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왜 나이 들면 '불만'이 '불안'으로 전이될까?

by 개미와 베짱이

나이가 들면 ‘불만’보다 ‘불안’이 더 커진다. 나이와 불안은 비례한다. 50이 넘으면 대부분 이 공식이 맞아진다. 젊었을 때에는 ‘불안’보다 ‘불만’이 더 컸다. 자신의 역량과 성과에 대한 공정한 평가와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아 울분을 쏟아내거나, 일에 파묻혀 워라밸은 화중지병(畵中之餠)이고 ‘타임 푸어(time poor)’가 되어 운동할 시간도 없고 여가생활은 꿈도 꾸지 못했던 시절, 칡넝쿨처럼 얽히고 설킨 관계에서 이타적 눈치게임에 휩싸였던 기억들은 ‘불만’을 분출하기에 충분했다. 나이 들면 그 불만이 호사(豪奢)스럽다는 짧은 생각과 함께 그리워진다. 나이 드면 불안이 커지는 이유는 뭘까? 장년기에 들어서면 모든 성장은 멈춘다. 신체적 성장은 물론이고 경제적 성장 또한 한계에 이른다. 현상유지만 해도 반가울 정도이다. 건강도, 자산도, 관계도 어디가 끝인지 모르는 나락으로 내려앉는 형국이다. 불안은 초청받지 않은 손님일 뿐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자생한다. 곰팡이처럼 질긴 생명력을 갖고 아무 돌봄없이도 혼자 잘 살아간다. 반갑지도 않은데 말이다. 불안은 심리적 위축을 불러온다. 나이 들어가는 것도 서러운데 사회적 쓰임새가 다 되었다는 것에 자존감이 낮아진다. 그동안 쌓아 온 연륜이 더 이상 사회적 가치가 없어졌다는 것에 자괴감이 든다. 낮아진 자존감은 자꾸 그늘지고 구석진 곳을 찾는다.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려워 지면서 움츠리게 되고 숨으려고 한다. 다른 사람과 대면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겁이 난다. 질병, 가난, 외로움의 장수 3대 리스크와 불안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그 대책은 과연 뭘까!

