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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곤 Sep 29. 2024

열세 번째 생각정리

행복함이란

 행복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사소한 것에서도 행복함을 느끼는 사람은 정말 사소한 것 자체에서 행복함을 얻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그 사람들의 행복의 근원은 무엇일까. 나는 그게 항상 궁금하다.

 
 행복이 어디서 오는지는 몰라도 불행이 어디서 오는지는 안다. 불행은 상대적인 거라고, 남이 나보다 더 불행하면 내가 느끼는 불행의 총량은 줄어들게 된다. 이렇듯 대부분의 불행한 감정은 비교로부터 오게 된다. 안 좋은 일을 당했을 때의 불행한 감정 또한 다른 사람은 당하지 않았다는 사실과의 비교로부터 나온다.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을 때의 그 불행한 감각,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의 불행한 감각, 그리고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의 그 불행한 감각 모두 상실에 대한 비교로부터 야기된다. 모두가 겪는 일이라면, 모두가 특정 시기에 겪는 당연한 일들이라면 그런 감각은 상당 부분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비교하는 것을 멈추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위를 올려다보게 된다. 나보다 위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원동력 삼아 살아간다.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계속해서 위를 올려다보며 발전해 왔기에 비교하는 것을 멈추는 것은 쉽지 않다. 아래만 보고 살 수 있다면 행복할 텐데, 위를 올려다보게 되어 불행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게 되었다.




 그러면 불행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행위를 그만두면 행복해질까. 더 이상 불행이 나오지 않으면 행복도 생기게 될까. 아쉽게도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 불행과 행복으로 이분화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불행도 행복도 없을 수 있다. 이렇게 둘 다 없으면 공허하다는 감각이 그 빈자리를 채우게 된다. 하지만 그 반대는 성립한다. 행복이 늘어나면 불행이 줄어든다는 것 말이다. 



 행복은 불행을 잊게 해 준다. 행복이 불행을 상쇄한다고도 볼 수 있다. 행복한 감정이 많을수록 불행한 감정은 빠르게 잊힌다. 행복이 불행을 완벽히 제거해주지는 않지만, 행복의 총량이 많을수록 이전의 불행한 감정들을 빠르게 쳐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행복의 총량이 많은 것이 불행을 제거하는 것보다 더 유용하다. 불행을 다 없애봤자 행복도 없다면 그저 공허해질 뿐이지만, 행복으로 불행을 지우게 되면 지우고 남은 행복들이 스스로의 기분을 더 좋게 만들어준다. 그렇기에 행복함을 느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고, 어떻게 하면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됐다.
 
 개인적인 취미를 만드는 것,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 등등 많은 것을 생각했고, 마지막 해답으로 특별한 인간관계를 생각했다. 좋아하는 마음은 행복감을 일으킨다는 기본적인 경험과 사실에 입각한 해답이었다. 하지만 끝내 아니라고 생각했다.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은데 행복해지기 위해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나의 불행을 떠넘기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람을 나의 성장의 수단으로 삼는 이기적인 행동이란 것이다.
 
 처음에는 나의 부정적인 요소들을 숨기고 만남을 시작하게 된다. 이미 부정적인 요소들을 숨긴 시점에서 상대의 신뢰라는 은혜를 배신으로 보답한 셈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거리가 더 가까워지게 되면 상대의 행복을 나의 불행을 지우는 데 사용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상대에게 줄 행복이 없다. 이미 내 불행을 지우는 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반복되고 나면 행복을 주기만 하는 상대의 피로로 더 이상 행복함을 주기 힘들어지고, 그 행복감을 받아먹는 자신 또한 불행을 지우지 못해 피로를 느끼게 된다. 이런 일방적인 행복은 예정된 비극을 동반한다.
물론 상황에는 언제나 예외가 있다. 상대가 내게 행복을 주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거나, 끝없이 행복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면 비극이 예정되어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의 수는 굉장히 적고, 끝없이 행복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생물학적 결함이 있지 않는 한 존재하지 못한다. 세상에 무한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특수한 인간관계도 해답이 되지 못한다면 어떤 것으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지 생각을 하던 찰나, 하나의 큰 전제를 놓쳤다는 것을 눈치챘다.
 

"기본적인 욕구가 모두 만족이 되었는가?"

 
 욕구 위계 이론에 따르면, 아래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윗단계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 욕구를 다 충족시키면 무엇이 나올까? 나는 모든 욕구의 충족 시 행복이 나온다고 생각했다.
 
 결핍은 사람의 마음에 구멍을 만든다. 그러나 이는 결과를 봤을 때의 말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결핍된 상태로 세상에 나오기에, 마음의 구멍은 결핍을 마저 채우지 못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핍이 구멍을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가 채우지 못해서 구멍으로 남은 것이다.

 



 마음은 우리의 성격이 된다. 채우지 못한 결핍으로 만들어진 마음은 우리의 성격이 되기에, 사람의 성격은 결핍이 만든 어떤 처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결핍을 채우면 갈라진 마음도 견고하게 달라붙고 이상적인 사람의 성격에 다가가게 된다. 그렇게 이상적인 성격에 다가갈수록 사람은 더 긍정적인 에너지를 내보내게 되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곧 행복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기본적인 것부터 충족해야 그 이상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나는 많은 부분이 결핍된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지금은 너무나도 힘들기에, 언젠가 채워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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