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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인류문명의 대전환을 만든 이노베이션 플랫폼

1절. 무엇이 문명의 대전환점을 만들어 왔는가?

by DRTK


제 1 장. 인류문명의 대전환을 만든 이노베이션 플랫폼


1절. 무엇이 문명의 대전환점을 만들어 왔는가?


나는 이제 곧 오십대 중반으로 가는 아저씨이다. 나는 요즘 아이들은 전설 속 이야기 정도로 알고 있는 학력고사 세대이다. 그 말인즉슨, 나는 세상이 격변하는 모습을 꽤 많이 직접 목격해 왔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나는 서울에 달동네가 존재하던 시절 새마을운동으로 판잣집이 양옥집으로 바뀌고, 공마당이라 부르던 흙바닥 시장터가 사라지며 포장도로가 건설되었고, 그 뒤로 집집마다 장독대가 있던 마을의 풍경이 어느새인가 양옥집들로 바뀌다가 1층짜리 옛날 목욕탕 자리에 상가가 들어서더니 여기저기 5층전후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더 이상 어릴 적 살던 집 앞 언덕에서 비료포대 눈썰매를 탈 수 없게 되었던 기억이 있다. 또 나는 어릴 적 흑백 텔레비전에서 뽀빠이를 보았고 그 뒤 컬러티브이가 출현하면서 전설의 고향의 내다리 내놔 귀신을 보고 기절을 하기도 했었다.


내가 목격했고 직접 써본 통신기기들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몇 시간 수다를 떨 수 있을 정도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지금은 사라져 버린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다이얼을 전화기를 직접 써본 세대이다. 그 뒤로 공중전화 포함 버튼식 유선전화기를 경험했고, 본체는 유선이고 통화는 커다란 군용 무전기처럼 생긴 전화기로 무선통가 가능했던 전화기와 커다란 안테나가 달린 카폰, 삐삐라 불렀던 페이져, 공중전화박스 근처에 가야만 통화가 그것도 발신만 가능했던 시티폰, 플립을 열면 얼굴반만 한 크기를 자랑하며 아테나를 반듯이 뽑아야 했던 검은색 휴대폰, 스마트폰의 조상 격인 PDA 전화기, 현재의 스마트폰과는 완전히 다른 UI를 가졌던 옴니아폰, 신세계를 경험하게 했던 1세대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을 직접 다 써본 세대이기도 하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자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이동하면서 전자화 (digitisation) 시대로, 다시 인터넷과 함께 디지털 (digitalisatoin) 시대로, 유선과 로컬 인트라넷 시대에서 무선 이동통신을 거쳐 클라우드 시대로 변화한 모든 시대를 직접 경험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내가 평생 경험한 것과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는 인공지능의 시대에 살게 되었다.


내가 경험한 변화들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기술, 프로세스, 제품, 서비스 등이 혁신적으로 변화되거나 교체되어 더 좋아지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들이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이노베이션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는 “혁신(革新)”으로 번역된 **이노베이션(Innovation)**의 사전적 의미를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 새롭게 함”이라고 한다. "혁신(革新)"이라는 단어는 중국 고전인 *주역(周易)*에서 유래된 표현으로, "낡은 것을 바꿔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혁고정신(革故鼎新)"이라는 개념에서 비롯되었으며,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변화를 상징한다.


혁(革)의 의미:
혁(革)은 동물의 가죽을 벗겨 다듬는 과정을 나타내는 상형문자
글자의 구조는 위쪽의 머리(卄), 가운데 몸통(中), 아래쪽의 손(一)을 표현

신(新)의 의미:
도끼(斤)로 나무(木)를 다듬어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의미


