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미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이 3년 연속 감소했다고 발표하였다(연합뉴스, 남들은 다 늘어나는데... 미국인 평균 수명은 0.1세 감소. 2018). 우리나라는 평균수명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선진국 미국의 평균 기대수명이 낮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직접적 원인으로 약물과 자살을 꼽았다. 우리나라도 2018년도 대비 자살에 의한 사망이 0.2%p 증가하였다(통계청. 2019년 사망원인통계 결과. 2020). 약물과 자살이 팽배해진 근원은 무엇일까? 사회적 현상에는 다양한 요인이 존재한다. 어느 한 가지로 규정하기에는 복잡다다(複雜多多)한 구조다. 그래도 가장 주목할 것을 고른다면 ‘외로움’일 것이다.
문명의 발달은 공동체를 분화시켰다. 대가족에서 핵가족, 핵가족에서 1인 가구로 세포 분열하듯 점점 초개인주의로 치닫고 있다. 진화는 개인에게는 편리함을 제공한다. 아울러 외로움도 함께 동반한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사회가 너무 개인화되어 늘 긴장 속에서 일상을 지내왔다고 강조한다. 해소 방법으로 관계 회복과 공동체를 위해 무엇인가 하려고 하는 자세라고 설파하고 있다. 외로운 이유는 이타적 수용성에 의한 두려움의 발로라고 칼 로저스는 말하고 있다. 행복의 근원은 무엇일까? 혜민스님이 말한 자기소외(Self-alienation)에서 벗어나는 것일까? 사람은 외로운 존재이다. 자신의 진실된 속마음을 나눌 수 있는 관계가 없다면 외로움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나’보다 ‘우리’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동체에서 위안을 받는 것도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다. 외로움은 ‘나’도, ‘공동체’도 모두 나서야 해결될 수 있는 사회적 문제이다.
가구의 변화와 외로움
2018년도 1인 가구와 2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56.6%였다. 2000년도 대비 22.0%p 증가하였다. 1인 가구는 2000년도 15.5%에서 2018년도 29.3%로 거의 두 배 수준, 2인 가구도 2000년도 19.1%에서 2018년 27.3%로 8.2%p 늘어났다. 평균 가구원 수는 2000년도 3.12명에서 2018년도 2.44명으로 0.68명 감소하였다.
노인 가구도 눈에 띄게 변했다. 전체 가구 중 노인 단독 가구 구성비는 2000년도 대비 두 배(7.7% → 14.4%) 수준이다. 노인 가구 중 2인 이하 가구는 2019년도 66.2%이다. 가구의 소규모화와 고령화는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킬 수 있는 위험 인자이기도 하다. ‘고독사(孤獨死)’의 원인은 무엇일까? 경제적, 신체적, 정서적 돌봄서비스와 같은 사회 체제 미비에서 찾을 수 있다. 할 일(時), 갈 곳(場), 만날 사람(人)을 유기적으로 연계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가구의 변화와 가구원 수 감소는 삶에 어떠한 영향을 줄까? 모든 것을 혼자 처리해야 하는 부담감과 고독감이 아닐까 싶다. 자기주도적 처리는 긍정적 부분이 많다. 다만, 스스로 감내하기에 버거울 때 상의하거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있으면 부담감과 외로움이라는 무거운 짐을 덜 수 있다. 1인 가구 또는 2인 가구의 증가는 사회적 대화 주체 감소를 의미한다. 공동체에 속해 있지만 외딴 무인도에 있는 것과 다름없다. 대화는 쌍방간의 소통이다. 혼잣말은 독백이다. 독백은 외로움이다. ‘혼밥’, ‘혼여’, ‘혼영’ 등 신조어는 혼자일 수 밖에 없는 최근 사회 현상을 보여주는 듯하여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또 하나 IT기술 발전이 사회적 고립을 자초하는데 한 몫 거들었다는 점을 빼 놓을 수 없다. 간단한 예로 전화기를 보자. 백색전화기가 부(富)의 상징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전화기 한 대 가치가 서울 변두리 주택 한 채와 맞먹기도 했었다. 전화기가 일반화된 것은 1988년 서울 올림픽 전후이다. 집집마다 전화기 한 대를 갖고 온 가족이 공유하던 시절에는 가족간 전화 상대방이 누구인지, 어떤 이야기를 주고 받는 지 알 수 있었다. 4차 산업혁명시대의 키워드 중 하나인 정보 공유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지금은 전화기가 필수재이다. 가구가 아닌 개인 소유물이 되었다. 화면 잠금장치는 사생활을 보호한다.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는 지, 평소에 어떤 대화를 하는 지 알 수가 없다. 개인생활 보호라는 장점도 있지만, 대화의 주제 또는 고립을 자초한다는 부정적 측면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뜩이나 노년은 관계가 급격히 감소하는 시기이다. 비즈니스 관계는 단절되고, 자녀들은 성장과 함께 부모 곁을 떠난다. 자연의 이치이다. 누구를 탓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가 나서야 한다. 정부가 플랫폼을 제공해야 한다.
