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
선택(選擇)
여럿 가운데서 필요한 것을 골라내는 것.
수많은 갈림길에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의 결과 값으로 채워지는 인생을 살고 있다.
온전히 나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될까?
국어사전에 보면 선택의 또 다른 의미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몇 가지 수단을 의식하고, 그 가운데서 어느 것을 골라내는 작용"이다.
인생에서의 선택은 주관식이라기보다는 객관식 문제에 가깝다.
매 순간 나의 의지가 크게 반영되지 않은 환경에서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택.
답을 명확히 알고 자신 있게 선택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찍는다.
시험 볼 때 애매한 문제를 풀 때처럼.
태어난 환경, 부모님, 형제 등의 가정환경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것이고, 평생 가져가야 하는 환경.
평등하고 공평한 기회의 가치는 중요하지만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그 순간순간 어땠는지 기억에 나지 않지만 평균적으로 어린 시절 나는 크게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자랐던 것 같다.
스스로 인정받고 살아남기 위해 "독립적" "당당함"을 갑옷으로 걸치고 보호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 몸속 세포에 "결핍" "상실" 같은 요소들이 크게 자리 잡고 있지는 않다.
어떤 이유에서든 "인정" 받는 뿌듯함이 나를 감싼 갑옷을 더 튼튼하게 만들었으니까.
나이가 들고 주변이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주변에 나를 보이지 않고 존재하는 편을 택한 것 같다.
부모님이 싸우는 걸 본 적이 없다며 평온한 가정환경을 자랑스러워했는데
엄마의 희생이 엄청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상처를 받았다.
나이 차이가 좀 있는 동생과 가깝다고 생각했지만
동생의 상처와 외로움을 깊이 알지 못했고, 표면적으로 보이는 불편함을 외면했다.
어린 나이에 진로를 결정하고 멀리 간 동생을 부러워했지만
진실은 답답한 집에서 벗어나고 싶은 탈출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빠와 동생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하면서 지쳤다.
겉으로는 평화롭고 화목한 가정.
누군가의 희생과 인내, 그로 인해 평생 안고 가는 상처가 숨견진, 순간접착제로 붙여놓은 깨진 유리병 같다.
또 다른 깨진 유리병을 하나 더 들여놓고 싶지 않았다.
첫 번째 유리병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조심조심 안고 갈 수밖에 없지만
두 번째 유리병은 만들지 않을 수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시험 종료 시간에 쫓기듯
문제 해결을 위해 선택지에서 골라낸 답안이
오답이었다.
문제를 틀린 건 알았는데 결과를 바꿀 수는 없다.
마치 문제 답에 따라 바뀌는 다음 문제를 푸는 시험 같다.
처음에는 잘 맞을 것 같아 선택한 옷을 입었는데 어색하고 불편했다.
옷에 맞춰 내 몸을 조금 바꾸면 불편함은 곧 익숙함으로 바뀔 거라 기대했지만
점점 더 불편해져서 벗어던져버리고 싶어 진다.
수선해서 입어야 할까,
옷에 맞게 체형을 바꿔야 할까,
버려야 할까.
얼마 전 읽은 강가희 작가의 '나를 위한 글쓰기 수업'책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내 말간의 고통과 직면하는 일이었다"라는 문장을 보고 감탄했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되새김질하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싶지만,
다시 똑같은 선택의 순간은 오지 않지만
앞으로의 선택에 좀 더 신중할 수 있는 가능성은 높지 않을까.
오답노트를 공부하면서 다음 시험을 더 잘 보기를 바라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