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사람이기에 먹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먹기 위해 태어났을 존재이다. 존재라는 것이 생기자마자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있게 해 준 ‘부모’라는 존재에게 연결되어 약 10개월 동안 부모를 통해 영양분을 받아먹는다. 어린이에서 어른, 노인까지 우리의 삶이 끝나지 않는 동안은 우리는 먹고 살아가는 것에 고민을 할 것이다. 그 고민 속에 “오늘은 무엇을 먹지?”라는 문제에 대하여, 우리의 삶 속에 있는 음식이라는 것에 대한 의미 있는 글을 써내려 갈 생각이다. 비록 기준점은 나에게 맞춰지겠지만 읽는 독자들은 ‘나’라는 존재에서 자신들의 음식과 저자의 음식을 비교해 가며 읽어도 재밌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
1. 그림이 많은 요리사.
술을 좋아하고 요리를 좋아한다.
어릴 적 때부터 남이 해준 요리보다는 내 입맛에 맞춘 요리가 내 입에는 더 맞아왔기에 사실 나는
남들이 말하는 그리운 집밥에 대한 여운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시간대를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고등학교 시절의 나의 모습이 잠깐 떠오른다.
이제 막 졸업을 앞두고 있던 고등학교 3학년 12월
초, 예비 성인이었다. 눈이 펑펑 내리던 한겨울 속에
알바를 갈려고 폭설을 뚫고 출근하고 있던 의지의
고등학생이었다. 내가 막 고깃집 출근을 한지 반년이 조금 넘었을 때이다. 어느 때와 다르게 오픈을 하고 눈이 내려 그날은 점심 장사가 완전 폭망이라는 걸 직감했었다. “,“오늘 저녁은 그래도 테이블 2바퀴 정도는 돌겠지?”라는 생각에 초장부터 빠진 게 없는지 부족한 건 없는지 확인하며 저녁을 기다렸다.
무수한 알바 경험에 신입 티는 안 났던 나라서 손님을 맞이하는 거에는 별 거리낌이 없었다. 나름대로의 어린 나이지만 단골의 재미도 알았고 내가 만든 음식은 아니지만 맛있다며 감사하다는 손님들과 아들 같다며 구겨진 만원을 건네어 주시는 약주에 취한 얼큰한 손님분까지 감사한 손님들이 정말 많은 장소였다. 유독 폭설이 많이 내린 저녁날 일명 아르바이트생들끼리 ’ 빨뚜 아저씨 부부‘라는 오리지널 참이슬에 양념 소갈비 2인분 그리고 후식 냉면, 깔끔하게 정해진 양만 드시던 한 노부부였다. 단골이었던지라 늘 물어보는 멘트가 있다. ”사장님 늘 드시던 걸로 드릴까요? “ 대답은 늘 소리 없는 끄덕임이었다. “역시! 오늘도 그 메뉴일 줄 알았어!”라는 속마음으로 나 자신에게 자랑하듯이 이야기를 했다. 테이블에 밑반찬과 불을 올려 드리고 차가운 소주와 사이다는 단골에 대한 서비스였다. 그 사이다는 매번 받으실 때마다 할머님은 너무 감사하다는 듯이 웃으면서 받아주셨다. 뼈가 붙은 양념갈비가 나오고 불판에 고기를 올리고 두 분이서 건배를 하신다. 잔을 곧장 비우시고 나서는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이야기한다. ”여보 이번주도 고생 많았어요.”라며 뜨거운 불 때문에 인상은 쓰고 계셔도 달콤한 말을 하는 장면은 이 가게에서 볼 수 있는 하이라이트 같은 일상 속 기쁨이었다. 그리고 그날은 가게 마지막 출근날이었다. 단골손님들을 두고 가게를 떠나기 아쉬운 마음에 매니저 형 한테는 할아버님한테 인사드리고 싶은데 그냥 가서 감사인사 드리기는 어색해서 내가 육회를 살 테니 서비스라고 말하면서 가져다줘도 괜찮겠냐는 질문을 했었다. 매니저는 형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을 했었다. “뭔 결제냐 형이 마지막날에 이런 것도 못해주겠냐.”라면서 자신을 그렇게 쪼잔한 사람으로 봤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나는 들뜬 마음에 육회에 나갈 흑임자 소스와 막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 가게 육회는 흑임자 소스에 찍어 먹으면 진짜 맛있었기에 듬뿍 담아 준비하고 있었다. 매니저 형이 내가 세팅 준비가 끝난 걸 보고는 나를 주방으로 불러들여 이야기했다. “네가 만들어봐라” 설거지하라고 부른 줄 알았던 나는 잘 못 들은 줄 알고 다시 물어봤다. 그러더니 형은 한 번만 말한다며 육회에 들어가는 재료를 말해줬다. 우둔살 250g, 설탕 1.5T , 맛소금 1t , 미림 1t , 맛간장 1t 넣고 가볍게 버무려주라는 말과 함께 자기는 정작 다른 일을 보고 있었다. 나는 떨떠름한 상황에 일단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 만들어 보는 육회였기에 조심스러웠다. 일단 우둔살을 넣고 설탕, 맛소금, 미림, 맛간장까지 넣고 형을 불렀다. 형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음 레시피를 알려줬다. 