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등학생 때 아주 강한 믿음이 하나 있었다. 사람이 무조건 대학을 가야 한다는 믿음이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으면 사무직 직장도 얻을 수 없고 매일 아르바이트나 하면 근근이 먹고살 것이란 것이다. 솔직히 대학을 안 나오면 사람 구실을 못하는 줄 알았다. 그 때문에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살펴보지 않고 있더라도 없애려고만 했다. 나의 개성이나 재능 같은 것들을 모조리 묻어버린 것이다. 그러고선 그저 앉아서 시간만 보냈다. 공부도 하지 않고 "대학을 가지 않으면 안 돼!"라는 생각만 했다. 그러니 당연히 대학도 잘 갈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겨우 지방 국립대에 붙었다. 그러고는 "그래도 지거국 붙은 게 어디야 지거국도 좋은 직장 다닐 수 있을 거야"하는 막연하고 이상한 믿음만 가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대학을 다니고 한 학기가 지나니 점점 회의감이 밀려왔다.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일까? 대학 졸업하면 먹고살 수는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던 도중 내 불안에 확신을 주는 사건이 있었다. 수업 도중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우리 과는 이론을 아무리 열심히 배워도 실전에서는 못 써먹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순간 난 내 학과에 대한 모든 애정이 떨어져 버렸다. 더 이상 쓸모없는 게 돼 버렸다. 그러고 주변을 둘러보니 컴퓨터공학과가 취업이 잘된다. 돈을 잘 번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컴퓨터를 잘 다루는 모습도 멋있어 보였다. 당장 노트북을 켜고 컴공과 전과를 알아봤으나 경쟁률이 말도 안 되게 치열했다. 그래서 머리를 굴리고 다른 정보를 더 찾아보니 소프트웨어 가상학과 란게 있었다. 이 과는 컴공이랑 똑같은 커리큘럼으로 수업을 했으나 다만 실존하는 과가 아니었다. 전과가 아닌 복전을 해야 했다. 이때 이 노력으로 나란 사람에 대해 더 들여다 보고 더 돈을 썼다면 좋았을 텐데... 결국 복전 신청을 넣고 합격했다. 그렇게 2학기도 다 지나가고 겨울 방학이 왔다.
지거국 컴공과로는 개발자로 취업도 못한다는 말이 들려왔다. 심지어 난 컴공과도 아닌 비전공자나 마찬가지다. 위기였다. 또 내 과가 쓸모없는 게 돼 버렸다. 그러고 주변에서 편입을 추천해 줬다. 1학년을 다니고 중퇴하고 1년 편입을 준비해서 3학년으로 인서울 컴공과로 들어가면 딱 알맞지 않냐고. 그때 정말로 머리가 번뜩였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기회라 여겼다. 그러고 대학교를 자퇴하고, 서울로 가 편입 준비를 했다.
편입 준비를 하며 대학에서 벗어나 알바도 하고 대학 밖 사회인을 만나보며 사회를 직접 들여다볼 기회가 생겼다. 사회에 나와보니 대학 안 나온 사람이 정말 많았다. 그러고 대학 나와도 아르바이트로 먹고사는 사람이 정말 많았고, 대학 나와서 사무직으로 가는 사람은 정말 적었다. 대부분 카페, 쇼핑몰 같은 서비스직으로 많이 갔다. 정말 신기했다.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구나 싶었다. 또 내가 가고 싶은 대학들은 직접 가봤다. 지금까지 지방에 산다는 이유 만으로 내가 다니고 싶은 대학이 어디에 위치해 있고 어떻게 생겼는지 볼 생각도 안 하고 그저 이 대학에 오고 싶어만 했다. 난 보지도 않고 뭔지도 모른 채 그저 헛된 욕심만 부리고 있던 것이었다.
막상 대학을 둘러보니 시큰둥해졌다. 내가 다니고 싶던 대학은 다 환상이었다. 이 환상이 깨지고 나니 더 이상 대학교를 다니고 싶지 않아 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등학생 때도 학교를 다니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자유롭게 살면서 나를 발전시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싶은 사람이었다. 이제 대학교 환상이 다 깨졌으니 내가 진심으로 어떤 걸 원하고 하고 싶은지 찾아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