영어식 표기 Innovation의 어원은 라틴어 innovare에서 유래했으며, in(안에서)과 nova(새로운)의 결합으로 "안에서부터 새롭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현대적으로 사용되는 "혁신"이라는 단어는 1930년대 일본에서 영어 단어 "innovation"의 번역어로 채택되었다. 일본 학자들은 "innovation"의 어근인 novus(새로운)와 "혁신"의 한자적 의미가 잘 부합한다고 판단하여 이를 번역어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이 번역어가 한국으로 전파되며 동일한 의미로 자리 잡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혁신” 또는 “이노베이션”이라는 단어는 사전적 의미와 유사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조금 다른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다. 한국에서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후반까지 “혁신” 또는 “이노베이션”이 폭넓게 쓰이면서, 긍정적 변화를 위한 창의적 전략이나 수단 정도로 이해되고 쓰이기도 했다. 당시 이노베이션은 "새로운 아이디어, 방법, 제품, 서비스 또는 해결책을 도입하여 기존 상태를 개선하거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으로 정의되었다.


이와 유사하게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이노베이션은 새롭거나 현저히 개선된 제품(상품/서비스) 또는 프로세스(방법·관행·관계)의 구현”이라고 정의해 왔으며, 맥킨지의 2022년 보고서에서도 “혁신은 고객이 수용하도록 획기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마케팅하는 체계적 활동”이라고 한층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지혜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하고서는 뜬금없이 이노베이션 (혁신)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되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인가 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인공지능이 이 세상을, 인류의 문명을 어떻게 근본적으로 혁신적으로 변화시키는 지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싶어서다. 우리는 늘 크고 작은 변화 속에 살아간다. 이 크고 작은 변화가 모여 인류의 발전을 만들어왔다. 그렇다고 모든 변화가 문명자체 또는 시대를 바꾼 것은 아니다. 우리가 유행이라고 부르는 작은 변화들이 사회를 움직이기도 하지만, 인류 역사에는 문명 자체를 바꾸거나 시대를 바꾼 혁신적인 변화들은 유행과는 다른 특징들이 있었다. 이러한 과거의 혁신적 변화들이 어떤 특징들로 어떤 혁신적 변화를 만들었는지를 인공지능이 만드는 혁신적 변화와 비교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무엇이 근본적으로 다른지를 알아야 무엇이 필요한지를 명확히 할 수 있다. 명확한 비교를 위해서는 비교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이론적 틀의 베이스를 이노베이션 이론으로 채택하고, 이를 발전시킨 새로운 틀을 제시하고자 한다.


학술적으로 이노베이션 개념을 처음 체계화한 사람은 경제학자 요제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이다. 그는 “경제발전의 이론(The Theory of Economic Development, 1911)”에서 이노베이션(혁신)을 경제 발전의 핵심 동력으로 보았고, 이를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라고 불렀다. 즉, 기존 경제 구조를 파괴하고 새로운 구조를 창출하는 과정을 통해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진화한다는 것이다. 슘페터는 혁신을 다음 다섯 가지로 분류했다.

신제품 개발: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도입

새로운 생산 방법 도입: 기존과 다른 생산 방식 채택

새로운 시장 개척: 기존에 없던 시장을 창출하거나 진입

원료·부품의 새로운 공급원 확보: 새로운 자원이나 부품의 공급원을 찾는 것

산업 구조의 새로운 조직 형태 도입: 독점·해체 등 새로운 조직 형태 시도

이후로 이 이론은 여러 분야에서 확장·세분화되어, 현대에는 제품 혁신, 공정 혁신, 비즈니스 모델 혁신, 서비스 혁신, 기술 혁신, 사회 혁신 등 다양한 범주로 나누어 연구되고 있다. 정리하자면, 이노베이션은 단순한 아이디어 도입을 넘어 기존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경제·사회 전반에 지속적 영향을 미치는 개념이다.


나는 약 20여 년 전 이노베이션(혁신)을

“비즈니스, 사회, 개인의 삶 등의 질적·양적 업그레이드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아이디어, 기술 또는 프로세스”

로 정의했다.


