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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하 SEONGHA Sep 08. 2024

짝사랑

금방 시드는 사랑

그 이별로부터 반년이 지나고,


'첫 만남'

어느 조용한 술집. 옆 테이블에 앉은 그녀. 처음 외모가 마음에 들어서 끌렸어요. 이따금 마주치는 눈에서 왜인지 모를 따뜻함이 보였기 때문이에요.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우고, 나는 말이라도 걸어보려고 밖으로 따라나섰어요.


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서, 모르세 하며 다시 들어와버렸어요. 생각보다 금세 들어와 버린 그, 계속 의식하고 있어서 인지 따라 들어오는 그를 보았고, 그녀를 위해 문을 잡아 주었습니다. 하지만,


‘허둥지둥’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쑥스러워 도망갔어요.


놓치고 싶지 않은 이상형이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았어요.


'합석'

다행히, 친구가 관심을 보여서, 합석을 제안해 줬어요. 상대측은 의외로 반응이 좋아서 수락했고, 그래서, 운 좋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어요.


같은 테이블에 앉아, 테이블 넘어 건너편 자리에서 눈빛을 교환해요. 제 친구와 그녀의 친구는 오래 알았던 것처럼, 신나게 이야기를 하지만, 저와 그녀만은 과묵했어요. 쑥스러워 말 꺼내지 못 했지만, 말이 필요가 없었다고 느꼈어요. 그녀는 저의 사소한 표정 하나에 반응했어요. 묵묵히 기다리다. 짧은 한마디에 "끄덕끄덕"


저와 같은 성격유형이라고 하기에 뭔가 말하지 않다고 알 것만 같았어요. 같은 성격유형을 만나본 일은 처음이었어요. 'INFJ'는 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감수성 풍부하고, 상상력 가득한 것이, 내향적이기까지 한, 그 성격. 사소한 눈빛, 시선, 움직임 하나 하나 놓히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절제되고, 함축적이고,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하는 것들이었죠.


그래서, 사실 호감을 느꼈지만, 섣불리 연락처를 묻지 못했어요. 섣부른 거였죠. 얼마나 안다고, 연락처까지 물어보기에는 섣불렀어요. 그리고.. 책임감 없이 떠나갈 주제에, 다시 연애를 시작하고 싶진 않았어요.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어요.


허나, 상대가 전화번호를 묻었어요. 아마 "큰 용기였지 않을까" 생각에 좋아라 했어요.



'연락'

다음 날, 카페에서 우연히 전화를 잘못 걸었고, 목소리를 듣게 되었어요. 전화를 잘못 걸어서 짧게 끊었지만 그 덕분에, 카톡을 시작하는 계기는 되었어요.


어색한 대화. 화두를 때려고 책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이런!


다행히, 대화는 이어집니다. 첫 대화 주제는 책, 책이야기를 합니다. 어제 마지막 대화주제가 그것이었거든요. 그래도, 나름 자연스럽게 키우는 강아지 이야기, 그녀가 쓰는 편지 이야기, 내가 갔던 전시회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저는 그녀를 더 이해해 보려고, 그녀가 읽고 있는 책을 구매했어요. 그 책을 읽으며 저와 같은 글을 읽을 그녀를 생각했어요.


감성 가득한 그 책은, 그녀의 성격과 비슷했어요. 그녀가 말을 하는 듯했다가, 저의 말인 듯하다가, 작가의 말이 되기도 했어요. 두 번째, 세 번째, 읽을 때마다 다른 뜻의 말이 되는 듯했어요. 그때에는 사실, "이 사람과 잘 될까? 사실 그렇게 걱정은 안 했었어요" 시기가 안 좋았어요. 너무 한 것이었죠. 책임감이랄까. 망연자실인가. 그래도 좋았아요. 이미 사랑하기에, 그 정도면 충분한 것이었어요. 


그녀는 다음 주, 긴 여행을 간다고 합니다. 나는 2주 뒤, 군사교육을 받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까. 너무 설레고 가슴이 뜁니다.

풍부한 연애경험과는 다르게, 저는 자꾸 실수하고, 뚝딱거립니다.


그렇게, 하루에 한 번 꾹 참다가 연락합니다.



'얼마나 알길래'


잠깐 본 걸로, 심지여 이야기도 많이 나누지 않았지만, 자꾸 관심이 갑니다. 연락도 거의 안 했어요.


그래도, 하루종일 생각했죠. 저는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그냥 스쳐갈 수도 있을 텐데. 왜 불길로. 어두운 길로 스스로 걷는지 이해가 안 되어요. 짝사랑이에요.


저는 연애 경험이 많습니다.

나이에 비해서 많은 사람을 만나봤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짝사랑'은 처음이네요.


이해가 안 되어서 스스로 자꾸 물어봤어요. 어디가 좋냐고. 물어봐도 답을 안 해줘요. 그냥 ”그 사람이 맞을 거라고, 알아보면 알 거"라고 말해줘요. 같은 성격 유형인 것에 뭐라고, 큰 의미를 부여했어요.


그냥 물어봐도 될 텐데, 열심히 염탐합니다.