가니쉬 재료였다. 무순 반손, 참기름은 한 바퀴, 참깨 솔솔 이렇게 집에서나 쓸 것 같은 단어로 이야기해서 일단은 늘 나가던 육회 모양대로 조심스레 플레이팅을 잡아봤다. 둥글고 넓은 접시 위에 얹어진 육회 위에 참기름을 한 바퀴를 둘러주고 그 위에 잘 정렬된 무순을 올려준다. 그러면 붉은 고기가 볼품없이 무언가 빠져 보이는 자리에 참깨를 지저분하지 않게 뿌려주었다. 그럴싸했다. 플레이팅을 끝내고 형을 불렀다. 형은 바쁘다는 듯한 말투로 말하면서 그 정도면 됐다고 말하며 형은 고기를 다 드셔가던 빨뚜 아저씨 테이블을 보며 나에게 말을 건넸다. “마지막 날 이니깐 손님한테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 간결하게 생각해서 드리면서 말하고 와.”라는 말을 듣고 내가 직접 만든 육회를 들고 손님한테 향했다. 보폭으로는 주방에서 빨뚜 아저씨 테이블 까지는 10걸음도 안 됐는데 그 10걸음 동안 곧 터질 거 같은 비트코인 채굴 컴퓨터 마냥 무슨 말을 하까 머리를 굴리던 중 이미 나는 손님 테이블 앞에 있었다. 할아버님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셨다. “육회 맛있어 보이네 총각!”화들짝 놀라며 난 말했다. “사장님 저 오늘 마지막 출근 날이라서 인사드릴 겸 육회 좀 맛보시라고 가져와봤습니다.”라며 나도 모르게 저절로 입을 열어 이 이야기했다. 할아버님은 아쉬운 듯 말씀하셨다. “직접 만든 건가? (나는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느끼하지도 않고 소스에 찍어 먹으니깐 정말 맛있네 여보도 한 젓가락 들어요. “ 할머님이 드시는 걸 본 뒤 할아버님은 지갑을 꺼내면서 카드를 주시면서 계산을 부탁하셨다. 늘 자리에서 계산을 부탁 주셔서 어렵지 않았기에 늘 하던 대로 영수증 용지와 카드를 돌려드렸다. 카드를 받으신 할아버님은 카드를 넣으시며 지갑에 5만 원짜리 2장을 꺼내시더니 “그동안 잘 챙겨준 값 더 해서 오늘 먹은 육회 값이니깐 부담 갖지 말고 받아 줘요.” 라며 그 당시에 팁은 만원이 전부였던 알바 생활에서 10만 원을 받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하지만 나도 이 돈은 그냥 냅다 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내가 이 돈을 노리고 서비스를 챙겨드렸던 거였다면 뒤 돌아보지 않고 받았을 것 이기에 그럴 마음이 없던 나는 정중하게 거절드리고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저희도 늘 찾아주셔서 감사한 마음에 드리는 건데 이런 팁까지 안 주셔도 괜찮습니다.”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러더니 할아버님은 되받아 치시면서 “몇 살이에요? (곧 고등학교 졸업이라 말씀드렸다.) 우리 손주가 22살이에요. 우리 손주보다 어린 친구가 이렇게 고생하면서 일하는 거 보면 손주 같아서 주는 거니깐 당신도 할아버지가 용돈 준다 생각하고 받으면 되는 거예요. “ 라며 나는 어쩔 줄 모르고 빈 육회 접시와 반대 손에는 5만 원 2장을 집고 있었다. 그렇게 그 노부부는 웃으면서 가게를 나가셨고 나는 음식이 빈 테이블을 보면서 생각이 들었다. “음식은 정말 재미있는 문화다.” 음식은 사람을 웃게 하는 힘을 주는 문화인 것 같았다. 음식이라는 소스코드는 어떤 이에게는 추억이 담겨 있을 수 있고 또 다른 어떤 이에게는 그리움, 행복 같은 다시 찾고 싶은 힘이 있다 생각한다. 어린 나이였지만 내가 이 글을 적고 옛 기억을 거슬러 올라 그때의 마음가짐은 변치 않고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기에 음식은 언제나 정말 어려운 물리 서술형 같은 문제 같다는 느낌을 종종 받아온다. 하지만 내가 만든 이 한 그릇에는 수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고통이 들어갔을지는 내 가족도 내 친구들과 주위 사람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다만 지치고 힘들고 쉬고 싶어도 온갖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먹었을 때 사람들의 표정은 언제 내가 힘들었었냐라는 듯 나의 피로는 하늘로 향해 흩 뿌려진다. 내가 만든 음식은 미슐랭을 받고 티브이에 소개될 만큼 각광받을 만한 음식이 아니지만 나는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화를 만들어 주고 그 문화 속에서 교류하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싶기 에이 일을 평생 그만두지는 못할 것이다.
문화를 사랑하고 즐겨주세요. 여러분들은 문화를 숨 쉬게 하는 주인공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