여기서, 돈(수익성)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부가가치 창출을 목표로 하는 혁신은 ‘비즈니스 이노베이션 (Business Innovation)’, 돈이나 수익성이 목적이 아니고 사회적 문제 해결이나 삶의 질 개선에 초점을 두는 혁신을 ‘소셜 이노베이션 (Social Innovation)’으로 구분했다. 이 구분법은 나를 이노베이션의 세계로 이끈 은사이시기도 한 호주 울릉공대학교의 에드워드 폴 박사 (Dr. Edward Pole)의 소셜 이노베이션 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그의 책에서는 현실적 타협점인 바이포칼 (Biofocal) 이노베이션의 개념도 등장하지만, 굳이 이 개념까지 설명할 필요성은 없는 것 같아 여기서는 생략하고자 한다.


어찌 되었든 이러한 ‘비즈니스 이노베이션’과 ‘소셜 이노베이션’만으로 인류 문명의 거대한 이벤트를 충분히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예컨대 농업 혁명, 산업 혁명, 전기의 발명, 인터넷 등은 단순한 비즈니스 영역을 넘어 전 인류적·문명적 전환을 일으켰다. 이런 역사적 사례들은 더 근원적인 수준에서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문명을 여는 창조적 파괴가 반드시 뒤따랐고, 동시에 확장 가능한 기반을 형성하여 끊임없이 진화했다. 이에 나는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와 내가 정의한 ‘이노베이션의 업그레이드 개념’을 결합하여, 인류 문명의 중요 이벤트를 설명할 수 있는 개념으로 “이노베이션 플랫폼 (Innovation Platform)”을 새롭게 정의하게 되었다.


단순한 혁신을 뛰어넘어, 인류 문명·사회 전체를 뒤흔들고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파급력을 발휘하는 거대한 변화를 어떻게 설명하기 위해 나는 “이노베이션 플랫폼 (Innovation Platform)”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노베이션 플랫폼 (Innovation Platform)

내가 제시하고자. 하는 이노베이션 플랫폼 개념이란 특정 기술, 아이디어, 프로세스 또는 발명품이 기존의 사고방식과 조직 체계를 근본적으로 전환시켜 산업, 생활, 사회 전반에 걸쳐 지속적인 질적·양적 성장을 견인하는 기반 역할을 수행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 개념은 ‘창조적 파괴’와 ‘확장 가능성’이 함께 존재해야 한다. 즉,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와 나의 양적, 질적 업그레이드 이론을 토대로 하는 ‘새로운 생태계’ 구축 및 확장을 포함하는 것으로 단순히 기존 것을 파괴해 새로 대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혁신적 변화가 다른 분야와 결합하면서 끝없이 확장되는 것이 충분하게 지속되며 사회 전반에 막대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일부 학자들 중에는 나의 이노베이션 플랫폼 이론과 유사한 개념을 이노베이션 자체로 소개하는 것들도 있었다. 그러나 굳이 내가 “이노베이션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정의를 통해 다르게 구분 짓고자 하는 이유는 발명의 개념과도 자주 비교되어 설명되는 좁은 개념의 이노베이션과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함이다.


이노베이션 플랫폼의 핵심 판단 기준

이노베이션 플랫폼 개념을 다른 말로 정의해 보면,


“이노베이션 중에 특정분야의 패러다임 전환을 일으키는 것에서 출발하여 전체적인 진화를 이루고, 이것을 사회전반으로 광범위하게 확장함으로써 근본적 변화를 일시적 유행이 아닌 지속적인 변화로 일으키며, 이 지속적 변화가 혁신의 승수효과를 일으키도록 선순환 생태계를 형성함으로써 모든 면에서 질적, 양적 성장을 이끌어 부의 축적방식과 부의 이동 등의 변화로 새로운 시대의 지표가 되는 이노베이션.”


라고 할 수 있다. 이 정의를 통해 이노베이션 플랫폼을 결정짓는 판단 기준으로 다음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패러다임의 전환

기존 사고방식·생활방식·조직 체계 등을 근본적으로 바꾸는가?

광범위한 영향

단일 산업을 넘어, 사회·문화·경제 전반에 걸쳐 깊은 변화를 일으키는가?

