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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 Oct 22. 2024

참을 수 없이 가벼운 퇴사 이야기_5

무엇이 가장 참기 어려웠냐면..

밤부터 비가 왔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새벽에 잘 깨는데 오늘도 일찍 깨서 시계를 들여다보기를 여러 번 하다 결국 마지못해 일어났다. 1시간 정도 내가 하고 싶은, 밥벌이와는 상관없는 일을 하고 출근 준비를 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이전에는 늘 피로와 짜증으로 아침을 열었다. 지금이라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상쾌해!"라고 말할 수준의 신체 상태는 결코 아니지만 눈 뜨는 순간의 짜증이 줄었다는 건 그저 다행, 말 그대로 다행인 일이다.


이제 새로 배우고 있는 일은 아직은 오리무중이고 복잡하고 나를 조바심에 떨게 하지만 그것도 괜찮다. 아니 괜찮다고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그놈의 노력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싶지 않지만 딱히 대체할 만한 용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아침에도 계속 비가 내린다. 출근 준비를 다 마쳤는데 책꽂이에 여전히 놓여있는 사원증이 보인다. 퇴사하면서 던져 놓았던 전 회사의 사원증. 그때는 조금의 미련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를 시험이라도 하듯 눈에 잘 보이는 곳에 하지만 무심하게 아무렇게나 던져놓았다.


퇴사를 했다고 통보하던 날, 내가 아는 한 친구가 물었다.

"언니는 무엇이 가장 참기 어려웠어?"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꼭 집어 말하기가 어려웠다.

아니 의외로 회사에서 벌어졌던 일들과는 상관없는 답이어서 다시 나를 되돌아보았다는 게 맞다.

"나는 선택하지 못하는 게 참을 수 없었어."

"이게 뭐라고,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을 계속 끌고 가는 거, 그게 제일 싫었어. 웃기지?"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선택해야 하는 사람. 내가 정한 게 어떤 결과를 가져온다 해도, 선택하고 그것을 책임지면 되는 사람.


결과야 늘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계획해도 늘 틀어지기 마련이다. 의외로 좋은 일도 있다. 그렇지만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행운을 목 빠지게 기다리진 않는다. 그저 선택을 할 수 있고, 어려울 것을 뻔히 알아도, 후회하더라도 내가 내 발로 움직일 수 있기를 나는 기대했다.


영리하지 않은 선택이다. 그런데 뭐 어쩌겠나. 그게 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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