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탔다. 버스 맨 뒷좌석 가운데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 둘이 앉아 있었다. 나와 같은 정류장에서 탄 승객 중에도 여자 아이 2명이 있었는데 한 명은 이미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들 옆자리로 가 앉고, 다른 한 명은 그보다 몇 칸 앞에 있는 좌석에 홀로 앉았다. 나는 그 혼자 앉은 아이의 바로 뒷좌석에 앉았다. 혼자 앉은 아이는 무언가 집중하고 있었는데 그것 때문인지 평소 표정이 그러한지 그다지 생기 있는 표정을 짓고 있지는 않았다.
내가 앉은 자리, 즉 버스의 좌측에는 빛이 들고 있었다. 얼굴이 뜨거웠던 나는 맨 뒷자리 우측에 빈자리가 나자 옮겨 앉았다. 그러니까 내가 버스에 타기 전부터 앉아 있던, 맨 뒷좌석 여자아이들(편의상 여 1, 여 2로 지칭하겠다.)의 오른쪽 옆자리로.
자리를 옮겨 햇빛을 피한 것까진 좋았지만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참을성을 잃어갔다. 여 1과 여 2가 흔한 욕설을 다수 섞어가며 수다를 떠는 것까진 그러려니 했다. 그나이 때니까, 그리고 욕이 뭐 대수라고...(듣기는 싫지만)
그런데 자꾸 들리는 말들 속에 아까 언급한 앞 좌석에 홀로 앉아 있는 아이(이제부터 여 3이라고 칭하겠다.)를 비아냥대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여 3을 직접 가리키며 쟨 70~80년대 스타일이라느니 안경이 튀어나올 거 같다느니..(안경알이 두꺼운 게 무슨 잘못?)
다른 자세한 상황을 다 나열하진 않겠지만 나는 내 옆자리 아이들의 뒤통수를 갈길 뻔했다... 는 건 조금 과장이고 한 대 콩 쥐어박고 싶었다.(이런 말을 한 것만으로 잡혀가진 않겠지.)
아... 지켜야 할 법이, 깨지 말아야 할 행동의 규제들이 수만 가지가 되는 21세기의 대한민국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머리통을 쥐어박기는커녕 꼰대로서 말 한마디 못 했다. "예끼 이놈들~"이라고 말해주는 옛날 어르신들이 그리웠다.
남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이 꼭 정답은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심지어 내가 보기엔 잘못이지만 넓게 혹은 다른 방면에서 보면 잘못이 아닌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적어도 클래스메이트를(클래스메이트는 맞았고 친구는 아니었다.) 지척에서 노골적으로 비아냥대는 일이 옳다고는 할 수 없다. (그들의 과거사도 현재 관계도 모르는 상태에서 떠드는 말이긴 하지만)
모두가 잘난 세상이고 그래서 함부로 남을 평가하지도, 남의 삶에 끼어들지도 않는 오늘이다. 나 또한 내 일에 누가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이 무례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우리 모두 선을 지킬 때에나 통용되는 기준이다. 선을 넘은 여 1 여 2를 나는 이 날따라 무지무지 혼내주고 싶었다. 옛날 어른이 되어 훈계죄로 경찰서에 잡혀가든 말든(어차피 뒤통수를 콩 하고 때리지는 못했을 것이므로) 그들의 잘못을 꾸짖고 싶었다. 그러지 못해 속으로 안달이 났다.
결과적으로야 한 마디도 못하고 그들이 빨리 내 눈앞에서 사라지기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을 뿐이지만.
나는 무엇이 불만이었을까? 내가 직접 당한 것도 아니고, 모르는 여 3에게 지나치게 무언가를 투영한 것은 아니었을까? 혹은 윤리에 대한 기준이 너무 한쪽으로 기울어 있던 것일까? 그저 그날의 기분이 무척 좋지 못했던 것일까? 이유야 어떻든 나는 꼰대로서 꼰대짓을 하지 못한 게 왠지 분하다.
가끔은 나도 꼰대짓을 하고 싶은데 제어장치가 아직까지 정상작동하고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아리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