지속 가능성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다른 분야로 확장·결합되며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가?

선순환 생태계 형성

창조적 파괴 과정이 확립되어, 플랫폼 참여자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추가 혁신을 낳는 구조를 갖추고 있는가?

부의 축적 방식의 전환 및 부의 이동

새로운 부(富)를 어떻게 창출·분배하며, 기존 부와 계층·산업 간 부의 흐름을 어떻게 재편하는가?


변화를 만드는 이노베이션 (혁신) 이벤트 중에 이 다섯 가지가 골고루 충족될 때, 우리는 그것을 단순한 “획기적 기술”을 넘어 인류사적 의미의 이노베이션 플랫폼이라 부를 수 있다.




보충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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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패러다임 (Paradigm)과 패러다임 전환 (Paradigm Shift)에 대한 보충 설명을 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려고 한다. 평소 우리는 패러다임이라는 단어를 많이 접하고 쓰고도 있지만 막상 이것을 정확하게 정의하거나 설명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좀처럼 쉽게 정의나 설명이 어려운 단어 중 하나일 것이다. 또한 아주 흔하게 쓰이고 있으면서도 TV나 OTT 등의 자막에서도 정확하게 쓰이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아 보이는 단어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패러다임의 정의

패러다임(paradigm)은 특정 시대나 학문 분야에서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사고의 틀, 또는 인식과 문제 해결의 기본 모델을 의미한다. 패러다임은 인간이 경험을 해석하고 정보를 조직하는 기준을 제공하며, 이를 통해 특정한 관점에서 세계를 이해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규정한다. 다시 말해, 패러다임은 특정한 학문 분야나 사회적 맥락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고방식, 신념 체계, 이론적 틀, 방법론, 규범 등을 포함하는 개념적 구조라고 할 수 있다.

패러다임은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Thomas S. Kuhn)이 그의 저서 「과학 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1962)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쿤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특정 시대의 과학적 패러다임에 따라 연구를 수행하며, 이는 학문적 연구의 방향과 문제 해결 방식을 결정하는 기반이 된다. 그는 과학이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패러다임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다가, 기존 패러다임이 한계를 드러낼 때 혁명적인 변화를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된다고 주장하였다.

패러다임은 특정 시대의 지배적인 지식과 논리를 체계화하며, 그것을 따르는 연구자들은 이 틀 내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한다. 패러다임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패러다임의 특징

1. 공동체적 합의: 패러다임은 특정 분야에서 활동하는 연구자나 실무자들의 공통된 신념과 방법론을 반영하며, 학문 공동체(Scientific Community) 내에서 공유된다.

공유된 신념 체계: 특정 공동체 내에서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가정과 원칙을 포함한다.

2. 문제 해결의 틀: 패러다임은 특정한 문제를 설정하고 이를 해결하는 방식까지 규정하며, 이를 ‘정상 과학(Normal Science)’이라고 한다.

문제 해결의 기준 제공: 연구자들이 어떤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기준을 설정한다.

3. 경험적 데이터에 대한 해석 기준: 같은 현상이라도 패러다임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며, 특정한 가설과 이론을 뒷받침하는 데이터만이 인정되기 쉽다.

폐쇄적 성격: 패러다임 내에서는 기존 이론과 충돌하는 발견이 이루어지더라도, 이를 기존 체계 안에서 해석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4. 고정성과 변화 가능성: 패러다임은 강한 지속성을 가지지만, 외부 또는 내부적 요인으로 인해 변화할 수도 있다. 패러다임은 특정 시대에 널리 받아들여지는 논리적·이론적 일관성을 유지하지만, 필연적으로 한계를 가진다.

축적적 발전: 패러다임이 유지되는 동안 과학적 발전은 기존 이론을 세부적으로 확장하고 정교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의 정의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은 기존의 패러다임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거나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누적되었을 때,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여 기존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과정이다. 즉, 기존의 패러다임이 점점 더 많은 모순과 한계를 노출할 때,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게 된다.


