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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드레 Oct 26. 2024

볼링) 스포츠가 아닌 도박을 하고 있었다

구력 0 / 에버리지 60

볼링보단 친목


"짠~!"

"고생하셨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맥주잔들이 부딪치며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모임 첫날, 볼링이 끝나고 뒤풀이에 참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볼링보다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더 재미있었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모임이라 그런지 텃세 같은 것도 전혀 없었고, 무엇보다 초보자 모임답게 진지함보다는 웃음이 우선인 분위기였다.


"아까 그거 보셨어요? OO 형 엄지 늦게 빠져서 공 날아간 거!" 누군가 웃으며 말을 꺼냈다.

"거의 바닥 부술 기세였지~" 다른 누군가도 크게 웃으며 맞장구를 친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내 차례가 되면, 나도 스쳐 지나가듯 대답하게 된다. 어쩌다 내가 던진 공이 엉뚱한 방향으로 굴러가도 이곳에서는 아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점수가 좋든 나쁘든 다 같이 박장대소하며 웃어넘기는, 이런 유쾌한 공기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다 모임장이 볼링 얘기를 할 때면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모임장 형, 저는 볼링을 치고 나면 허리가 아픈데 어디가 문제일까요?"

"너는 상체를 너무 숙여서 그래~"


 그는 모임원의 부족한 부분을 족집게처럼 찾아주었다. 그럼 더 신나서 볼링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런 분위기라면 오래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임 분위기가 참 좋다. 서로 챙겨주고 웃고 떠들고. 이렇게 즐거운 시간, 오랜만인데….’


 첫날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그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왠지 이 모임과 꽤 오래 이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스포츠가 아닌 도박을 하고 있었다

 모임에 두 번째로 참가한 날,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어설픈 자세로 볼링을 쳤다. 볼링공에 중지, 약지 두 개만 넣은 채 어드레스에 우뚝 섰다. 일단 걸어간다. 파울라인에 도달하면 무작정 공을 던졌다. 이때 손목을 돌려 공에 회전을 줬다. 최근에 친구를 보면서 배운 덤리스 구질이다. 사실 덤리스라고 부르기에도 부끄러운 투구였다.


 나도 처음에는 손가락 3개를 넣어 공을 잡았다. 스텝과 자세가 엉망이고 엄지를 놓는 타이밍을 모르니 공이 항상 사선으로 쭉 굴러가다가 거터로 직행하기 일쑤였다. 그러던 차에 친구의 덤리스 구질을 보게 되었다. 친구는 중지, 약지 두 개만 공에 넣었다. 엄지는 구멍에 넣지 않았다. 스윙은 짧은 궤적을 그렸다. 거의 팔만 접었다가 편 수준이었다. 손에서 떠난 공에는 맨눈으로 보아도 스핀이 많이 걸려있었다. 그리고 큰 궤적을 그리며 핀을 향해 꽂혔다. 이른바 '덤리스' 구질이다.


"오, 잘 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친구의 자세가 보고 배울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 내 눈엔 잘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친구에게 물어보며 어설프게 배우고, 어쭙잖게 흉내 냈다. 엄지를 구멍에 넣지 않으니, 공이 다소 불안정하게 느껴졌다. 금방이라도 공이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스윙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그저 스프링처럼 팔을 당겼다가 밀어냈다. 공이 손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한다. 그러다 손목을 억지로 돌려서 스핀을 주며 릴리즈한다.


 일단 스핀이 생기긴 했다. 덕분에 지루한 거터 직행열차는 줄어들었다. 하지만 높은 확률로 공이 핀에 도달하기도 전에 왼쪽 거터로 빠졌다. 그러다가 아주 가끔 스핀이 제대로 들어가 핀을 맞출 때면 짜릿한 쾌감이 밀려왔다. 당시의 나에게 볼링은 스포츠가 아니었다. 나와 친구들 손엔 늘 병맥주가 들려 있었고, 우연히 많은 핀을 쓰러뜨리면 도파민이 확 솟구쳤다.


그래, 나에게 볼링은 우연한 확률에 기댄 도박 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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