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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과 우연 사이, 사막에서 배운 공동체

자파르 파나히와 이란 영화가 우리에게 건네는 윤리의 질문

by 다움 김종훈 살뜻한 이웃

얼핏 보면 한 편의 도로무비다. 황량한 사막, 낡은 밴, 웨딩드레스의 젊은 신부. 그런데 카메라가 조금만 멀어지면 풍경은 곧 ‘감옥 같은 공간’이 된다. 경계, 금지, 규율이 보이지 않는 철조망처럼 인물들을 둘러싼다. 이 장면은 오늘 우리가 이란 영화를 볼 때 자주 맞닥뜨리는 딜레마다. 우연(사고)과 규칙(규율) 이 충돌할 때, 죄는 누구의 것인가? 책임은 어디까지 확장되는가?


1) 이데올로기의 현실적 효과와 트라우마

이란 영화는 거대서사를 설교하지 않는다. 대신 일상의 미세한 틈—축구장 입구에서 쫓겨나는 소녀들(〈오프사이드〉), 거실에 갇힌 창문(〈닫힌 커튼〉), 스마트폰 안의 파일, 동네의 관습—에서 이데올로기가 몸에 새기는 흔적을 보여준다. “그게 무슨 신의 뜻이야?”라는 대사는 초월의 언어가 어떻게 ‘책임 회피의 방어막’으로 전락하는지 드러낸다. 관객은 자연스레 묻게 된다. 우리는 어떤 말로 타인의 고통을 합리화하고 있는가?


2) ‘비-장소’에서 ‘공동체’로

사막은 영화 속 가장 많은 일이 벌어지는 장소이자 비-장소다. 아무의 것도 아닌 공간이지만, 규칙은 유령처럼 따라붙는다. 흥미로운 건, 이 비-장소가 끝내 공동체를 시험하는 자리로 변한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침묵으로 공모하고, 누군가는 규율을 내세워 배제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위험을 감수해 증언한다. 카메라는 이 결정을 오래, 집요하게 바라본다. 그 응시는 결국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당신이라면 어떤 쪽에 설 것인가?


3) 파나히의 ‘메타’—검열을 우회하는 방식

자파르 파나히의 영화들은 대놓고 “영화가 무엇인지”를 떠든다.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라는 직설적인 제목부터, 차 안에서 흘끗 보이는 카메라, 프레임의 안과 밖을 일부러 흔드는 장치들까지. 자기 반영적(메타) 전략은 검열을 우회하는 창의이자, 관객에게 보내는 암호다.

“보이는 것을 믿지 말라. 보이지 않게 된 것을 의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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