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이후에 가장 풍성한 것을 꼽으라면 시간(time)이다. 넘쳐나는 시간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이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다. 베이비 부머들은 젊었을 때 알차게 그리고 즐겁게 쉬는 방법을 체득하지 못해서 남는 시간이 힘들고 괴롭다. 한창 일할 나이 때에는 주말이 되면 밀린 숙제하듯 거실 쇼파를 친구 삼아 잠자는 것이 일과였다. 아내와 아이들의 불만 가득한 시선은 '고된 일과'라는 말로 퉁 치고 넘어 갔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이렇게 우리는 열심히 살아 오는 여정에 쉼이라는 틈새를 만들면서 견뎌왔다. ‘쉼(休)’은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대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마을 어귀에 있는 느티나무 밑에는 어김없이 정자 또는 넓은 쉼터가 만들어져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쉼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바쁜 일상에 지쳐 있는 심신(心身)이 어느 곳인가 기댈 곳을 찾기 위함이다. 매일 매일이 주말과 같은 쉼의 연속이라면, 그 쉼은 즐거운 것이 아니라 회피하고 싶어진다. 문제는 베이비부머 세대는 자신을 위해 '쉼'이 무엇인지 '여가'가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체계적으로 배워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 세상에서 가장 공정하고 공평한 시간을 허투루 사용하게 된다. 아울러, 매번 후회의 끝자락에는 ‘시간이 부족해서’라는 꼬리표가 사족처럼 매달리게 된다.
은퇴하면 ‘시간 부자(time rich)’가 된다. 분명한 것은 어제까지 '시간 가난뱅이(time poor)'였는데 말이다.
갑자기 풍성해진 시간은 한 동안 꿈에 그리던 생활로 만족감을 들어내지만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 골치덩어리가 된다.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변에 이런 일로 속앓이하는 사람들 찾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할 일, 갈 곳, 만날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는 계기이기도 하다. 결국 '준비된 자'만이 풍부해진 시간이 반가울 수 밖에 없다. 매일 등산 갈 수도 없고, 가까운 도서관에 머무는 것도 한계가 있고 하루일과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지가 또 하나의 걱정거리가 되는 때가 바로 50 이후 퇴직이다. 명함이 있을 때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빈틈없을 만큼 빽빽한 일정으로 ‘퇴직하면 그냥 푸욱 쉴거야’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된다. 뒤돌아 보기도 싫다. 아무 생각없이 멍때리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다. 고달픈 현역시절로 기억되지만 그 때가 그리운 것 또한 사실이다. 몸이 기억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뭔가 할 일이 있는 것 같고, 어디론가 출발해야 한다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뭔가 손에 잡힐 듯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넘쳐 나는 시간만큼 부담스러울 수 없다.
퇴직 이후에는 현역 시절만큼은 되지 않더라도, 자신의 가치관을 살 찌우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정 부분 루틴(routine)이 있는 것이 좋다. 아니 반드시 필요하다. 무조건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재수없으면 백세까지 산다고 하는 우스갯소리가 흘려 들을 말이 아니다. 일정 루틴은 육체적 건강, 심리적 건강, 경제적 건강에 좋은 종합비타민제이다. 한 움큼씩 영양제 먹는 것보다 백배 더 좋은 것이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어 정신줄을 놓지 않는 것이 좋다. 시간은 철저한 소비재이다. 효용성 있게 시간을 투자한다면 자신에게 큰 자산으로 되돌아온다. 시간은 저축도 안된다. 시간은 재활용 분리수거 대상도 아니다. 시간은 흘러가면 그만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옛 시절을 그리워하는가 보다. 추억을 더듬으면 '라떼'를 외치나 보다. 시간은 지위나 경제적으로나 배움의 크기에 상관없이 81억명의 지구인 모두에게 똑 같이 24시간이 주어진다. 그만큼 공평하고 공정한 것이 시간이다. 다만,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무엇에 투자할 것인지는 철저하게 자신의 몫이다.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누가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결국 생활습관이다. 그 결과 또한 천차만별이다. 늦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아 온 만큼 살아가야 할 날이 남아 있다. 지금부터라도 시간을 알뜰살뜰 사용해 보자.
일상은 유혹과 타협, 그리고 변명의 굴레로 점철된다. 유혹에서 벗어나려면 자신만의 루틴이 있어야 한다. 누구나 늙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주름살에 마음 한 곳이 허해 지는 것을 느낀다. 주름살을 펴는 비법이 있다. 호기심이다. 호기심은 늘 새롭다. 새로움은 도전정신을 유발하고, 도전정신은 열정을 마중물 삼아 성장한다. 그러면서 끊임없는 학습 욕구가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살뿐 아니라, 마음의 주름살까지 펴 주면서 '젊은 노년'으로 되돌려 준다. 청춘을 돌려 주는 것이다. 호기심과 학습 민첩성이 젊음의 묘약이다. 이제는 ‘해야만 하는 일’에서 벗어나자. 지금까지 짊어지고 온 어깨의 무거운 짐을 조금 덜어놓아도 된다. 가족들도 이해한다. 그동안 '노고'에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다. 다만, 서툰 표현력으로 마음껏 위로를 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빼 놓고서는 말이다. 가족이라는 공동체 의무감에서 조금은 벗어나도 괜찮다. 자녀들도 성인이다. 자신의 생활을 책임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80 넘은 부모가 60 넘은 자녀를 걱정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륜이라고 하지만 심리적으로 자유로워져야 된다. 그동안 억눌러 왔던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자. 해 보고 싶었던 것과 잘하는 것의 유효기간을 확장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자.
'좋아 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상호 순환한다. 잘하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좋아할 수도 있고,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하면 잘 할 수 있다. 일단, 손에 잡히는 것, 마음 가는 것을 먼저 시작하자. 큰 것 한 방보다는 잦은 쨉이 훨씬 위력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한 걸음에 성공하려는 과욕은 버리자. 멀리 보고 한 걸음 한 걸음 편안하게 가보자. 함께 할 수 있는 지인들과 말이다. 또 하나 지켜야 할 것은 어제의 얘기는 가급적 하지 말자.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전진하기 어렵다. 과거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빅데이터일 뿐이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그것을 활용하는데 시간을 투자해 보자. 필자는 요즘 인공지능에 관심을 갖고 열심히 학습하고 있다. 단순히 활용 차원을 넘어 주전공인 인사분야에서 어떻게 적용하면 되는지를 찾고 있다. 인사분야는 데이터 자체가 개인정보라 실습이 다소 어려움이 있고 한계가 있지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인사평가와 보상, 그리고 기업교육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찾아서 현장에 활용할 수 있도록 공유해 보려 한다. '나이 들어서 무슨 공부야!'와 같은 심리적 장애만 극복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우리 모두 부정적 구름을 걷어내 보자. '가다가 아니가면 아니 간 것만 못하다'라는 한계에서 벗어나자. 간 것 만큼 이득이다. 그 만큼의 경험은 자신의 삶을 살찌운다. 무조건 도전해 보자. 무모한 것은 빼 놓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