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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곤 Nov 09. 2024

열여덟 번째 생각정리

목적론과 원인론

 끝없는 자기비난과 우울의 출처는 어디일까. 겪은 사건, 자라온 환경, 타고난 성격 등등... 그동안 많은 것들을 생각해봤다. 하지만 해답은 찾지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나의 우울은 특정한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원인을 찾고자 하는 나의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원인을 찾고자 하는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자연스러운 것이다. 나도 그런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랐을 뿐이다. 무언가 잘못됐다고 생각할 때 그것이 어떤 이유로, 원인으로 인해 잘못됐는지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필수적인 행동이다. 이유와 원인을 알아야 그것을 고칠 수 있고, 그것을 고침으로써 그런 잘못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했고 그런거라고 굳게 믿어왔는데 요즘은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이유와 원인을 알고자 하는게 고치기 위해서라는 일종의 나의 목표와는 다르게 이유와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지도 못했고, 고치지도 못했다. 어떻게보면 의미없는 행위를 지금까지 계속 해온 것이다. 내가 이런 행위를 한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봤을까. 전혀 하지 않았다. 나는 왜 이 끝없는 생각의 돌을 굴리고 있었을까. 도대체 무엇을 위해? 나의 행동 어딘가에는 목적이 있지 않을까.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글들을 쓴지 벌써 2년이 넘었다. 그 2년간 나의 우울감은 나아졌다가 악화됐다가를 반복했지만 그게 내가 생각을 정리해서는 아니였다. 그냥 주변의 일들로 인해 기뻤다가 슬펐다가 하며 자연스럽게 나의 감정들이 괜찮아진 것 뿐이다. 나는 그 사실을 얼핏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글을 쓰고 우울해하는 이유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인정하기 싫었던 것 뿐이다. 우울에 대한 글을 쓰면 나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달라진다는 생각이었다는 것을.




 우울한 모습을 보이거나 우울한 노래를 듣고 있으면 평상시보다 더 많은 관심이 들어오게 된다. 무슨 안좋은 일이 있었는지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 처음에는 정말로 우울한 일들이 있어서 우울한 사람이었던게 맞지만, 우울을 충분히 벗어날 수 있는 시간과 사건들이 있었음에도 우울함을 유지했다. 나의 우울에는 원인 같은건 없었다. 그저 목적만이 있었을 뿐.


 하지만 그 사실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우울의 굴레를 끊는 것 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다. 인정하고 싶지않아 계속해서 미루고, 굴리며 산처럼 거대해진 눈덩이를 멈추어 온몸으로 받아야하는 그 순간을 상상하면 아마 굴리기를 멈추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아마가 아니라 나는 정말로 그랬던 것이다. 그랬기에 굴리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그러다가 우울한 사람이 아니라 우울해야만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목적론은 대부분의 것들을 부정한다. 트라우마를 비롯한 대부분의 것들을 부정한다. 가혹한 이론이다. 가혹하고 아프지만 맞는 말들이다. 트라우마가 그리고 불화가 나를 옥죄는 것도 맞지만 옥죄임과 동시에 그걸 이용하고 있는 것도 맞다. 트라우마를 이야기함으로 받는 동정의 시선, 배려 그런 것들을 내심 기대하고 있는 것도 맞다. 그런 배려들을 받으면 삶이 너무나도 편해진다. 트라우마가 있는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는 그랬다. 트라우마라는 티켓으로 좋은 좌석을 얻어왔다. 아프기 전에 먼저 아픈 부위를 보여주어 넘어간 적이 너무나도 많았다. 모두가 나와 같지는 않겠지만 나는 목적론을 무시할 수 없었다. 나의 우울, 아픔에는 목적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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