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흑백요리사’ 4대 키워드 의미가 HR에게 말하는 것은

- 실력, 공정, 스토리, 속도 -

by 개미와 베짱이

2024년 알록달록 형형색색으로 창문 넘어 풍광이 펼쳐질 즈음 ‘흑백요리사’ 열풍으로 우리 주변뿐 아니라, 물 건너 해외까지 들썩였다. 디지털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전 세계를 한 묶음으로 빚어낸 장면이다. 한 마디로 열풍을 넘어 광풍이다. 팬데믹 기간에 전국을 휘몰아친 트로트와 닮은꼴이다. 흑백요리사 매장 리스트가 삽시간에 전국민이 공유하는 초유 사태까지 벌어졌다. 재야의 숨은 고수를 찾는다는 점에서 ‘생활의 달인’과 닮은꼴이지만, 용호상박(龍虎相搏)을 가려야 할 상대가 존재한다는 것이 다르다. 흑수저 요리사와 백수저 요리사의 불꽃 튀기는 경쟁은 한 편의 전쟁영화와 같다. 요리는 세 가지 맛이 있다. SNS에서 보여 주는 ‘보는 맛’, 각자 취향에 따라 천양지차(天壤之差)의 ‘먹는 맛’, 한 번 더 먹고 싶은 ‘여운의 맛’이다. 이와 같이 요리는 다양한 맛을 가지고 있다. 시식하는 사람의 입맛에 따라 맛의 감별기준이 다르다. 특히 4차 산업혁명시대가 되면서 그 까탈스러움은 하늘을 찌른다. ‘소비자 선택을 받지 못한 기업은 망한다’는 한 줄의 글귀가 요즘 기업 CEO의 등줄기를 서늘하게 한다. 변화에 뒤쳐지면 생명줄은 놓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그 어느 때보다 목청 높여 주창하고 있지만, 기업 내 관심도는 그다지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기업의 중심축인 HR의 현 주소는 어떠한가. 과연 개개인의 다름과 차별성을 인정하고 있는지 꼼꼼히 들여다 보자. 흑백요리사 4대 키워드(실력, 공정, 스토리, 속도)가 HR에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함께 살펴보자.

학력(學歷)이 아닌 학력(學力) 중심의 실력

첫째, ‘실력’이다. 예나 지금이나 실력은 존중받아야 하고 존중받고 있다. 흑백요리사는 진검승부이다. 경력이 아무리 화려해도 의미가 없다. 오로지 요리가 갖춰야 할 맛(먹는 맛)으로 평가한다. 백수저는 ‘맛있을거야’라는 선입견도 없을 뿐 아니라, 특별히 가산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기에 전 세계가 열광한다. 어디서 배웠는지, 얼마나 많이 아는지, 누구의 제자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요리에 집중해야 하고 요리로만 평가받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당연히 우세한 점수를 받을 것이라 예상했던 대중성 있는 요리사가 탈락하는 것도 흑백요리사가 주는 또 다른 묘미이다.


일터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나라 인사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봇물처럼 밀려온 컨설팅으로 다양한 선진기법이 자리매김했다. 평가 기준은 ‘실력’이다. 다만, 일터에서 운영되는 평가는 ‘나를 따르라’ 또는 ‘편가르기’를 조장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흑백요리사’처럼 당당히 자신의 요리를 선보일 수 있도록 평가기준과 운영이 일치하는지 짚어보자. 혹여 유효기간이 지난 졸업장을 퇴사할 때까지 부여잡고 있지는 않은지, 라떼가 된 유교문화의 잔재더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한 번쯤 되돌아보자.


