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내가 점심으로 먹을 김밥을 준비하고 있다. 아내가 11시부터 강의가 있어서 외부에서 점심을 해결해야 하기에 아내가 좋아하는 김밥을 만들려 한다. 김밥 재료로 무엇을 넣을까 이것 저것 고민해 본다. 먼저 보슬보슬한 밥알과 들기름이 조화롭게 스며들도록 살살 젓는다. 들기름은 없던 식욕도 돋우어 주는 밥도둑이다. 적당히 맛이 나면 볶은 멸치를 넣고 다시 한 번 밥알을 뒤집는다. 뭉개지지 않게 살살 다뤄야 한다. 갓난아기 어루만지듯 아주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올해 농사지어 만든 참외짱아지와 계란지단도 반드시 넣어야 할 재료이다. 준비가 끝났다. 맛있게 먹는 아내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김밥을 정성스럽게 말고 들기름으로 겉을 촉촉하게 덧씌우면 정성과 사랑이 듬뿍 담긴 점심 한끼가 뚝딱 완성된다.
요리는 이타적 마음을 읽는 것이 아니다. 감초처럼 선입견이나 확증편향적 사고가 곁들여지면 안된다. 헤아려야 한다. 요리는 그 요리를 직접 시식하는 사람의 상황에 맞추려고 노력해야 한다. 요리사 기분이나 컨디션에 맞춰 그 날 음식을 한다면 그것은 호불호가 나뉘어진다.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입맛에 맞는 사람만 찾게 하는 음식처럼 말이다. 요리는 대접하려는 상대방의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을 잘 살펴 내놓아야 건강한 음식이자 정성이 가득한 요리이다. 엄마가 이유식 만들 듯이 말이다. 배려하는 마음이 주방에서는 빼 놓을 수 없는 태도이자 마음이어야 한다. 속이 더부룩하여 소화가 잘 안되는 느낌일 때 뻑뻑한 김밥이 당기지는 않을 것이다. 부드러운 죽이나 가벼운 샐러드가 적합할 수 있다. 이처럼 요리는 시식자의 현재 상황을 잘 살펴야 하는 배려의 마중물이자 관계의 디딤돌이다.
하루 세끼 먹는다. 익숙하기에 요리가 별 것 아니라고 여길 수 있다. 요리는 공동체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갖고 있다. 나와 가족, 그리고 사회를 연결하는 연결고리이다. 요리를 못한다는 것은 나를 세상으로부터 두터운 벽을 세워 가족과 분리시킨다.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한다. 요리는 커뮤니케이션이다. 글이나 말로 표현되지 않지만 무수한 무언(無言)의 대화가 담겨져 있다. 무심코 먹는 음식이지만 이 한 끼 식사를 통해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엄마의 바람이 듬뿍 담겨져 있다. 아울러 건강함도 챙기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요리 곳곳에 녹여져 있다. 요리를 앞에 두고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모습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다. “정말 맛있다. 어떻게 했지?!”라는 감탄에서부터 “이 요리 정말 직접 하신 것 맞으세요.”라는 놀라움까지 다양한 표현과 주제가 오가는 것을 말이다. 요리는 이제 엄마만이, 아니 여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쉐프에 남자들이 많다는 것을 상술적으로만 해석할 수 있겠는가. 아니다. 주방은 모두의 공간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부엌은 엄마의 공간이자 아내가 서 있는 자리로 여겨졌다. 이제는 달라졌다. 어제까지는 맞았지만 오늘은 틀린 세상에 살고 있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처럼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가 강하다고 했다. 생존 차원에서 요리는 누구나 필수품이 되었다. 특히 나이 든 남자는 요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이타적 배려에 앞서 이기적 자유를 위해서 말이다. ‘나홀로 여행’이 가능하다. 배우자에게 자유를 줄 수 있다. ‘삼식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다양한 장점이 요리하는 남자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직장은 정년이라는 숫자에 의해 비자발적 정년퇴직을 강요받는다. 허나 주방 일은 정년퇴직이 없다. 평생 그 자리에서 삼시세끼를 준비해야 한다. 누구만의 역할이라고 강요하지 말자. 이제는 그 짐을 나눠지면 어떻까 싶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했다. 레시피가 같다고 맛이 똑 같은 것은 아니다. 손맛에 따라 확연한 차이가 있는 것이 맛이다. 그 만큼 요리는 창의적 작품이다. 더군다나 스토리텔링이 곁들여질 때 그 맛은 더 감칠맛이 있다. 단어(word)와 단어가 합쳐지면 이야기(story)가 된다. 그 스토리가 반복이 되면서 시간이 덧되어지면 역사(history)가 생성된다. 그 역사에 요리사의 철학과 가치관이 버무려지면 많은 이들을 웃게 울게 하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 된다. 스토리텔링이 공감(共感)과 동감(同感), 그리고 호감(好感)을 어우러지면 ‘천상천하 유아독존형’ 음식이 된다. 그 요리에는 요리하는 사람의 사랑과 배려가 가득 넘친다. 맛있게 먹는 아내의 모습을 그려 보면서 내 마음이 훈훈해지는 오전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