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8일(15개월 29일)
육아를 안 해봤다면 육아를 논하지 말자.
아이가 돌도 안 지났는데 어린이집에 보낸다고?
아이를 안고 다녀야지 유모차를 태운다고?
아이에게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여준다고?
아이가 똥을 쌌는데 그냥 둔다고?
밖에서 아이 손이 더러워진다고 아무것도 못 만지게 한다고?
몇 개만 적어봤는데 아이를 키우기 전에는 이런 엄마들이 못마땅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세 살이 되기 전에는 절대 어린이집 안 보내!
아이는 부모품에 둬야지 유모차는 절대 안 태워!
핸드폰 앞에 멍하니 영상 보게 안 해!
똥 싸면 곧바로 기저귀를 갈 거야!
손이 더러워지면 닦아주면 돼!
육아를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나는 좋은 부모인 것처럼 떠들어댔다.
이제 직접 아이를 키우다 보니 내가 얼마나 오만하고 철이 없었는지 알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아이와 24시간 함께 하지 않는 아빠들 역시 이전의 나처럼 엄마들의 육아방식에 불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누구나 육아에 대한 환상이 있다.
어떤 공식처럼 또는 잘 짜인 루틴대로 철저하게 계획하고 관리하면 순조롭게 일이 진행될 거라 믿는다.
그리고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아이는 문제없이 잘 자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육아는 비유하자면 하늘과 같다.
마른하늘에 갑자기 비가 오기도 하고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이 치더니 바람이 불다가 해가 뜨고 소나기가 오다가 구름이 끼고 어두워졌다가 밝아지고..
육아는 하늘처럼 예상할 수 없다.
분명 기상청에서 오늘은 맑다고 했는데 갑자기 비가 내려서 다시 기상청 예보로 봤더니 금세 비로 바꿔놓는 것을 보면 날씨를 정확히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육아 역시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눈이 오면 도로가 얼기 전에 쓸어내는 것 같이 일어난 일을 처리하고 정리하는 것이다.
나는 규칙적으로 저녁 6시에 저녁밥을 먹이겠다고 계획하더라도 아이가 안 먹으면 소용없다.
그래서 5-7시 사이에 아이가 배고플 때 밥을 줘야겠다고 대기하고 있는 것뿐이다.
시간을 정해두고 아이가 밥을 먹지 않으면 그 수고와 노력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난 열심히 준비했는데 왜 넌 받아주지 않느냐며 서운하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애당초 기대를 안 하기도 한다.
안 먹겠지 하고 밥을 차렸는데 맛있게 먹는 아들을 보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내 기분도 하늘처럼 하루에도 들쑥날쑥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어린이집을 세 살 이전에 보내느냐 마느냐 논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한 살 아이를 어린이집을 보내든 안 보내든 육아는 똑같이 힘들다.
결국엔 내가 살기 위해 필요한 선택들이다.
그래야 육아에 지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안아달라고 울고 있는 아이를 안아주지 않는 엄마란 없다.
안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안지 못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더 안아주기 위해서 지금 안지 못하는 것이다.
혹자는 안아주는 게 뭐가 대수인가 할 수 있으나 나는 아빠고 우리 아들은 11kg인데 하루종일 아이를 안아주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다.
팔뚝이 끊어지는 것 같고 이미 허벅지근육과 광배근에 피로가 쌓여 승모근으로 아이를 안고 있는 날은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죽을 맛이다.
엄마들은 절대 불가능하다.
밥을 안 먹는 아이에게 영상을 틀어주면 밥을 잘 받아먹는다.
하루종일 밥을 안 먹는 것보다 영상이라도 있으면 밥을 먹으니 어쩔 수 없이 영상을 틀기도 한다.
우리 아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식당에서 어느 부모가 아이에게 영상을 틀어주고 옆에서 식사를 하는 걸 보면 저 부모는 애한테 관심이 없네 하고 흉을 봤는데 아이가 식당에서 영상을 안 보면 의자에서 내려달라고 소리 지르고 울고 난리가 난다는 걸 아들을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또 똥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손을 씻어주기 위해서 아이를 안아 올려야 하는데 엄마들에게는 이게 정말 곤욕일 것 같다.
손목도 아프고 온몸으로 아이를 안고 있을 엄마들을 보면 왜 기저귀를 바로 갈지 못하고 위생의 문제도 있겠지만 손을 더럽히지 못하게 하는지 이해가 간다.
해봐야 안다.
아빠인 내가 직접 겪지 못했다면 나는 여전히 육아에 대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남자라 엄마들보다 근육이 더 많고 체력이 좋다.
그래서 우리 아들은 내 고집 그대로,
세 살 전에는 어린이집에 안 가고
유모차 산책은 한 적이 없고
영상 보면서 밥을 먹지도 않고
기저귀를 방치해 본 적도 없고
밖에 나가면 지 맘대로 다 만지고 다닌다.
내 육아 방법이 정답이라는 환상에서는 이미 벗어난 지 오래다.
그저 내가 엄마들보다 힘이 좋아서 할 수 있는 것일 뿐이다.
이렇게 한다 해서 우리 아들이 더 잘 크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가 육아라도 내 맘대로 하는 것뿐이다.
엄마들을 존경한다.
특히 아들 엄마라면 정말 업어주고 싶을 만큼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아빠들이 꼭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엄마들도 정말 내 아이에게 이렇게 저렇게 해주고 싶은 건 많은데 몸이 지치고 아파서 못하는 걸 말이다.
아빠인 나도 이 악물고 아이를 안고 산책을 한다.
힘들어 죽겠지만 아이 밥 먹이려고 아이 앞에서 온갖 재롱을 떤다.
이걸 매일 반복한다..
육아를 안 해봤다면 육아를 논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