특히, 졸업장의 부담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사회의 ‘졸업장’ 위력은 대단하다. 한 번 졸업장은 무덤까지 가져 갈 만큼 무서운 힘을 갖는다. 지구촌 어디에서 찾아볼 수 없는 입시전쟁이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지 잘 설명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시대가 지나 쓰임새가 예전보다 현저히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학벌의 힘은 존재한다. 유효기간이 지난 졸업장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무리 길게 봐 줘도 배움은 10년 이상 유효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21세기는 평생교육시대이다. 새뮤얼 아브스만은 ‘지식의 반감기’에서 지식의 유효기간을 강조하면서 끊임없이 배워야 도태되지 않는다고 설파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많이 아는 것 보다 ‘해 봤어?’의 경험과 인사이트에 주목한다. 디지털 혁명은 지식의 소유권을 AI에게 넘겼다. AI는 2024년도부터 당당히 신입사원이 되어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동료가 되었다. AI는 질문만 제대로 하면 질문과 동시에 알고 싶은 내용을 구조화하여 알려 준다. 영국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240여년의 역사를 끝으로 더 이상 발행하지 않는 것을 보더라도 졸업장의 힘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것은 배경보다 실력으로 평가될 때 ‘사다리’가 작동될 뿐 아니라,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학연․혈연․지연이 아닌 블라인드 중심의 공정

둘째, 공정이다. ‘공정’은 21세기에 빼 놓을 수 없는 키워드이다. 공정 없는 조직은 MZ세대와 한 공간에서 공존할 수 없다. 그만큼 공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흠이 되지 않는다. 흑백요리사는 공정의 진가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화려한 계급장이라도 무용지물이다.‘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닌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하므로 기존의 계급장은 철저히 배제된다. 심사의 공정성은 안대를 사용함으로써 객관성을 높였다. 요리 과정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 관여 수준을 넘어 요리과정을 아예 보지 못한다. 안대를 쓴 채로 오로지 맛만 평가한다. 복수 심사제도도 공정성을 한층 높이는 시스템이다. 이처럼 공정한 심사를 위해 이중, 삼중으로 제도를 갖췄고 실행하였기에, 시청자를 포함한 참가자 대부분이 심사 결과에 고개를 끄덕인다.


조직에서 '공정'의 잣대가 필요한 곳은 '평가'와 '보상'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가와 보상에서 공정이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는 후폭풍에 휘말리게 된다. 우리 기업은 평가는 공정한지, 보상시스템에 구성원의 불만이 없는지에 대해 살펴보자. 졸업장이나 계급장, 또는 후광효과에 의해 공정성이 훼손되는 경우는 없는지 꼼꼼하게 짚어보자. 편견과 선입견은 공정의 걸림돌이다. 반드시 무너뜨려야 할 장벽이자 뽑아내야 할 걸림돌이다. ‘좋은 대학 나오면 일 잘할거야!’, ‘집안이 좋으니까 인품도 훌륭하겠지!’와 같은 선입견은 ‘훌륭한 인재(great person)’를 조직으로부터 멀리하게 만드는 촉매제이다. '회사보고 입사했다가, 사람보고 퇴사한다'라는 우픈 얘기가 무엇을 의미할까?


흑백요리사 심사체계는 철저한 블라인드(blind)이다. 인사에서도 ‘블라인드’가 도입되었다. 2019년 7월 17일부터 채용 분야는 ‘블라인드 채용법’이 시행되고 있다. 블라인드 채용법은 회사가 입사 지원자에게 직무와 무관한 정보를 수집하지 못하게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신체적 조건(키, 체중), 출신 지역, 혼인 여부, 재산, 직계존비속 및 형제자매 인적사항(학력․직업․재산) 등이다. 국가가 법제화한다는 것은 일터에서 공공연하게 불공정이 만연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채용은 법으로 블라인드를 시행토록 강제하고 있다. 인사의 쌍두마차인 ‘보상’과 ‘육성’은 사람에 의해 공정성이 좌우된다. 공정과 불공정은 백지장 한 장 차이이다. 멀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담벼락을 하나 두고 넘나들 수 있는 정도의 거리이다. 운영자 가치관과 직결되므로, 법으로 통제할 수도 없다. 시스템 운영 기준은 있지만, 적용은 사람이 하므로 철저하게 운영자에게 위임된 영역이다. 우리 회사는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는 운령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는 무엇이며,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자. 사람이 개입되면 운영리스크는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다만,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통해 구성원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조직의 공정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 중 하나이다.


다양성과 차별성이 존중받는 스토리

셋째, ‘스토리’이다. 인기는 탄탄한 스토리와 비례한다. TV에 나오는 연예인 중 실력도 실력이지만 인간적 스토리가 든든한 버팀목이 맛있는 양념처럼 곁들여진 경우를 종종 봐 왔다. 흑백요리사도 마찬가지이다. 흑수저 요리사는 각자마다 요리경연장에 나온 이유가 있다. 트롯 경연 프로그램에서 마지막 무대는 인생곡을 부르도록 요구했다. 왜 그것이 인생곡인지 스토리를 들려 주면 대부분 눈물을 훔친다. 그 만큼 스토리는 이타적 심금을 울릴 때가 많다.