언택트(Untact) 시대 장기화 우려
코로나19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상으로 바꾸어 놓았다.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일순간 변했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웃지 못할 패러디도 나왔다. 바이러스 발생 주기는 빨라지고 빈도는 증가할 것이라는 것이 의료계와 과학계의 일반적 담론이다. 마스크가 일상화될 것이라는 원하지 않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공동체(Community)는 절대 혼자서 운영될 수 없는 구조이다. ‘더불어’라는 단어가 가슴에 더 다가온다.
언택트가 가져 오는 장점도 분명 있다. 한 가지 유념해야 할 점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이다. 혼자서 모든 것을 감내하고 해결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노년에는 그 강도가 다방면에서 압박해 온다. 쉽지 않다. 혼자서 견디기는 너무 버겁다. 고독사 경험 가능성을 높게 인식하는 독거노인일수록 복지관 이용 가능성이 증가한다. 그 만큼 이타적 따스함이 그리운 것이다. 주위의 도움이 필요하다. 시스템적 운용과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코로나19로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제한되면서 우울증이 해를 거듭할 수록 증가한다는 언론 기사를 종종 접하게 된다. 외로움은 극복하기 쉽지 않은 현상이다. 개인적으로도 노력해야 한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듯 사회도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남의 얘기가 아니다. ‘내’ 얘기이고 ‘이웃’의 현실이다.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이 고독의 사전적 정의이다. 같은 하늘 아래에 있지만 ‘나 홀로’라는 고통의 감정을 나타낸다. 고독사의 원인을 세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1인 가구 증가, 외로움과 관계의 단절이다. 또 하나는 청년실업과 경제적 빈곤이다. 코로나19는 관계 단절의 직접적 요인이 되고 있다. 비대면을 촉발하면서 사회적 결핍의 원인이 되고 있다. 출발점은 바이러스로 시작되었지만 방향성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치닫게 된다. 서울시 기준으로 2020년 8월까지 고독사는 118건이었다. 지난 해 69건보다 1.7배 수준이었다. 평균 연령은 63세로 나타났다. 관련 전문가의 예언처럼 빈도는 증가하고 주기가 빨라진다는 것을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사회적 이슈화하여 머리 맞대고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때가 되었다.
외로움과 건강수명
얼마나 오래 사느냐 보다는 건강하게 언제까지 지낼 수 있을까에 더 관심이 높다. 평균수명보다 건강수명이 더 중요하다. 실질적으로 미국에서는 건강수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나라 2019년 기준 유병기간은 약 17년으로 나타났다. 건강수명이 64.4세이다. 건강수명 연장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화두이다.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김형석교수는 1920년에 태어나 백수를 넘기셨다. 지금도 집필 작업을 하고 있다. 강단에서 또렷하게 자신의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 건강은 누가 지키는 것일까? 건강은 무엇으로 지켜질까?
건강함은 행복에서 출발한다. 외로움은 행복의 반대편에 있다. 외로움과 행복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 건강수명을 늘리는 방법이다. 17년의 유병기간을 줄여야 자신도 사회도 튼튼해진다. 튼튼한 사회는 웃음이 넘친다. 활력이 샘솟는다. 제1차 은퇴시기(2019년 49.4세)에 자존감이 크게 허물어진다. 자존감 상실은 은둔형이 된다. 자신을 꽁꽁 숨기려 한다. 스스로 사회적 왕따를 자처한다.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아무도 관심이 없다. 스스로 동참하려 노력해야 한다. 타인을 존중하면서 말이다.
‘때문에’가 아닌 ‘덕분에’, ‘나 홀로’가 아닌 ‘더불어’가 일상의 기준이 될 때 자존감은 회복된다. 자존감 회복은 열정을 끌어 올리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자신감은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명의(名醫)이다. 사회적 무거운 분위기를 치유할 수 있는 보약이다. ‘때문에’는 관계 단절의 단초이다. 자신뿐 아니라 타인을 원망하게 된다. 원망은 곰팡이처럼 그늘을 만든다. 습한 기운은 몸은 무겁게 한다. 무거운 마음은 웃음과 멀어진다. 행복해 질 수 없다. 외로움도 습관의 결과물이다. 누가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덕분에’라는 감사의 마음으로 먼저 다가가야 한다. 다가갈 때 ‘나 홀로’에서 탈피할 수 있다. ‘우리’라는 ‘더불어 사는 삶’의 울타리에서 함께 지낼 수 있다. 사회적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다. 외로움을 이겨낸다는 것은 당당함이다. 건강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 유병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첩경이다.
추억은 아름답다. 아픈 과거도 추억이다. 추억을 곱씹으면서 내일을 꿈꾼다.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지 말자.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은 미리 하지 말자.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 외로움의 시발점은 걱정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진단해 본다. 외로움은 생각근육의 나약함에서 비롯된다. 방어적 태세보다는 진취적 사고가 생각근육을 튼튼하게 해 준다. 일상은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 매 순간 변한다. 보이지 않을 뿐이다. 변화에 적응해 나갈 때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과거 명함에 연연하면 외로움에 갇히게 된다. 노년이 되면 모든 것이 바뀐다. 건강수명, 자립수명, 관계수명 등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빨리 인정하는 것만이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다. 사회는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등 이분법적 논리보다는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어울림’이라는 단어를 화두로 플랫폼을 만들어 나갈 때 건강한 사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