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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있는 언격(言格)은 리더십 마중물!!!

by 개미와 베짱이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메시지는 짧지만 강렬하다. 말의 위대함과 중요성을 아우러서 한 줄에 담고 있다. 잘못하면 쪽박 찰 수도 있다는 의미로서, 말함에 앞서 심사숙고해야 함을 경고한다. 성현들이 빼 놓지 않고 언급하는 것이 자나 깨나 ‘말 조심’이다. 말 한 마디로 죽었던 사람을 살릴 수도 있지만, 멀쩡한 사람이 사회에서 생매장될 수도 있다. 그 만큼 ‘말하기’는 어려울 뿐 아니라 경계 대상이다. 의사소통은 ‘기술(skill)’이다. 하룻밤 날 새워 ‘벼락치기’로 해결할 수 있는 ‘지식(knowledge)’이 아니다. 그렇다고 난이도가 높은 기술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평소 생활습관이 말의 품격인 ‘언격(言格)’으로 등급이 나뉘어진다. 화자(話者)의 품격이 ‘언격(言格)’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습관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행위를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익혀진 행동 방식’이다. 즉 상황이 발생하면 자동적으로 대처하는 반사적 행동이다. 습관은 21일이 지나야 비로소 예전 습관을 잊기 시작해서, 최소 66일이 지나야 좋은 습관이 빈 공간의 주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한다.


존경받는 리더나 구설수에 휘말리는 리더 모두 종착지는 ‘한마디 말’이다. 기쁨이나 슬픔도 원인을 쫓아 가 보면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말 한마디’를 발견할 수 있다. 그 한 마디에 우리는 파안일소(破顔一笑)하기도 하고 가슴을 치며 억울해 하기도 한다. 리더십 교육도 거품을 걷어내고 찬찬히 들여다 보면 ‘말’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존중, 다름, 인격, 의사소통, 의사결정’ 등 다양한 키워드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것을 상대방에게 표현하는 방법은 언행(言行)이다. 리더십 교육에 무엇이 강조되어야 하는지, 무엇을 집중적으로 다루어야 하는지 추론이 가능할 것이다. ‘나는 당신을 존중합니다’라는 표현에 진정성 없이 의례적이며 건성으로 화두를 던지면, 청자(聽者)는 화자의 빈정거림에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다. 그 만큼 ‘말하기’는 단순하지 않다. 수십년을 배우고 익혀 왔지만, 갈등의 원인은 말이라는 것을 부인하기 쉽지 않다. 요즘에 더 심한 것 같다. 오죽하면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이 만들어졌겠는가!


언격(言格)은 단순히 말을 예쁘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전달 내용에 따라 목소리 강약, 억양, 속도의 완급, 시선 처리 등 다양한 요소가 적절히 곁들여져야 화자(話者)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된다. 반복적 연습만이 살 길이다. 리더십이 왜 ‘카멜레온’인지 지레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해야 하는 것이 리더십이다. 리더십은 리더의 성격 유형으로 고착화된 것이 아니라, 상대에 따라 유연하게 변해야 하는 카멜레온과 같다. 그래서 리더의 역할이 힘들고 어렵다. 리더 선정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나이가 많아서, 오래 근무해서 리더가 되는 ‘유교적 인사관리’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뿌리채 뽑혀야 할 인사관리 방법 중 하나이다. 리더는 인성과 역량의 합으로 판단해야 한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기하급수적 변화와 함께 리더십은 너무 많은 포장지가 덕지덕지 부쳐졌다. 이제는 걷어내야 한다.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인성과 전문성으로 무장된 역량이 듬뿍 배어나는 리더의 말 한마디에 집중할 때이다.