첫째, ‘육체적 건강 상실’에 대한 불안이다. 유병장수(有病長壽)이다. 우리나라 평균수명은 2024년 84.3세로 OECD 국가 중 3위이다. 60세에 정년퇴직하면 은퇴기간은 최소한 24년이다.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49.3세를 기준으로 하면 약 34년이나 된다. 2025년 중위연령(46.7세)을 대입하면 최소한 90세 이상까지는 산다는 것으로, 주된 일자리 퇴직 이후 약 40년 이상이 은퇴 생활이 기다린다. 더군다나, 평균(기대)수명과 건강수명 차이는 2021년 기준 11.1년이다. 유병기간으로 조사된 기간은 평균 16.9년이다. 은퇴 생활 절반을 유병기간으로 보낸다는 것은 여간 걱정이 아니다. 유병기간은 의료 부담과 직결된다. 약 17여년의 의료 부담은 가족의 재정적 압박과 함께 돌봄에 따른 육체적 심리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어르신들이 ‘늙으면 죽어야지’라는 말을 하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주위에 부담이 되기 싫어서이다. ‘2024년 고령자 통계’에 고령자 가구는 27%, 혼자 사는 고령자는 21.7%가 건강에 자신감 있다고 답했다. 역설적으로 10명 중 8~8명이 건강에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현실이 이럴진대 어찌 불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불안한 것이 당연하다. 직장인일 때에는 시간이 부족했다는 변명과 주변의 유혹과 타협하여 건강 돌봄에 소홀한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둘째, ‘경제적 건강 상실’에 대한 불안이다. 경제적 빈곤함이다. 빠듯한 노후준비와 성장한 자녀들의 독립 지원 등 목돈 지출될 일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직장이 있다는 것은 매월 고정적으로 현금이 창출되는 ‘마르지 않는 샘’이 있다는 의미이다. 다만, 샘의 깊이가 각자 다를 뿐 가뭄이 들어도 샘은 마르지 않았다. 샘이 마르는 기점이 바로 은퇴이다. 은퇴라는 이벤트는 가정경제에 ‘동맥경화’라는 병을 가져온다. 동맥경화는 그동안 모아두었던 곳간을 허물어 쓰도록 강요한다. 허물어 쓸 곳간이 있으면 좋겠지만 국민연금공단 국민연금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50대 이상 중고령자 2명 중 1명은 노후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는 통계를 보면 불안해진다. 노후준비 한다는 44.4%도 공적연금 의존도가 72%나 된다. 퇴직연금(2.9%)이나 개인연금(1.8%) 의존도는 아주 낮다. 2024년도 국민연금 평균 급여액은 약 65만원 수준으로 노년에 부부 적정 생활비(268만원) 대비 턱 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한숨이 안 나올 수 없다. 자녀들에게 기댈 수도 없다. 자녀세대는 세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부모세대보다 더 가난한 첫 세대라고 한다.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돌봄을 기대할 여력이 없다. 비록, 직장 다닐 때에는 자신의 역량과 가치를 공정하게 평가받지 못함에 ‘불만’이 있었지만, 그럴 때가 오히려 호사(豪奢)로웠다. 은퇴하면 역량을 평가하고 인정해 줄 상대가 없다. 불평과 불만을 토로할 상대가 없다. 예전처럼 매월 수입이 발생할 수 있는 여건도 안된다. 한 번의 투자실패는 복원할 여력도 기회도 사라지기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제4차 산업혁명시대의 초불확실성은 불안감만 양성할 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심리적 건강 상실’이다. 심리적 건강이 허약해지면 외로워진다. 외로움이 불안의 근원이다. 영국은 2018년 1월 ‘외로움부’를 신설했다. 외로움은 개인 차원이 아닌 사회가 나서서 아니 국가가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본 것이다. 외로움은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같이 마음을 갉아 먹을 만큼 심각하다. 2002년도 ‘About a boy’ 영화에서 ‘모든 사람은 섬이다. 하지만 섬들은 바다 밑 눈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라는 주인공의 대사가 나온다. 개인적으로 섬에 갇힌 외로운 사람일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사회공동체 일원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맞다. 미국 사회학자 리스먼(David Riesman)은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단어에서 사회공동체에 머물고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나홀로라는 것이다. 은퇴하면 외로운 이유가 뭘까?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했고 든든한 가족이 있는데 말이다. 퇴직은 모든 것을 바꾸는 매개이다. 특히 관계는 뿌리조차 흔들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거나 정년퇴직하면 가족이 곁에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그것은 허상일 뿐이다. 성장한 자녀들은 자신의 진로를 찾아 부모 곁을 떠난다. 동물 세계의 진리이다. 품 안의 자식이라 하지 않았던가. 예전만큼 살갑지 않다. 은퇴하면 가족들과 그동안 못다 한 얘기도 하고, 가고 싶었던 곳으로 여행도 가려 했지만 모두 제 살길이 바빠 뿔뿔이 흩어진다. 곁이 허전하다. 열렬히 은퇴를 환영할 것이라는 환상이 깨지면서 심리적 마지노선이 무너진다. 한편으로는 아쉽고 서럽다. 가족이 이럴진대, 이타적 관계는 오죽하겠는가. 퇴직이라는 두 글자와 함께 비즈니스 관계의 약 70%는 공중 분해된다. 남은 30%도 1년 남짓 지나면 추억이 된다. 어제까지는 빼곡한 일정으로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 몰랐다. 은퇴한 오늘은 소원해진 관계로 시간이 넉넉하다. 여유있게 지내던 넉넉함도 시간이 흐르면서 왠지 모를 불안감으로 탈바꿈한다. 할 일이 없으니까 갈 곳이 없고, 갈 곳이 없기에 만날 사람이 없어진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 두렵다. 두려워지면 외로워진다. 고령자가 외롭다는 것은 2023년도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발표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베이비붐세대가 하루에 TV를 시청하는 시간이 4시간 13분으로 전 세대 중 가장 길게 나타났다. 젊은 세대의 스마트폰 활용 시간보다 더 많았다. 그것도 이용 시간의 대부분을 실시간 시청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활동할 시간 상당 부분을 TV를 실시간으로 시청하면서 소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관계망의 단절을 뒷받침할만한 자료가 또 있다. ‘2024년 고령자 통계’에서 혼자 사는 고령자의 사회적 관계망은 2019년 대비 3.3%p 하락한 19.5%에 머문다. 10명 중 2명만 사회적 관계망이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심리적 건강이 허물어졌음의 방증이다. 정신적 외로움은 스스로를 가둔다. 은둔형 고령자’가 되는 지름길이다. 고독사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것만은 피해야 한다.


지금까지 나이 들면서 ‘불만’이 ‘불안’으로 전이되는 원인은 크게 세 가지였다. 은퇴 이후에 계속 근로를 원하는 장년층은 10명 중 7명이다. 그것도 73세까지 말이다. 65세까지 정년연장과 노인 연령을 75세로 상향 조정하자는 사회 이슈의 배경도 유병장수와 무관하지 않다. 개인의 불안은 사회적 부담이 되고, 사회적 부담은 국가적 짐으로 전이된다. 영국 외로움부 신설 배경에서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유병장수, 경제적 빈곤함, 정신적 외로움은 생활습관의 결과물이다. 생활 패턴 방향성을 조금만 우측으로 돌린다면 ‘불만’이 ‘불안’으로 전이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꾸준한 운동 습관으로 건강수명을 연장하고, 차분한 인생2막 준비로 ‘퇴직은 없다. 직업이 바뀔 뿐이다’라는 카피로 경제적 빈곤함을 타파할 수 있으며, 여가와 취미활동 등 또 다른 네트워크를 확장할 수 있는 디딤돌의 오작교가 되어 함께 웃어주고 슬퍼할 관계를 만들 수 있다. 결국 답은 생활습관이다. 생활습관은 누가 해 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챙겨야 할 영역이다. 불안은 스스로 생성하고 스스로 치유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제는 바꿀 수 없지만, 내일은 선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