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469일(15개월 10일)
나는 분명 오늘밤 애기가 잘 때, 나도 같이 자려고 했었다.
와이프가 일하는 월화목금은 내가 집에서 육아를 하고 와이프가 쉬는 토일은 와이프가 육아를 하고 내가 알바를 간다.
와이프는 수요일도 쉬는데 이 날이 우리 집 휴일이다.
주말에 알바를 가는 이유는 그거라도 해야 살겠더라..
잠시 아들에게 벗어나 숨 쉴 수 있는 시간이다.
물론 와이프 밥이랑 애기 밥은 다 차려 놓고 갔다 온다.
아무튼,
그래서 난 월요일이 제일 힘들다.
주중에 육아하고 주말에 알바한 피로가 쌓인 날이 월요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이 월요일이다.
난 오늘 점심부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지금도 눈이 감길 만큼 너무 피곤하니 오늘은 애기 잘 때 꼭 같이 잘 것이다.
애기 재우고 나서 거실에 나와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한다거나 배달을 시켜 야식을 먹는다거나 일절 안 하고 무조건 잘 것이다.
저녁 먹기 전 아이와 한 시간 산책을 다녀왔다.
잘 자라고 말이다.
땀 뻘뻘 흘린 아들을 집에 돌아와 바로 시원하게 목욕도 시켰다.
잘 자라고 말이다.
여기까지 나도 아들도 아무 문제가 없다.
이제 밥 먹이고 우유 먹이고 재우면 된다.
재우기 전에 욕조랑 우유병만 씻어 놓으면 된다.
따로 치울 건 없으니 애기랑 같이 자면 된다.
이 시간을 기다렸다.
정말 하루종일 정신력으로 버텼다.
이제 밥을 먹자 아들아.
육아하는 엄마들은 당연히 예상할 것이다.
육아는 내 생각대로 된 적이 없다.
운이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지만 오늘은 하늘도 나를 버렸다.
애기 밥을 차렸다.
참고로 나는 저녁을 애기가 남긴 밥으로 때운다.
와이프 밥이랑 애기 밥은 정성과 시간을 많이 써서 차리는 반면 내 밥은 대충 먹는다.
귀찮다기보다는 밥맛이 없다.
애기가 안 먹겠다고 고개를 젓는다.
나는 기다린다.
배가 고플 텐데 먹겠지.
숟가락으로 몇 번 권해도 안 먹어서 그럼 설거지를 먼저 해야겠다 싶어 주방으로 간다.
그럼 애기가 울면서 뛰어와 내 손을 잡고 거실로 데려간다.
밥을 먹겠다고 입을 벌린다.
한 입 먹고는 놀겠다고 장난감을 꺼내온다.
나는 다시 기다린다.
몇 번 권해도 안 먹어서 그냥 내가 먹는다.
어른 숟가락으로 두 숟가락 정도 남았을 때 아들이 밥을 달라고 한다.
얼마 안 남은 밥을 맛있게 먹는다.
애기가 더 달라고 조른다.
이제 배고픈가 보다 싶어 나는 애기 밥을 다시 차린다.
다시 차리는데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미 만들어 놨으니 말이다.
그런데 애기가 한 입 먹더니 안 먹겠다고 한다.
여기서 내게 위기가 찾아온다.
하루종일 졸렸는데 이제는 잠이 달아난다.
슬슬 짜증이 올라온다.
애기가 남긴 다시 차린 밥은 내가 다시 먹는다.
두 입 정도 먹었을까 애기가 내 손을 잡고 침실로 이끈다.
밥도 덜 먹고 아직 우유도 안 먹었는데 졸렵다고 잔단다.
하루종일 고생한 아빠 밥도 못 먹게 한다.
먹던 애기 밥그릇을 식탁에 두고 애기랑 자러 들어간다.
아직 설거지랑 욕조청소를 안 해서 애기랑 같이 바로 잘 수는 없고 애기 재우고 다시 나와서 남은 밥 마저 먹고 마무리 정리하고 바로 자야겠다며 애기 옆에 누워 계획을 세운다.
아이가 누워서 한동안 가만히 있는다.
같이 누워 있는 나도 졸음이 슬슬 오는데 자면 안 되니까 그걸 또 정신력으로 버틴다.
반은 잠든 상태로 아이가 자길 기다린다.
갑자기 아이가 잠이 안 온다며 아빠를 올라타며 논다.
반수면 상태인 나는 죽을 맛이다.
자다가 깬 기분이다.
그러다 아이는 다시 자겠다고 눕는다.
그러고는 다시 잠 안 온다고 돌아다닌다.
이걸 1시간 30분 동안 반복하더니 이제 잠이 들었다.
아이가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 나는 바로 배달앱을 켰다.
이대로는 못 잔다.
분해서 못 잔다.
나는 지금부터라도 내 시간을 가질 것이다.
지금 자면 오늘은 내 시간이 없이 끝난 하루가 된다.
치킨을 시킨다.
배달이 도착하기 전까지 이 글을 쓰고 있다.
하나도 안 졸렵다.
내일 아침이 두렵다.
내일은 꼭 애기가 잘 때 같이 자야지.
나는 분명 오늘밤 애기가 잘 때, 나도 같이 자려고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