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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on Nov 14. 2024

너, 누가 칼 들고 협박해서 독일갔냐?

독일에서 거주 허가증 받기

애인과 한 지붕에 살다 보면, 웃기는 일이 꽤나 자주 발생한다. 한 번은, 요리하다가 자기가 열어놓은 찬장에 부딪히고는 “이건 누가 이따위로 디자인한 거야!” 하면서 성질을 내는 것이다. 이게 너무 웃겨서, 내가 슬쩍 “왜 자기가 잘못해 놓고 성질을 부려?”하면 멋쩍은지 폭소하면서 “몰라!”하고 만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의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회 심리학에는 ‘귀인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경험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것을 ‘외부 귀인’, 경험의 원인을 내부로 돌리는 것을 ‘내부 귀인’이라고 한다. 가령, 나는 내가 시험에 떨어졌을 때, “아니, 이런 X발! 어떤 자식이 시험 문제를 이따구로 냈어?”하면서 시험 실패의 원인을 외부로 돌렸었다. 반면, 한 친구는, “내가 좀 더 열심히 했어야 했는데…….”하며 자책하길래, 나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 친구는 진짜, 진짜 열심히 공부했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사람을 내부 귀인적으로 만든다. “시험에 떨어진 것은 오직 네 공부가 부족했기 때문이고, 취업에 실패한 것은 네 전공 선택이 잘못됐기 때문이고, 대기업에 가지 못한 것도, 네가 해고당한 것도, 네가 연애를 못하고 있는 것도, 네가 가난한 것도, 모두, 전부, 다, 죄다, 네 노력의 부족함 때문이니, 세상 탓 좀 그만해!”


내 생각엔, 이런 식의 사고는 자신의 안정감을 확인하기 위해 작동하는 것 같다. ‘세상은 아주, 아주 괜찮은 곳이야. 내가 세상이 정해놓은 것들만 잘 따르면, 나도 언젠가 성공할 수 있어’라는 생각. 내가 노력만 한다면, 시험에도 합격할 수 있고, 취업도 할 수 있고, 대기업도 갈 수 있고, 부자가 될 수 있어. 나도 언젠가 노력만 한다면……. 그러니까 ‘무언가 나쁜 일이 생긴 사람은, 그 사람이 그런 나쁜 일을 당할 만큼 뭔가 잘못한 거야’라는 논리는 이런 안정감과 밀접하게 맞닿아있다고 생각한다.


난마같이 얽혀있는 사회를 하나하나 뜯어서, 그것의 부조리나 구조적 문제를 분석하고 생각해 보는 과정은 너무 복잡하고 귀찮지 않은가? ‘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 네가 공무원한다고 선택한 거니까 월급에 불평하지 말고 싫음 관둬.’하고 개인의 선택만을 탓하는 것이 훨씬 편하지 않겠냔 말이다. 이런 터프한 사회에선 많은 사람들이 내부 귀인으로 변할 수밖에 없을 테다.


한국 사람은 아무 허가증 없이 독일에 90일 동안 체류할 수 있다. 그 이상 체류하려면 적절한 허가증이 있어야한다. ‘거주 허가증’, 일명 ‘비자’ 말이다. 나는 독일에 도착해서 거주지 신고를 먼저 하고, 이 거주 허가증을 어떻게 해서든지 90일 안에 받으려고 온갖 정보를 모으고 다녔다. 왜냐면 독일 외국인청은 전화를 받지도 않고, 찾아가도 만나주지도 않고, 유창한 독일어로 따지자니 내가 불가하고, 그래서 점점 마음만 조급해졌기 때문이다. 참고로 독일에서는 행정기관이 시민의 문의나 요청에 대해 일정 기간 내에 응답해야 하는 법적 의무*가 있다. 들리는 ‘썰’에 의하면, 이 의무 때문에 어느 도시 이민청은 팩스를 없애버렸다고 한다. 이런 괴소문이 돌 정도니, 내가 당시에 받았던 스트레스는 결코 적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한 공무원과 면담할 기회를 얻게 됐다.


결론. 그러니까 거주 허가증을 90일 이내에 받아야 하는 게 아니고, 거주지 허가증 ‘신청’을 90일 이내에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독일 사람들 논리는, 90일 이내에 거주 허가증을 받지 못하는 건 우리 공무원들이 일을 그때까지 못해줘서 그런 거니, 체류허가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야. 그러니까 신청만 일단 90일 이내에 하면 돼, 라는 것이다. 그 사람의 독일식 악센트가 잔뜩 묻은 영어가 아직도 생생하다. “That's not your fault(네 잘못이 아니야)."


건물을 나오면서 하늘을 봤다. 비가 그쳐서인지 하늘이 맑았다. 그래, X발! 맞아, 이게 내 잘못만은 아니지. 갑자기 숨통이 확 트이는 기분이었다. 지하에서는 인터넷이 먹통이고, 열차는 맨날 늦고, 공원을 지날 때마다 어린놈의 자식들이 뻑뻑 펴대는 마리화나 냄새를 맡아야만 해도, 나는 이곳에서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몇 년간 체류할 수 있는 임시 체류허가증이 왔다. 이게 내 독일에서의 첫 단추 격이 되는 공문서였다.



*§ 75 Untätigkeitskl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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