쿤에 따르면, 과학은 점진적으로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불연속적인 변화를 통해 혁명적으로 전환되며, 새로운 패러다임은 기존의 패러다임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해결함으로써 자리 잡는다. 쿤은 이를 ‘과학 혁명’이라고도 불렀으며, 단순한 이론 변경이 아니라 근본적인 세계관의 변화라고 보았다. 쿤은 그의 저서에서 패러다임 전환은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진행된다고 하였다:

1. 정상 과학(normal science) 단계: 기존 패러다임이 유지되면서 연구자들이 공통된 문제 해결 방식을 따른다.

2. 이상 현상의 누적(anomalies accumulation): 기존 패러다임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상 현상)이 점점 증가한다.

3. 위기(crisis) 단계: 이상 현상이 누적되면서 기존 패러다임의 신뢰성이 흔들린다. 연구자들 사이에서 대안적인 해석이 논의되기 시작한다.

4.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 기존 패러다임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새로운 이론과 방법론이 등장한다.

5. 과학 혁명(scientific revolution): 연구자들의 합의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이동하면서, 기존 패러다임이 쇠퇴하고 새로운 것이 정착된다.

6. 새로운 정상 과학의 확립: 새로운 패러다임이 정착되면서, 다시 정상 과학의 과정이 반복된다.


패러다임 전환은 학문적 영역뿐만 아니라 기술, 경제, 사회,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한다. 그 영향은 다음과 같이 구체화될 수 있다:

지식 체계의 재구성: 기존 이론이 폐기되거나 수정되면서 새로운 개념과 방법론이 등장한다.

기술 혁신의 가속화: 새로운 패러다임은 종종 혁신적인 기술 발전을 촉진하며, 이는 산업과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사회 및 문화적 변화: 패러다임 전환은 사회적 가치관, 제도, 생활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며, 새로운 윤리적 기준과 철학적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저항과 충돌: 기존 패러다임을 고수하는 세력과 새로운 패러다임을 지지하는 세력 간의 갈등이 발생하며, 이러한 변화는 점진적으로 확산된다.


이해를 돕기 위한 패러다임 전환의 역사적인 사례들을 다음과 같다.


1. 과학 혁명과 천문학의 패러다임 전환

과거 지구 중심설(천동설, Ptolemaic system)이 오랫동안 지배적 패러다임이었으나,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의 지동설(Heliocentric theory)이 제안되면서, 갈릴레이(Galileo Galilei)와 케플러(Johannes Kepler), 뉴턴(Isaac Newton)에 의해 확립되었다. 이는 천문학뿐만 아니라 자연철학(자연과학)의 전체적 구조를 바꾸었다.


2. 진화론과 생물학적 패러다임 전환

19세기 초까지 생물학에서는 라마르크(Lamarck)의 용불용설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종의 기원》이 출간되면서 자연선택을 기반으로 한 진화론이 등장했고, 이후 유전학의 발전과 함께 현대 생물학의 기초가 형성되었다.


3. 의학에서 세균 이론의 등장

19세기 이전에는 질병이 ‘미아스마(miasma)’ 또는 ‘자발적 생성(spontaneous generation)’에 의해 발생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와 로베르트 코흐(Robert Koch)의 연구로 인해 미생물이 질병의 원인이라는 세균 이론(Germ Theory)이 확립되면서 현대 의학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4. 컴퓨터 과학과 인공지능 패러다임 전환

20세기 중반까지 연산 기계는 단순한 계산 도구로 인식되었으나, 앨런 튜링(Alan Turing)의 연구와 존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의 컴퓨터 구조가 발전하면서, 컴퓨터는 논리적 연산을 수행하는 자동화된 지능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21세기에는 인공지능(AI)과 기계 학습(machine learning)의 발전으로 또 다른 패러다임 전환이 진행 중이다.