누군가의 기록으로, 그녀의 작품으로, 글로 알아봤어요.


충분하지 않은데? 너는 어디가 좋은 거야? 마음이 따뜻해 보이고, 생각이 깊어 보이고, 어딘가 나를 닮았네.

그즈음뿐, 전여 확신이 들지 않아요. 그래도, 시간이 흐를수록, 짝사랑은 깊어졌어요.


그 사람을 관찰하면요. 왠지 수풀에서 감정을 느끼는 세심한 사람이라고 생각이 되었어요. 하늘을 보면서, 구름마다 이런 따뜻함과 차가움, 예의바름과 발랄함을 느끼는 섬세한 사람일 거라 기대하죠. 나랑 같을 거라고 혼자 망상해요.


"자주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그런 미덕을 알까요.



'지난 아픔'


저는 '바다'를 자주 봅니다. 바다를 자세히 보면요. 자기 기분이 어떤지 전부 알려줘요. 자주 보아야 하죠.

'항해 중, 바닷가와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와서 추한모습, 화가 난 모습 등, 본모습을 보여줘요.

폭풍우를 불려서, 두렵게 만들고, 가끔 잠을 자기도 합니다. 물개와 고래를 통해서 인사를 먼저 건네는 일도 있었고, 힘내라고 무지개로 응원을 하기도 하세요.

이런 바다를 항해합니다.


나와 같을 거라고 망상해요. 나와 같은 것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치만요. 매년 팔 할은 바다에서 지냅니다. 그런 직업을 가지고 있죠.

그래서 말이죠. 우리 연애해도 힘들 거예요. 아주 못 볼 거예요. 그래서 용기가 안 나요.

지난 아픔은 나를 더 주저하게 만들고, 안될 일이라고 말하죠.


그런데도, 말이죠. 욕심이 나네요. 보고 싶네요.

그래요. 보고 싶어요. 혼자 끙끙됩니다.


아직은 더 알아보고 싶고요. 알아본 다음에는,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고요. 시간을 보내고 나면은 그리워하고 싶어요.


그런 ‘이기적인 마음’과 저의 '지난 아픔'이 충돌합니다.


시간이 많이 필요할 텐데, 시간이 없네요.



'끝내 전하지 못한 마음'

진전도 없이, 시간이 지납니다. 뭐가 그렇게 조심스러운지, 연락 한번 못 하고 남몰래 생각해요.


그렇게, 마음을 담은 시를 적고 갔어요. 끝내 전하지 못한 솔직한 마음을 글로 남겨두고 떠났어요.

‘땅에게 전하는 시’

맞아요. 잠적했었죠.

윤슬 같은 당신을 보면서 겁먹었나요
나랑은 다른 당신을 보면서 두려웠나요.

따뜻한 당신이 좋았을까요
차가운 나도 보듬어 줄래요?

이런 날 당신은 좋아할까요
용기는 내보아도 용감하지는 않네요.

자주는 못 보아도
자주는 생각할래요

매일을 그리워할게요
만날 날을 고대할게요.

엇갈리듯이 글을 남긴 날, 나를 놓아달라고 그녀가 말합니다.


"시기가 안 좋다" 그녀의 말에 말문이 막히고, "지인사이로 지내자"는 말에는 포기해 버렸죠.

그렇게, 반쯤 포기한 마음으로 훈련소에 입소합니다. 훈련소에 들어가서 힘든 감정을 억누르고, 다른 생각으로 채웠습니다. 그럼에도, 그 책을 챙겨가서 읽고 또 읽는 나였죠.


다행히, 힘들어서 그런지, 서서히 잊어집니다.



"수료 후, 그녀가 연애를 시작한다"


그런데, 훈련소 주말 휴대폰을 받고 놀라운 일을 발견합니다. 그녀가 내 글을 읽은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약간의 기대를 품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수료 후, 군에서의 전투력을 빌려서 용기를 냈습니다.

한 달이나 걸렸네요.


용기를 내었지만, 그녀가 연애를 시작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알게 되었을 때, 튀어나온 말은 "다행이다"였어요.


역설적이게도, 연애를 시작해도 된다고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한 시간들은, 연애를 할 수 없게 만들었어요.


제가 '찬미'하는 그녀는, 그간 과분한 사람이 되었죠.



'먼발치에서'

너무 큰 사람이 되어버린 그녀는, 이제 이질적이게 느껴져요.


적절하지 못한 시기, 용기 내지 못했던 과거가 후회로 남습니다.

내 삶에 담을 수 없게 된 그녀입니다. 그래서 먼발치에서 바라만 봅니다.


그녀를 이제는 추앙할 뿐입니다.


‘추앙하다’

-높이 받들어 우러러봄


'찬미하다'

-아름답고 훌륭한 것이나 위대한 것 따위를 기리고 칭송하다


그렇게, 제 짝사랑은 시들었습니다. 다행인지도 모르죠. 연애 따위 저에게는, 과분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이 마음을 끝낼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첫사랑과는 다른 성숙한 짝사랑이 되어서 다행입니다.


다음 이야기는, 미숙했던 첫사랑에 대해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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