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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alie Sep 03. 2024

|미예|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내 동생 미예"


나보다 한 살이 어렸던 미예는 5살이었을 때

우리 집에 오게 되어 우리 가족들과 약 5-6개월 동안 함께 살았던,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내 동생이다.




미예는 엄마의 아모레 화장품 단골이었던 미영이 언니의 딸로,

곧 미국에 입양이 보내질 예정이었다고 한다.


미예는 엄마를 닮아 아주 예뻤고,

늘 혼자서 지냈었던 시간이 많아서 그랬었는지 ,

아님 외로움 속에서도 나름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한 5 살아이라서 그랬었는지,

 우리 언니, 오빠, 그리고 부모님께도

 애교가 아주 많은 귀여운 아이였었다.


특히 우리 엄마에게는 막내인 나보다

더 찰싹 달라붙어서 애교를 부리고는 했었다.




여러 번 미영이 언니가 일하던 가게에 방문하셨었던

우리 엄마는 늘 혼자 가게의 뒤쪽에 있는 단칸방

그리고 뒷마당에서 혼자 놀고 있는

미예를 보면 집에 놓고 온 내 생각이 나서

예뻐해 주시고 또 안아주시고는 하셨다 한다.



 


엄마는 가엽고 작은 그 아이를 너무나 안쓰러워하셨었고,

또 곧 결혼예정이었던 미영이 언니가

아이를 미국으로 입양을 보내기로 결정했다며 울었을 때,

잠시라도 우리 집에서 한 살 터울이던 나와 같이 놀고 같이 지내면 된다며

아무런  대가 없이  미예를 미국 가기 전까지

우리 집에서 맡기로 하셨다고 한다.




당시 우리 집의 귀여움을 온통 독차지하고 있었던

또 언니 오빠와 나이 차도 꽤 나서 애기 행세를 하였던

 막내 선영이에게는 6살 인생의 최대 위기가 시작되어 버렸다.




미예는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마음이 아프게도 심각한 애정 결핍이 있었던 것 같다.


부엌에 있는 참기름 한 병을 몰래 다 마시거나,

설탕이나 미숫가루를 큰 수저로 다 퍼먹거나,

또 잿털이에 있는 담배꽁초를 나와 함께 피워보자고 하곤 했다.



나는 귀여움을 되찾을 기회라 생각했던 것인지,

 곧바로 엄마에게 이 사실을 고자질을 해버렸고,

그로 인해 나는 난생처음 눈물을 쏙 빼도록

무섭게 엄마로부터  혼나고 또 호되게 야단을 맞아버렸다.



 엄마는 미예를 되려 꼭 안아주시며


“그런 거 하면 우리 미예 예쁜 얼굴 미워져.

이모가 맛있는 거 더 많이 해줄게 대신”


라고 따뜻하고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6살 인생에서 처음 겪는 받아들일 수 없는

설움과 질투에 복받친

나는 미예에게 소리쳤다.


 “너 여기서 우리 엄마랑 살아!

   네가 우리 엄마 딸 해!

   내가 비행기 타고 미국 갈 테니,  

   엄마도 미예도 다 미워 엉엉엉......”





당시 어려서 어떤 상황인지 전혀 이해를 못 했던 나는,

갑자기 우리 집에 와서는,

얼굴도 예쁘고 또 온 가족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게다가 내가 텔레비전으로 보며 당시 나의 소원이 되었던

"비행기 타고 미국에 가기"까지

다 가진 미예가 너무나도 샘이 났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6살 때 꿈꿨던 소원을 다 이루어 버렸다. 승무원이 되어서....





그로부터 6개월 후,  진짜로 내 동생 미예가 떠나갔다.


나는 크게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미예야 가지 마,  언니가 미안해.

잘해줄게, 엄마한테 안 이를게 이젠,

가지 마!. 나랑 여기서 살아!"




지금 미예가 55세일 텐데....

한국을 한국어를 또 나를 기억이나 할지는 모르겠지만…


난 꼭 미예한테 말하고 싶다


"미예야 정말 많이 보고 싶다. 언니가 그땐 너무 미안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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