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환경과 좋지 못한 결과, 그리고 부풀려진 노력
모든 사람이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없다. 자원은 한정적이고 그 한정적인 자원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을 열심히 하거나 사업이 성공하거나, 운이 좋아 로또에 당첨이 되면 좋은 환경을 만들 수 있지만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환경은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부분이다.
나는 나의 환경에 큰 불만도 큰 고마움도 없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약간의 불만은 있다. 엄청 못사는건 아니지만 늘 돈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나의 학창시절 선택의 거의 모든 것에 돈이라는 요소가 개입했고, 그 요소는 나의 선택을 늘 막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포기한건 아니다. 나도 나름 한정된 자원 속에서 노력했다. 부모님은 빚까지 져가며 최대한 도와주셨다. 나는 그런 상황이었는데 주변 사람들은 아니었다.
내가 살던 동네는 대부분의 가정 형편이 좋았다. 가정 분위기는 좋지 못할지언정 수입이 좋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늘 구경만 하던 게임기가 몇대씩 있었고, 방학이 되면 해외여행을 한 번쯤은 다녀온다거나 스키장에 간다거나 나는 어떤 것도 하지 못한 문화 생활을 너무나도 쉽게 영위했다.
그런 가정환경의 아이들은 밝고 명랑했다. 사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정도로 밝았다. 밝은 만큼 무언가를 제대로 하는걸 보질 못했다. 내가 보기엔 늘 진심이 아니었다. 조금 하다가 안되면 '집에 돈이 많으니까' 라거나 '사업 물려받지 뭐' 라거나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식의 마음가짐으로 그만둬버렸다. 꼭 그런 이유들이 아니더라도 그들에겐 여유가 있었다.
한 번은 친구가 하소연을 한 적이 있었다. 집이 어려워져서 요즘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어서 마음이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때까지 그 친구가 정말 힘들다고 생각했다. 나만큼 힘들어졌구나 생각하고 공감해줬다. 하지만 줄었다는 용돈이 50만원이라는 이야기를 듣고서 나는 그 친구를 공감해준 것이 너무나도 바보같이 느껴졌다.
고등학생 시절까지 용돈이 10만원이었고 그마저도 대학에 와서 용돈을 일절 받지 못하고 알바와 과외를 전전했다. 심지어는 돈 걱정과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공황장애까지 왔을 정도였다. 그런데 집이 힘들어져서 하고 싶은걸 못한다고 말을 하는게 가당키나 한 것인가. 정말 하고 싶은데 못하는걸까. 아니 그냥 핑계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 핑계가 나에게는 안통했을 뿐이고.
요즘에는 SNS에 자신이 한 것들을 올리는게 꽤나 자연스러운 현상이 됐다. 그렇게 이상한 것도 아니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한 번 봐줘' 라는 것은 SNS가 있기 전에도 있던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다. 하지만 부풀려진 노력이 너무나도 많다.
지인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다가 그런 글을 본 적이 있었다. 자신을 PM 지망생이라고 소개를 하고, 자신이 프로그래밍 한 것을 올리며 오늘의 코딩 끝이라는 스토리였다. 하지만 프로그래밍이라고 한 건 HTML이었고, JS도 들어가지 않은 정말 말 그대로 마크업 수준의 결과물이었다. 프로그래밍을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대단하다고 생각했을 그런 사진이었겠지만, 실제 현업에 있는 사람들은 잠깐만 봐도 이게 프로그래밍이 아니라는 것은 간단히 알 정도의 얄팍한 지식을 뽐내는 글에 불과하다.
나는 그 짧은 인스타 스토리에 엄청난 역겨움을 느꼈다. 모르는 사람을 속여서 자신을 뽐내기 위한 그 의도가 너무 역겨워 더 이상 보지 않았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지인 역시도 잘 사는 집의 귀한 자식이었다.
내가 그런 사람들을 보며 역겨움과 불쾌감을 느끼는건 나의 열등감일까. 사실 부럽기도 하다. 내게 그런 자본이 있었다면 더 나은 성과를 냈을텐데하는 그런 부러움이 있다. 그러나 내가 그런 상황이었으면 나도 그러지 않았을까. 지금 당장이 편하니까 그냥 적당히 해버리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을 것 같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건 열등감이 맞는거 같다. 아니 열등감이다. 가지지못한 것에 대한 열등감. 그들의 여유에 대한 시기질투. 그들이 아무리 끈기가 없고 노력을 안하고, 얕은 노력을 엄청난 것으로 포장한다해도 그들은 가진게 많다. 내가 아무리 그들을 비판한다고 해도 달라지는건 없다. 오로지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건 없기에 적당히 생각을 멈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