‘마음 읽기’와 ‘마음 헤아리기’

리더는 구성원의 마음을 읽어야 할까, 아니면 헤아려야 할까.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르다. 아니 대치되는 개념일 수도 있다. 리더가 피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선입견과 편견’이다. 그 선입견과 편견을 근간으로 하는 것이 바로 ‘마음 읽기’이다. 잘못된 마음 읽기 결과는 참담할 때가 많다. 한 단계 더 나아가면 법률적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신입사원은 당연히 일머리가 없을거야’, ‘운전은 남자들이 잘 하지’, ‘대학교 나오니까 훨씬 잘하네’ 등 법을 넘나들거나 작두 위를 걷듯 아슬아슬 경계를 타는 듯한 선입견과 편견은 중심축을 무너뜨리는 악마의 유혹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경험의 인사이트 만큼 성숙도가 완성된다. 트렌드 변화에 발 빠르게 적응하고 대응할 때에 선입견과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배워야 하는 이유이자 평생교육이 등장한 배경이기도 하다. 리더는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온갖 유혹과 타협하는 순간 ‘왕따 리더’이자 ‘꼰대 리더’ 게이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상승한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의 「삶 체험현장」 한 장면을 떠 올리게 된다. 한 순간에 멀리 해야 하는 리더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리더는 그 상황을 빠르게 모면하기 위해 장황한 변명을 늘어 놓는다. 거짓은 더 큰 거짓이 이긴다는 속설을 입증이라도 하듯 말이다.


‘마음 헤아리기’는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다. 이타적 입장에서 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파악하고 분석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나는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라고 단정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데 남을 어떻게 안다고 자신할 수 있겠는가. ‘내가 뭘 해 줄 수 있을까’라는 배려에서 시작되는 것이 ‘마음 헤아리기’이므로, 불편함보다는 편안함이. 불안함보다는 안정감이, 불만감보다는 만족감으로 충만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리더도 구성원도 모두 편안해진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솔선수범하여 협업이 이뤄진다. ‘마음 헤아리기’는 상대가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더라도 ‘다 이유가 있을거야!’라며 ‘기다림’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가며, 스스로 육성할 수 있도록 기다려준다. 리더는 진정성 있게 듣고(60%), 전문성을 기초로 질문(30%)하고, 구성원의 역량을 믿고 기다릴(10%) 때 완성도가 높아진다. 리더의 덕목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경청’이다. 선입견과 편견의 ‘마음 읽기’로는 경청이 쉽지 않다. 소위 ‘넘겨짓기’로 맥락을 오해할 소지가 많다. ‘마음 헤아리기’는 기다림과 함께 구성원이 뜻하는 바를 최대한 수렴하기 위해 노력하므로 오해와 불편이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MZ세대의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한 바구니에 담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관심과 간섭

‘관심’이 선을 넘으면 ‘간섭’이 된다. 관심과 간섭은 종이 한 장 차이이다. 리더는 관심이라고 생각하지만, 구성원은 간섭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과 맥을 같이 한다. 간섭은 MZ세대의 혐오 대상 중 상위 순위에 링크되어 있다. 부모 간섭도 손절하고 싶어하는 MZ세대에게 리더의 간섭은 사직서와 맞바꿀 만큼 거부 대상이다. 단톡방에서 뭇매를 맞는 단골 메뉴이자, 소주 안주로 잘근잘근 씹힐 수 있는 메뉴가 바로 ‘간섭’이다. 그 만큼 리더가 피해야 할 대상 중 하나이다.


이와 반대로 관심은 관계의 시발점이자 관찰에서 비롯된다. 관찰 과정에서 공감, 동감, 호감의 세가지 감(感)과 함께 잠재력을 발견했을 때 리더는 관심을 보인다. 그 관심이 더 깊어지면 관계로 이어진다. 바로 네트워크이다. 그렇다면 관심이 ‘간섭’으로 발전하지 않는 비책은 뭘까? ‘적정거리 유지’이다. 적정거리가 무너지면 ‘간섭’이 된다. 적정거리는 약 90cm로 우산을 펼쳤을 때 부딪히지 않을 만큼의 거리이다. 즉, 상대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90cm는 자신의 지킬 수 있는 범위로서, 로마군의 방패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지근거리는 45cm, 사회적 거리는 120에서 150cm, 공적인 거리는 320cm이다. 법원이나 검찰청 입구에 보면 포토존이 있다. 그 거리가 320cm이다.


관심은 응원이다. 응원은 힘을 북돋아 주는 종합비타민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하루에 먹어야 할 양이 정해져 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과다 복용은 또 다른 위험의 불씨가 된다. 관심도 마찬가지이다. 지켜야 할 적정선이 있다. 리더는 이 점을 유념해야 한다. 아울러, 편협된 관심은 협업을 저해할 뿐 아니라 편을 가르는 걸림돌이 된다. 관심은 평가와 유사한 성격을 띄고 있어 ‘공정성’을 유지해야 한다. 관심을 갖는 것도, 그 관심을 표현하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니다. 구성원별로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눈에 띄게 격차를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만약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다른 구성원으로부터 양해를 구해 보자.