5. 양자역학의 발전

19세기까지 물리학은 주로 뉴턴 역학과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에 의해 설명되었다. 그러나 흑체 복사 문제, 광전 효과 등의 이상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면서 막스 플랑크(Max Planck),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Niels Bohr) 등의 연구를 통해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이 등장하였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고전적 결정론이 사라지고 확률론적 해석이 도입되었다.


패러다임 개념은 과학뿐만 아니라, 경제학, 사회학, 경영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다. 예를 들어, 산업혁명, 디지털 혁명, 인공지능(AI)의 발전 등은 모두 기존의 경제·사회적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주요한 패러다임 전환 사례로 볼 수 있다.


경제학에서의 패러다임 전환

케인스 경제학에서 신자유주의로의 변화: 20세기 초 케인스(Keynes)의 경제학은 정부 개입을 강조하는 패러다임이었으나,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와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의 신자유주의가 대두되었다. 시장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 등장하면서 국가 개입 중심의 경제 정책이 점차 축소되었다.

산업 경제에서 디지털 경제로의 변화: 기존 제조업 중심의 경제에서 정보통신기술(ICT)과 인터넷 기반 경제로 전환되면서, 전통적인 노동 구조와 생산 방식이 변화하였다. 디지털 플랫폼과 데이터 경제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였다.


사회학에서의 패러다임 전환

구조기능주의에서 갈등이론으로의 변화: 20세기 초까지 사회학에서는 사회를 안정적이고 조화롭게 기능하는 시스템으로 보는 구조기능주의(Functionalism)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이후 마르크스주의와 비판 이론이 대두되면서, 사회는 권력과 계급 간의 갈등 속에서 변화한다는 갈등이론(Conflict Theory)이 중요한 분석 틀이 되었다.

전통적 가족 구조에서 다원적 가족 형태로의 변화: 기존에는 핵가족 중심의 가족 구조가 일반적이었으나, 현대 사회에서는 동거 가구, 한부모 가정, 비혼 가구 등 다양한 가족 형태가 인정되고 있다. 이는 사회적 가치와 법적 제도의 변화를 반영하는 패러다임 전환의 사례이다.


경영학에서의 패러다임 전환

전통적 생산방식에서 린(Lean) 생산방식으로의 변화: 20세기 초 테일러주의(Taylorism)와 대량생산 방식이 산업을 지배했으나, 일본 도요타의 린 생산방식(Lean Manufacturing)이 대두되면서 최소 비용과 최대 효율을 목표로 한 생산 패러다임이 확립되었다. 이는 현대 제조업과 서비스 산업에서도 지속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계층적 조직에서 애자일(Agile) 조직으로의 변화: 전통적인 기업 조직은 수직적 계층 구조를 기반으로 운영되었으나, 기술 혁신과 시장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자율적이고 유연한 조직인 애자일(Agile)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이는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대기업에서도 채택하는 새로운 조직 운영 패러다임이다.


기술 혁신에서의 패러다임 전환

산업혁명: 증기 기관의 발명은 농업 중심의 사회를 산업 중심으로 변화시켰다.

디지털 혁명: 컴퓨터와 인터넷의 등장은 정보화 사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촉진하였다.

인공지능(AI)의 발전: 기계 학습과 딥러닝 기술은 기존 노동과 생산 방식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사회적 패러다임 전환

페미니즘의 발전: 여성의 권리와 역할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면서 사회적 구조가 변화하였다.

환경 보호 패러다임: 지속 가능성과 기후 변화 대응이 주요한 정책과 기업 전략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와 같이 패러다임과 패러다임 전환은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지식과 기술, 사회 구조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기존 패러다임이 한계를 드러낼 때, 그것을 대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며 이는 지식 체계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 전반에 걸쳐 깊은 영향을 미친다. 패러다임 전환을 이해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변화의 본질을 파악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데 필수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이제 우리는 인류 문명의 대전환점을 만드는 것을 이노베이션 플랫폼이라 부르기로 했다. 인류역사 속의 이노베이션플랫폼들은 무엇이 있었는지 알아보고 그것들이 어떻게 이노베이션 플랫폼 이론에 부합되는지도 분석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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