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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이 뭐지?’에서 ‘이것 해 봤어?!’로

- 지식(knowledge)에서 경험(experience)의 시대로

by 개미와 베짱이

재취업으로 내 몰리는 중장년층

요즘 노량진 학원가에는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보다 베이비부머 세대로 북적인다. 준비가 덜 된 불안한 노후를 보완하기 위해 자격증을 취득하려고 분주하다. 2023년 경제활동인구조사(고령층 부가조사)에서 주된 일자리 퇴직연령은 49.4세였다. 정년퇴직은 언감생신(焉敢生心)이라는 것을 2차 베이비부머도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은퇴 연령은 법정 정년보다 더 일찍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2명 중 1명은 이미 인지하고 있다. 그것도 앞으로 5년 이내에 현재 일하는 직장에서 퇴직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주된 일자리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근로소득이 상실하거나 감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적연금 수령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남아 있다. 만약 50세에 퇴직한다면 약 15년이라는 연금 크레바스 기간을 잘 통과해야 하는 난제가 남아 있다. 그래서 찾아 나선 길이 재취업이다.


지식(knowledge)의 한계에 봉착한 4차 산업혁명시대

문제는 취업시장이 과거와 달리 녹록치 않다는 점이다. 등에 식은땀이 날 정도이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젊었을 때에는 ‘구인난(求人難)’이었다. 일할 의지만 있다면 취업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180도 달라진 ‘구직난(求職難)’이다. 그것도 지식 중심이 아니라 경험 위주로 말이다. 그런 연유로 고학력과 사무직 종사자들이 재취업에서 뒤로 밀리는 경우가 허다 하다. 또 하나의 복병은 ‘나이’이다. 숫자에 불과하다는 육십이라는 나이는 또 다른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학교에서 터득한 지식의 유효기간은 10년 이내이다. 아주 짧다. 어릴 때 경험했거나 배웠던 것으로 ‘나 때는 말이야’와 같은 ‘라떼문화’가 통용될 수 있는 곳은 찾아 보기가 힘들 정도이다. 교과서로 지식을 탐닉하던 시절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때의 얘기이다.


200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부모의 학구열은 대단했다. 자신의 ‘못 배운 한’을 자식에게 대물림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그 무엇보다 강했다. 온 몸이 부서지더라도 이 악물고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자식에는 한 글자라도 더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 당시 부모 심정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악착’이 안성맞춤일 것이다. 목표와 방법론이 다를 뿐이지만 지금도 학구열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7세 고시’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이니까 말이다. 그때는 가정 형편상 고등학교 진학도 쉽지 않았다. 1980년대 고교 진학률은 27.2%였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사다리 이론’을 믿고 부모 자신은 배를 곯아도 자녀는 대도심에서 배울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때였다. ‘머리가 좋다’는 기준은 ‘이해’보다 ‘암기’였다. 시간과 실력이 비례하는 구조였다. 농경적 근면과 성실함이 으뜸이었다. 시간을 얼마나 투자하느냐에 따라 성적의 우열이 가려졌던 시절이었다. 개근상이 그 어느 때보다 진가를 발휘했을 만큼 ‘부지런함’과 ‘열심히’라는 단어가 통했던 형설지공(螢雪之功)의 시대였다. 명절이 되면 어른들이 빼놓지 않고 풀어 놓는 보따리가 있다. ‘요즘 공부 잘 하니?’, ‘반에서 몇 등 하니?’와 같은 지식의 양과 순위가 늘 궁금의 대상이었다. 자기다움의 ‘Only One’이 아니라, 서열 중심의 ‘Best One’이 사회적 성공의 기준이었다. 늘 ‘엄친아’가 등장하였고, 서열에 밀린 아이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던 시절이었다. 비교문화가 득세를 하던 시절에 어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명절이나 경조사는 아이들에게는 마냥 즐겁지만 않았던 시절이기도 했다.


'Only One'의 경험 중심 시대로 들어서다.

이제는 다르다. 4차 산업혁명은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시간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그것도 너무 빨라 따라가기가 버거울 정도이다. 이론과 논리는 더 이상 사람의 몫이 아니다. 인공지능이 그 자리를 대신한 지도 시간이 꽤 되었다. 사람은 지식보다 현장 중심의 문제해결역량을 요구받고 있다. 이런 현상은 채용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들어난다. 자기소개서나 면접 질문 유형을 보더라고 금방 알아챌 수 있다. ‘뭐 해 봤는데’의 경험 중심이다. 이미 작고하신 정주영 회장을 타임머신으로 소환이나 하는 듯 말이다. 1980년대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직업이 지금은 엄청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어릴 때 숨어서 만화를 봤던 추억이 모두 있을 것이다. 만화작가는 배고픈 직업이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도심 한복판의 건물주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다. 콘텐츠가 성공적이고 팔로워가 있다면, 그동안 걸림돌이었던 시간적 공간적 제약조건은 디지털이 깔끔하게 정리해 준다. 전 세계가 동시에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콘텐츠를 열람할 수 있기에 인기 있는 만화는 하늘 모르고 몸값이 치솟는다. 더군다나 지면으로만 접해 왔던 만화 문화에서 웹툰이라는 한정적 콘텐츠에서 벗어나 드라마, 영화, 게임과 같은 다른 영역으로 확산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 세상이 바로 21세기이다. 결국 서열 중심이 아닌 ‘다름’과 ‘차이’가 존중받는 자기다움형의 ‘Only One’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는 지식이 아닌 경험이 대세이다. ‘뭘 아는데?’는 인공지능에 맡기자. 사람보다 훨씬 더 잘 해 낼 것이다. 우리는 현장 중심 문제해결을 위한 다양한 경험에 도전하자. 익숙함에서 벗어나자. ‘왜’라는 의문을 제기하자.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개척하면서 걸어보자. 경험은 허툰 것이 없다. 모든 것의 자양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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