의사소통과 의사결정

의사소통은 ‘인성’이고, 의사결정은 ‘역량’이다. 리더의 말 한마디에 인성과 역량이 묻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자는 리더십의 종착지가 의사소통과 의사결정이라고 본다. 의사소통은 수평적으로 이뤄져야 하지만, 의사결정은 수직적이어야 한다. 의사소통은 과정이고, 그 결과물이 의사결정이다. 의사소통과 의사결정은 ‘실과 바늘’로,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인생 백세시대가 되면서 2016년 정년이 60세로 연장되었고, 한 공간에 여러 세대가 공존하는 시대가 되면서, 유교문화의 유산인 수직적 리더십은 만병의 근원으로 규탄의 대상이 되고, 만병통치약으로 수평적 리더십이 등단했다.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필요에 따라 적절히 조화를 이뤄야 한다. 또한, 그 성격을 정확하게 이해할 때 상황에 맞게 적절히 선택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의사소통이 수평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이유는 다양한 생각과 아이디어를 버무리기 위함이다. 소비자 중심 시대에 다양한 소비자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개인간, 성별간, 세대간 등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계층간의 목소리가 조화로워야 한다. 수평적 의사소통에는 직책, 연령, 성별, 학력, 지역 등 모든 계급장을 떼야 한다. ‘아니 그게 아니고’는 수평적 의사소통 테이블에서 사라져야 한다.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는 「다채로움 문화」가 조성되어야 한다. 억압적 조직문화는 천재성을 짓밟는 행위로 퇴출 일순위이다. 수평적 의사소통도 무작정 활용하기 보다 조직마다, 팀마다, 프로젝트별로 또는 시시때때로 몇 가지 원칙을 정하는 것이 효율적 진행에 도움이 된다. 이렇듯 의사소통은 쉬워 보이지만 생각만큼 녹록치 않다. 그 만큼 말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과 조심해야 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의사결정은 전문성에 정무적 판단이 가미되어 결론을 도출한다. 직무 전문성으로만 판단해서도 안된다. 조직 목표와 경영전략이 융합되어 시급성과 중요성이 반영된 의사결정이어야 한다. 의사결정은 책임이 뒤따른다. 직책에 따라 하부위임 기준이 차이 나는 근거이다. 책임은 수평적으로 나눌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결정한 자가 떠안아야 할 몫이다. 그러므로 의사결정은 수직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결정하기 전에 충분한 수평적 의사소통으로 다양한 의견을 조화롭게 버무린 다음 최종 판단은 전문성을 곁들인 리더의 몫으로 남겨 두는 것이 효율적 조직 운영상 맞는 처사이다. 의사결정도 수평적으로 해야 한다고 목소리가 커지는 순간 배는 산으로 올라가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이것은 아닐 것이다.


리더가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1년도 되지 않은 신입사원 퇴사율이 10명 중 4명이 넘었다. 조직의 매몰비용은 눈덩이처럼 쌓여만 가고 HR 담당자의 한숨은 깊어져만 간다. 그 원인의 1순위가 상사와 불화라는 것은 HR 담당자에게 어떤 의미일까? 전문성이 결여된 업무지시나 판단은 조롱거리가 될 수 있다. 말로 자존감을 매질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봐야 한다. 더군다나 전문성도 없으면서 위협적인 언행은 블라인드 단골 메뉴가 된 지 오래다. 인사가 만사라는 진리는 산업혁명이 거듭될수록 더욱 견고해진다는 느낌이다. 천재 한 명이 십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신(新)십만부국설’을 주창하는 필자는 리더가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4차 산업혁명시대의 플랫폼 기업을 통해 충분히 확인했다. 그 기업들의 조직문화 공통점은 ‘자율과 책임’이다. 자율과 책임은 ‘방목’이다. 방목은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정해진 틀 안에서 스스로 하고 싶은 데로 위임하는 것이다. 자율성을 보장하고 책임을 지울 수 있는 대화체가 수반되어야 한다. 다음 기회에는 변해야 하는 리더의 화법(話法)에 대해 정리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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