십육 년 지났다. 어머니와 아들의 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엄연한 법적 부부를 내연관계로 추측하는 웃지 못할 일은 이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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