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한 지 3년이 지났다. 정말 눈 깜짝할 새 시간이 흘렀다. 5월부터 일정이 겹치면서 글 쓸 시간 내기도 다소 버거울 정도였다. 처음 브런치스토리에 도전할 때만 해도 일주일에 두 편으로 독자와 만남을 이어가겠다는 야심 찬 포부였는데 최근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속상하다. 요즘은 일주일에 한 편도 부담스럽다. 오늘은 정말 이대로 지속되면 안될 것 같아 강의 교안을 다듬는 짜투리 시간을 활용하여 생각을 정리해 보고 있다. 5월부터 대전, 부산 등 지방 출장이 거의 매주 있는 것 같다. 7월 초 대전 출장에서 경험했던 것을 공유해 보려 한다. 대전 연구단지에서 일을 마치고 대전역으로 이동하려고 정부청사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어느 한 곳에 눈동자가 머물렀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눈을 의심했다. 한 편의 시(詩)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암(癌)을 선고받은 여성 환자가 쓴 글이었다.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는 질문에 의사는 ‘암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고와 같은 것이다.’라는 답변이었다. 그 말을 들은 환자는 한참 동안 생각 끝에 ‘다행이다’라는 위안으로 자신을 다독거렸다. 열심히 살아오신 아빠가 아니라서, 늘 가족의 행복과 안위를 걱정하며 희생을 감수해 왔던 엄마가 아니라서, 조카들을 남부럽지 않게 잘 키우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언니가 아니라 ‘나’여서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안하는 짧은 글에서 슬프지만 따스함이 느껴졌다.
암은 우리나라 사망 원인 1위이다. 암(癌)의 원인은 흔히 스트레스라고 한다. 스트레스(stress)는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 느끼는 심리적 신체적 긴장 상태라는 것이 사전적 정의이다. ‘암(癌)’이란 한자는 입(口)이 세 개 있는데 산(山)이 가로막고 있는 형국이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이 있지만 산이 앞을 막고 있어서 할 말을 못해 답답함을 호소한다는 의미이다. 해야 하거나 하고 싶은 말을 못한다고 상상하니 글 쓰는 이 순간에 숨이 막혀 오는 것 같다. 스트레스 얼마나 클지 상상이 간다. 암은 두 가지 버전(version)이다. 하나는 신체적 암이다. 수술이 필요한 큰 병일 수도 있고, 간단한 시술로 마무리할 수 있는 암이기도 하다. 또 하나는 심리적 암이다. 심리적 암이 켜켜이 쌓여 누적되면 신체적 암으로 전이되면서 고통과 걱정이 수반된다. 이 글을 읽은 이 순간에 잠시 눈을 감고 스스로를 진단해 보자. 직장에서나 집에서 누군가의 말을 못하도록 한 적은 없는지 말이다. 내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 상처 받은 사람은 없는지 주위를 둘러보자. 앞으로 대화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살펴보자.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늙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는 노랫말처럼 대화에서 단어 선택에 더 조심해야 한다. 나이가 계급장이었던 시절은 지나갔다. 어른이라고 모두 대접받아야 하는, 대접받는 시대는 더 이상 없다. 스스로 대접받을 언행을 갖춰야 한다. 변호사형 화법인 질문형으로 바뀌어야 한다. 집안 일(家事, housework)을 할 때 ‘내가 도와줄께’라는 표현은 금기어가 되었다. 이제는 ‘내가 무엇을 하면 될까?’라고 자신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단어로 선택이 바뀌어야 한다. 이처럼 세상이 변했다. 수직적 사회 문화에서 수평적 문화로 말이다.
의사가 말한 뜻을 부처의 말씀을 빌려 설명한다면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가 될 것 같다. 우리의 삶이 계획대로 뜻대로 되던가! 그렇다고 늘 한탄과 불만으로 정해진 짧은 삶을 채워서야 되겠는가! 반대로 감정을 가진 사람으로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세상이 녹록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부처의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내 앞에 펼쳐진 현상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어제는 바꿀 수 없지만 내일은 선택할 수 있다는 말과 괘를 같이 한다. 나쁜 인생은 없다. 나쁜 순간만 있다는 말도 같은 의미이다. 눈앞의 광경을 부정적이면서 도저히 이겨낼 수 없다고 판단하는 순간, 잠재적 역량은 고개를 숙이면서 패배의식만 가득해진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생각으로 모든 일에 대처한다면 100% 성공은 보장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꽤 높은 승률을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의사가 무섭고 두려움의 대상인 ‘암(癌)’을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사고(事故, accident)라고 가볍게 설명함으로써, 환자가 느낄 수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의 무기력함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준 것이 바로 부처 말씀의 실천이지 않을까 싶다. 살다 보면 초청받지 못한 불청객들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 때가 있다. 쉽지 않겠지만 덤덤히 받아들이면서 슬기롭게 헤쳐 나가 보자.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부처의 말씀을 곱씹으면서 말이다. 짧은 시 한 편이 나에게 주는 영감은 한 없이 깊고 넓었다. 또 하나 삶의 지혜를 배우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