HR에서는 스토리가 무엇을 의미할까? 수동적 업무문화에서는 스토리가 있을래야 있을 수 없다. 시키는 것만 하는데 무슨 스토리가 존재하겠는가? 수동적 업무에서는 담당자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입힐 공간이 없다. 직책별로 적절한 권한위임과 함께 방목형의 업무문화일 때 스토리가 형성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다림이다. 재촉하면 스토리가 실타래 엉키듯이 꼬인다. 상호 약속한 일정까지 신뢰에 기대어 기다려 보자. 담당자는 분명 검토 방향성 또는 일 진행 방향성에 대한 이유(why)가 있다. 왜 그렇게 했는지 얘기를 들어야 한다. 중간에 말을 끊는 우를 범하거나, 틀렸다고 윽박지르는 무지함을 들어내지 말자. 스토리 발원지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출발점이 어디인가에 따라 ‘현황과 문제점(what)’이 달라진다. 발원지가 중요한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해결방안(how)’이다. ‘왜(why), 무엇(what), 어떻게(how)’가 탄탄할수록 설득력 있는 스토리가 된다. 이 세 가지 요소(2W1H)는 조직에서 일할 때 가장 기본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스토리를 입히는 연습이 반복될 때 구성원의 실력은 일취월장한다. 구성원의 다양성과 차별성을 존중하면서 다양한 스토리를 만드는 HR 문화를 이뤄보자.

기하급수적 변화에 능동적 대응을 위한 속도

마지막으로 ‘속도’이다. 흑백요리사는 다른 경연과 달리 결과를 깔끔하게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TV 속성상 시청자 궁금증을 최대하 끌어내야 한다. 다만, 4차 산업혁명시대의 변화속도는 기하급수적이다.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 숏폼(short-form)이 유행하는 이유는 뭘까? 정보홍수시대에 살고 있다. 빠른 피드백만이 살 길이다. 흑백요리사도 시대의 트렌드에 편승하여 속도감 있는 결과 발표로 시청자의 박수를 받는다.


HR에서 ‘속도’는 뭘까? 전문성이다. 특히 리더의 전문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리더가 전문성이 결여되면 의사결정은 늦어지고 수시로 방향성을 잃어 우왕좌왕하여 기회비용이 크게 발생한다. 팀원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른다. 직장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블라인드에 MVP가 될 수도 있다. 리더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리더는 조직에 미치는 영향이 어마무시하다. 정말 리더 선정은 잘해야 한다. 연공서열식 리더 임명은 ‘공정’에 위배될 뿐 아니라, 수동적 업무문화를 조장하는 마중물이다. MZ세대는 반발한다. 미래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가슴 한 켠에 사직서를 품고 다닌다.


전문성을 갖춘 리더는 방향성을 포함한 의사결정에 있어서 군더더기가 없다. 피드백 또한 뒷말이 나오지 않을 만큼 깔끔하다. 후배 역량 육성에도 적극적이다. 경쟁자가 아닌 파트너로서 바라봐 주기 때문이다. ‘준비될 자’인 신입사원 대신 ‘준비된 자’의 경력직 채용문화도 21세기 달라진 일터 분위기를 대변한다. 기하급수적 변화에 계속기업(going concern) 으로 존속하기 위한 안간힘일 수도 있다. 디지털 혁명은 지식보다 경험을 중요시하면서 속도감 있는 채용문화로 바꿔 놓았다.


흑백요리사 프로그램도 분명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을 것이다. 다만, 짧은 시간에 국내의 많은 시청자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열광한다는 것은 본받을 것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HRM과 HRD는 이런 관점에서 유심히 들여다 보고 인용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 회사가 개선해야 할 것은 또 어떤 것인지 찾아내야 한다. HR 담당자는 기업의 주치의니까 말이다. 이것이 한국형 HR이자 우리 기업의 비스포크 HR의 마중물이기도 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카멜레온 리더십 진수(眞髓)를 보여 준 ‘흑백요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