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면
사람 감정이란 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스스로의 감정이든 타인의 감정이든 쉽게 조종할 수 없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타인의 감정을 조종하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고, 그 사람의 의지가 있을 것이기에 힘들다. 하나 나의 감정은 나의 것인데 내가 조종하지 못한다니, 그렇다면 이건 정말 나의 감정이 맞는 걸까? 나는 그런 의문이 들었다.
예전에는 감정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감정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슬픈 감정이나, 분노의 감정이 들면 각자의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풀곤 한다. 어떤 사람은 울고, 어떤 사람은 격한 운동을 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가 가장 즐겁게 하는 것을 한다. 그런데 난 그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모른다. 어떻게 해야 감정이 해소되는지를 잘 모른다.
사실 방법은 알고 있다. 사람들이 이야기해 주는 것들이 정말 많아서 그 정보들 중에서 공통된 것을 찾으면 되니까 말이다. 대부분 다른 활동에 집중하거나 슬프면 울고, 화나면 화가 난다고 감정을 표출하라고 했다. 근데 난 울어본지도 정말 오래됐다. 화를 내본 지도, 짜증을 내본 지도 정말 오래됐다. 그저 웃을 뿐이다. 무표정과 웃음이 왔다 갔다 한다. 마치 웃는 것 밖에 할 줄 모르는 기계같이 말이다.
요즘에는 슬프면 울음이 나오는 게 아니라 잠이 온다. 급격하게 우울해지고, 급격하게 잠이 쏟아진다. 처음에는 뭐 때문에 갑자기 졸려오는지 몰랐다. 의문에 빠져있다가, 이런 증상을 몇 번 마주하고 나서 슬플 때마다 이런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래서 슬프면 울기보다 피곤해한다.
슬프면 졸려오는 증상을 겪고 나서는 슬프면 운다는 말이 사실 잘 와닿지가 않는다. 3년 전에 꿈이 좌절됐을 때는 울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울지 않았다. 예전에 좌절된 꿈이 생각나면 울컥하곤 한다. 하지만 울지는 않았다. 그냥 졸릴 뿐이다. 하지만 울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차라리 눈물이 나오면 좋을 텐데, 차라리 통곡이라도 하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금방 피곤해져서 잊곤 한다.
화도 내본 지 정말 오래된 거 같다. 부당한 일을 겪어도 그냥 내가 한 발짝 물러나지 하는 생각뿐이다. 그렇다고 화난다는 감정을 아예 못 느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표현하는 것처럼 불같은 느낌이 아니다. 몸이 불편한듯한 불쾌한 느낌이다. 강렬한 빨강이 아니라 칙칙한 보라와 같은 느낌이다.
화를 내지 않는 이유는 위와 같이 내가 물러나지 하는 생각 때문도 있지만, 상대와의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화를 내면 결국 싸움으로 이어진다. 싸움으로 이어진 후에 관계를 회복하는 건 쉽지 않다. 나는 관계 회복과 관계 개선 같은 것은 잘 못한다.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나는 그저 멀어질 뿐이다. 그렇기에 난 사람들에게 화내고 싶지 않다.
어쩌면 이 모든 건 내가 사람들을 신경 쓰고 있어서인 거 같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신경 쓰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어도, 가끔 다른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 내 이름을 들으면 그런 생각은 무용지물이 된다.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싶고, 나를 좋게 생각하길 빈다. 그러다가 나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가 나오면 급격하게 우울해진다. 나는 그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겉모습은 잔잔하고 밝아 보일 수 있지만, 내면은 우울한 혼돈인 거 같다. 갑자기 울고 싶어 졌는데 역시나 울지 못하고 그대로 글 쓰는 걸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