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뉴곤 Sep 15. 2024

아홉 번째 생각정리

깊은 늪

 우울하다는 감정은 어떤 기분인가. 그동안에는 우울하다는 생각을 잘 못해왔다. ‘약간 처지는 거야’ 라거나 ‘피곤해서 그런거야’ 혹은 ‘번아웃이 왔나봐’ 라는 말들로 ‘우울’이라는 감정을 부정했다. 예전에 쓴 글들도 읽을 때 약간 가라앉는 느낌정도지 이걸 우울한 느낌이라고 생각도 안했다. 그런데 한동안 가라앉는 기분이 들지 않다가 갑작스럽게 저 아래로 가라앉는 기분이 들면서 깨달았다. 지금까지 나는 늪지 깊은 곳에 잠겨있었구나.

 
 언제부터 우울해졌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감정인건 맞았다. 땅을 보고 걷는 아이가 정말 나였고, 어두운 음영을 보면 내가 속해있는 자리같았다. 극단적인 생각들도 정말 많이 들었다. 실천하지 않아서 지금의 내가 있는거겠지만, 극단적인 생각을 정말 아무렇지 않게 일반적인 생각마냥 하곤 했다. 이 원인은 무엇일까. 우울의 원인을 찾다가 보면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든다. 돌고 돌아서 결국에는 내 스스로가 원인이 된다.



 사랑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다. 인정을 받고 싶고 사랑을 받고 싶다. 모두가 나를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줬으면 좋겠고, 나도 그 사람을 계속해서 좋아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것은 나를 착한 아이 증후군으로 이끌었다. 상대가 내게 부탁을 하면 거절할 수 없다. 예스맨과는 다르다. 예스맨은 대답이 무조건 예스라고 간결하게 나오는 거지만, 나는 ‘이건 조금 힘들거 같은데… 그래도… 아닙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정도다. 나 스스로도 하기 싫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상대가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나를 옭아맨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은 단순하게 생각하고 거절했다고 단칼에 나와 손절한 사람이 있었냐고 물어본다. 없다. 단 한명도 그런 사람이 없다. 하지만 난 그 순간의 표정을 잊지 못하겠다. 내가 거절을 했을 때 실망하는 그의 표정, 나는 그 표정과 그 말투를 견디기가 힘들다. 정말 어릴 때 부터 그래왔다. 그리고 그런 미안한 감정은 지금의 우울한 감정과 정말 닮아있었다. 정말 어릴 때 부터 그래왔고, 이것에 대한 원인은 아마 내가 어릴 때 잦은 수술을 받으셨던 어머니가 아닐까 싶었다.
 
 



 돌이켜 생각을 해보면 나는 누군가를 좋아할 때 우울을 느끼곤 한다. 내가 짝사랑이라고 느끼는 이 감정은 우울과 유사하다. 아니 같다. 사실 이러면 좋아한다는 감정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외로웠을 뿐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우울감을 느끼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면, 우울감의 원인은 상대가 나를 좋아하지않을 거라는 생각에 기반한다. 어차피 나와는 이어지지 않을 상대지만, 나는 그 상대와 이야기하고 싶고 그 상대의 우선순위에 들고 싶다. 나와 특별한 관계가 되는 게 아니어도 내가 그 사람의 우선순위에 들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지만, 나로서는 그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채 가라앉았다.


 나의 이런 우울을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짙은 파랑이라는 색인 나와 노란색은 섞이면 섞일 수록 짙은 녹색이 될 뿐이다. 늪과 같은 이 색은 둘다 수렁에 빠져 나오지 못하게 한다. 나는 상대를 이런 늪에 끌고 오고 싶지 않다. 상대와 친해지고 싶으면서도 거리를 멀리하고 싶은 절대로 상대에게 다가갈 수 없는 이런 내 심정은 누군가를 좋아할 때 우울을 느끼게 한다.
 
 이런 나의 우울은 결국에는 상대도 나도 우울하게 만들고 피곤하게 한다. 내 피곤에 그녀도 지쳐서 내게서 멀어졌다. 연속된 시험은 양쪽을 파멸로 이끌뿐이다. 신뢰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 컸다. 우울은 슬픔과도 같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는 것이 아닌 나누면 나눈 만큼 불어난다. 이런 우울과 불안은 어느새 쓰나미가 되어 우리를 쓸어버렸다. 아니 우리가 아니다. 나는 애초부터 물 속에 있었으니 내 쓰나미에 쓸려간건 그녀뿐이다. 난 내 자리 그대로 있을 뿐이다. 그대로 물 속으로 끌려온 이는 숨이 막혀버리고, 그런 질식에 질려 달아난 그녀의 뒤를 하염없이 쳐다볼 뿐이다.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냥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여기엔 누구 잘못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며, 그 둘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느 한 쪽이 숨쉴 수 없는 그런 환경이, 그런 세계가 문제였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호흡 도구를 달았다면, 상대가 호흡 도구를 달았다면 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계속해서 하곤 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한 쪽이 질려 달아나버렸고, 난 그 쪽을 향해 달릴 수 없는 것을. 그냥 받아들이고 다시 나의 세계에 사는 생명과 만나는 게 맞다는 생각을 한다.


이전 09화 여덟 번째 생각 정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