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애매함에서 스트레스를 느낀다
보통 글 하나를 작성하고, 수면을 취하면 대부분 없던 일이 되는데 오늘은 조금 다른 거 같다. 일어났는데도 여전히 뭔가 가라앉은 기분이다. 뭔가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굉장히 불쾌하다. 몇 년간 해결되지 못한 미제사건을 보는 듯한 기분이다.
사람은 애매한 것에 스트레스를 느낀다. 우스갯소리처럼 주변 사람들한테 말하는 말이다. 농담처럼 말 하지만 난 이 말을 꽤 많이 신용하는 편이다. 나는 애매한 것이란 건 정해지지 않았다고 본다. 우리가 추상적인 무언가를 볼 때도 같은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사랑, 행복, 우울 이런 추상적인 감정들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크게 느끼지 않는 이유는 명확한 이미지나 상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한 이미지나 행복에 대한 상황, 우울에 대한 색채 모두 우리 머릿속에 있고 하나의 참조 자료로 이용된다.
그러나 처음 본 것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우리가 현대 미술을 거부하는 이유도 같은 이유라고 본다. 작품은 추상적인 주제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이지만, 현대 미술은 구체적인 부분들을 최대한 지우고 지워서 최대한 추상적이게끔 압축한다. 말 그림을 예시로 들면 우리가 말을 볼 때 말이라면 갖추어야 할 여러 요소들이 있을 것이다. 길쭉한 다리 4개나 긴 얼굴 등등… 그러나 말이라는 존재를 추상화하면 이런 외관적인 모습이 아니라 속성이 남게 된다. 빠름, 동물, 강인함 등등… 이런 요소만 가지고 그림을 그리게 되면 더 이상 말의 모습이 남지 않고 유선형의 무언가가 남게 된다. 이런 유선형만 보고 말이라고 이야기를 하면, 우리는 어느 부분에서 말이 보이는 지 찾게 되고 쉽게 찾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물론 추상화나 현대미술이나 미술학적 장점은 존재하지만, 일반인들의 기준에서는 그렇다.
앞에서 이 얘기를 길게 한 이유는 이런 이야기는 인간관계에서도 통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라는 것은 자체가 추상적이다. 인간관계의 문제는 멀리서 봐도 추상적이고 가까이서 봐도 추상적이라는 것이다. 어느정도의 맥락이 들어가면 구체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결국엔 추상화의 집합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판단력이 흐려져서 추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일 수 도 있다. 나는 인간관계에서 엄청난 애매함을 느낀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항상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지는 않는다. 이 상황에서는 저렇게, 저 상황에서는 저렇게 각 상황에 따라 다르게 행동한다. 애초에 사람이 꼭 일관적일 필요도 없다. 다들 예측되면서도 어디로 튈지 모르게 행동한다. 그래도 일부분은 예측이 된다는 게 핵심이다. 사람이 언제나 럭비공처럼 튀지는 않는다. 어떤 행동에는 반드시 어떤 원인이 있고, 대부분 눈에 보이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 귀인이 보이지 않게 되면 그 사람의 행동에 스트레스를 느끼게 된다. 천방지축으로 돌아다녀서 컨트롤되지 않는 아이의 행동에 부모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아까의 예시는 명확하게 눈에 보이며 원인을 찾지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지만, 어떻게 보면 모호함이나 애매함으로 보일 수 도 있다. 아이의 귀인이 정확하지 않음에서 모호성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느낀다. 원하는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데, 그 이유를 못 찾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사람들은 각기각색의 애매모호함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결국은 머릿속에 없는 추상적인 것들에서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상대에게서 과한 애매함을 느끼고 있다. 행동에 명확함이 없는 기분이다.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은 건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지 전혀 파악이 안 된다. 내 머릿속에는 이런 상황에 대한 참고자료가 없다. ‘원래 그런 사람이라서 그래’라고 이해를 하는 것도 이젠 정도가 지나쳤다. 이런 애매함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꽤나 심각하게 말이다.
내가 유독 피곤한 사람이라서 그럴 수 도 있다. 나와 인간관계가 있었던 사람들에게 미안해졌다. 만약에 이 글을 보고 있다면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나도 내가 이렇게 피곤한 사람인지 글을 쓰면서 느꼈다. 아마 내가 위에서 말한 상대라는 사람도 이 글을 볼 수도 있을 거 같다. 만약에 보게 되었고, 이게 자신이란 걸 알았다면, 너무나도 피곤하게 굴어서 미안하다고 전해주고 싶다. 글로는 이렇게 썼지만 아마 대면해서 만날 때면 이미 여기 적은 내용들은 잊어서 미안하다는 말은 전하지도 못 할 거고 아마 상대도 껄끄러워할 거 같다.
처음에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 고민했는데, 이제는 아무래도 좋은 거 같다. 어떻게든 끝이 났으면 좋겠다. 좋게 끝나면 좋은 대로, 나쁘게 끝나면 나쁜 대로 말이다. 나쁘게 끝나면 조금 기분이 안 좋거나 꽤 우울할 거 같지만, 어떤 결말인지 보고 싶다. 어디까지나 서로가 기분 상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일방적으로 관계의 결론을 보고 싶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내 마음이 편할지 몰라도, 상대의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또다시 내 기분도 편하지 않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