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는 나의 기적입니다 19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믿음의 과정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래프가 아니라 그 안에서 자라나는 한 사람을 바라본다.
요즘 주식시장이 불장이다.국장, 미장 할 것 없이 호황인데 지금의 상황을 누군가는 끝물이라 하고, 또 누 군가는 더 오를 거라 한다. 그 속에서 결과가 어찌될지는 아무도 모르며 시장도, 인생도, 늘 반반의 확률 위에 서 있다.
준이의 치료를 처음 시작했을 때, 나의 마음은 지금의 상승장인 주식 시장과는 전혀 반대였다. 모든 그래프가 한 방향으로 꺼져버린 듯 주변이 온통 암흑천지였다.
‘혹시 자폐 스펙트럼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단순 언어지연’이라는 진단에도 사라지지 않는 막막함이 있었다. 언어 지연 외에도 시지각 협응, 소근육 운동까지 풀어야 할 과제가 끝없이 이어졌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마치 방향도 모른 채 폭락장 한가운데 던져진 초보 투자자 같았다. 어디서부터 리밸런싱을 해야 할지, 무엇을 먼저 사야(혹은 버려야) 할지 몰랐다.
네모, 세모, 동그라미조차 그리지 못하던 다섯 살 준이(그 당시 만 4세)를 보며 나는 미약한 아이를 붙잡고 때로는 울기도 했고 미친듯이 화를 내기도 했다. 스스로 분노조절 장애가 아닌가 싶을치 만큼 감정 조절이 쉽지 않았다. 아이에게 내 감정을 전가시키면 안된다는 걸 이성적으로는 잘 알면서도 감정적으로는 그게 되지 않았다.
“왜 내 아이가 이런 걸까.”
신을 원망하고, 내 운명을 탓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하루빨리 육아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내 마음, ‘아이를 거저 키우려 했던’ 오만함에 대한 벌이 아닐까. 하느님이 나의 조급함을 단련시키려 주신 시간이 아닐까.
그렇게 꼬인 실타래를 풀기 위해, 나는 단 하나의 실마리를 찾아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준이와 함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바라보고, 길가의 돌멩이를 주워 연못에 던졌다. 작고 단순한 그 움직임이 시지각 협응과 운동능력을 키우는 첫걸음이었다. 아주 작고 사소한 치료의 시작이었지만, 그런 엄마의 정성과 가족의 사랑 속에서 준이는 자신만의 속도로,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성장하고 있었다.
이제 준이는 레고 조립도 곧잘 한다. 도안과 약간 어긋나거나 완성도가 떨어질 때도 있지만 ‘혼자서 시도해본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엄마인 나는 감격스럽다. 원 도안과는 조금 어긋나도, 그건 오히려 준이만의 차트였다. 정확한 답보다 중요한 건 시도 자체였으니까. 그리고 그 가능성이 바로 주식시장에서는 진짜 성장주(成長株)의 조건이다.
나는 준이를 가능성이 무한한 성장주(成長株)로 보기로 했다.
올해 초, 내가 높은 비중으로 보유한 주식의 주가가 끝없이 빠졌다. 모두가 상승장이라 말하던 때, 내 종목만 유독 하락세였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팔지 않았고 거의 원고점을 회복한 지금에서야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고 조금씩 팔기 시작했다. 이렇게 주가가 회복할 때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공부도 해서 그 기업의 가치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조정기를 거쳐 언젠가 제자리를 찾을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준이의 치료도 그랬다.
‘언제쯤 나아질까.’ , ‘이게 맞는 걸까.’ 하며 수없이 의심하고 흔들린 적이 있었다.
발달지연 아이의 변화는 눈에 띄게 쉬이 나타나지 않는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즉각적인 성과는 드물다. 그러나 나는 믿었다. 시간이 흐르면, 그 믿음이 결국 수익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우리 준이도 나아질 거라고, 좋아질 거라고. 그리고 그 믿음이 암흑기의 나를 버티게 했다.
내 자식을, 엄마인 내가 믿지 않으면 이 세상 그 누가 믿고 기다려주겠는가?
가끔은 준이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지치고 화가 날 때가 있다. 특히 치료실까지 버스를 타고 왕복으로 1시간 거리를 교통 체증으로 2시간이나 걸려 다녀올 때면 둘 다 녹초가 되곤 했다. 그럴 땐 복습은 커녕 집에 오자마자 둘 다 거실에 벌러덩 드러누워 한 동안 꼼짝을 못한다. 그럴 때마다 난 준이와 밥을 더 많이 먹고 깨끗이 씻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나의 ‘감정 손절선’인 셈이었다. 지치고 기분 나쁜 에너지를 손절하고 푹 자고 나면 다시 그 다음 날을 살아낼 힘이 생겼다.
우리는 늘 결과로만 세상을 판단한다. 주가가 오르면 안도하고, 내리면 불안해한다. 아이의 발달도 그렇다.
결과가 보여야 안심하고, 멈춰 있으면 불안하다. 하지만 진짜 믿음은 그래프가 출렁일 때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손절은 기분 지치고 기분 나쁜 나의 마음만을 대상으로 하자. 그리고 성장주인 자라나는 새싹인 내 아이는 믿음으로 흔들리지 말고 굳게 지키고 보유하자.
나는 잘 모르는 기업에도 공부하고 투자한다. 그 회사의 미래를 믿고 기다린다. 하물며 내 아이인데, 조금 느리다고, 성장 곡선이 완만하다고 기다려주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그래서 이제 나는 준이를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오직 어제의 준이, 지난달의 준이, 1년전의 준이와만 비교한다. 자신만의 속도 안에서 준이는 꾸준히, 그리고 분명히 성장하고 있다.
엄마로서 줄 수 있는 가장 귀하지만 어려운 선물, 그것은 바로 ‘믿음’과 ‘기다림’이다.
시간이 지나면 주식의 그래프처럼 준이의 성장 곡선도 어느 날 문득, 아주 자연스럽게 우상향을 그릴 것이다.
그날이 언제 오든, 나는 오늘도 믿음을 가지고 그 주식을 묵묵히 보유 중이다.
아무리 시장이 출렁여도, 나의 포트폴리오엔 변함없이 ‘준이’라는 가장 소중한 성장주가 있고 그것을 지키고 보유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