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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지제스트 Sep 29. 2024

인생에 안정기는 언제인가

Ep. 9


정답이 없겠지.

같은 사람이 없듯이 같은 인생도 당연히 없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나도 같은 집에서 같은 부모 아래에서 자라도 환경도 같을 수 없고 같은 방향으로 크지 않는다.


어린 시절까진 모르겠고,

학생 시절엔 학교라는 사회에서 선생님한테 인정받고,

친구들 사이에 존재감을 높이거나 낮추거나 하느라,

당장 해내야 하는 매 순간의 수업, 과제, 시험 허들을 비틀거리며 넘어가느라

먹고사는 걸 걱정하진 않았다.

감사하게도.


대학에 가면서 '성인'이라는 타이틀에 뭔가 책임을 져야 할 것 같아

경제적인 짐을 하나씩 손에 들고 어깨에 둘러메는 시늉을 했다.

부모님께 계속해서 도움을 받으며 타지 생활을 했고,

죄송함에 숨고 싶으면서도 "돈 버는"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아니... 관심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악착같이' '아등바등'이 아닌 '적당히' '여유롭게' 살기 위한 도피를 했다.




그러면서 30대가 되면, 40대가 되면 나는 매우 안정적인 인생을 즐기고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냥 그 시간이 오는 줄 알았나 보다.


30대가 되어 인생의 안정기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으면 좋은 방향으로 변화해야 하는데 위기감과 두려움에 휩싸여 도피를 했다.


20대 시절 나의 시간을 거의 함께 한, 미국에 정착한 선배 언니가 얼마 전 귀국해서 만났다.

잠깐 만나는 동안 지금 나의 상태를 티 내지 않으려고 연기했지만, 눈치가 백 단이다.

절대 얘기하기 않으리라 다짐하고 만났는데 술술 쏟아져 나왔다.


애처로운 눈빛으로 얘기를 들어주던 언니의 한 마디.

네가 자연스럽게 인사시키려고 데리고 왔을 때, "네가 참 순진하다고 생각했어..."


순진.


마음에 꾸밈이 없고 순박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세상 물정에 어두워 어수룩하다는 의미도 있다.

"넌 어쩜 그리 세상 보는 눈이 없었니..."라는 의미인 걸.

"잘했다"가 정말 문자 그대로 good job 이 아닌 "(으이그!) 잘~~ 했다"의 질타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눈물이 났다.

30이 넘어서도 세상 보는 눈이, 사람 보는 눈이 그리 없었다니.


나도 나를 모르는데, 상대를 어떻게 알겠어.

그 당시 둘 사이의 케미는 맞았을 수도 있고, 맞다고 착각했을 수도 있지만

내가 변해서든, 상대가 변해서든 맞았던 케미가 맞지 않아 질 수도 있는 거니까.


그 당시 순진했을지라도 정답이 아니라고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좋았던 순간도 분명히 있었다.

그 사이 안 좋았던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좋았던 순간들이 덮였다.


30대의 위기감과 두려움을 결혼으로 극복하려고 했고,

결혼으로 상대에게 의지해서 안정적인 40대, 50대를 맞이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불안정한 40대를 보내고 있고,

튼튼한 다리를 여유롭게 건널 것이라 생각했던 시기에

벼랑 끝, 절벽 끝자락에 아슬아슬하게 서있다.


혼자 인생을 꿈꿨지만 혼자 인생이 자신이 없어

의지하겠다며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왔지만,

내 몸 하나 건사하지도 못하겠다고 도망쳤는데

챙겨야 할 사람들이 더 늘어났고 더 불안한 상태가 되었다.


결혼은 선택이다.

결혼 해야 진정한 어른이 된다고 했던가.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해야 하는 건지,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얼마 전 본 명언.

웬만하면 '그런가? 그렇구나~' 반응하지만

이 글귀는 공감하지 못했다.

아직 못한 건지, 앞으로도 못 할 건지 알 수 없지만.






불안함, 답답함을 어딘가에 쏟아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글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그 시기에 "글쓰기"를 통해 치유하라는 책을 몇권  읽었다.


그렇게 용기를 얻어 시작한 글쓰기.


나와 마주하는 수다

나와 마음을 쏟아내고 비우고

다시 일어서기 위한 발버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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