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에 접어들면서 인사말이 바뀐다. ‘요즘 잘 지내지. 뭐하면서 지내니?!’가 반가운 표정과 함께 상호간의 인사말이다. 나이가 들면 시간이 넘친다. 젊었을 때 모든 변명의 한 가운데 자리매김했던 ‘시간’이 이제는 정말 처치곤란할 만큼 풍부해졌다. Time Poor에서 Time Rich가 되었는데 그 많은 시간을 무엇을 하면서 지내는지가 궁금하다. ‘남처럼 사는 삶’에서 한 줄기 밝은 빛을 찾아 ‘남 달리 사는 삶’을 갈구하려는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이런 유형의 질문도 나이를 먹으면서 진화한다. 어릴 때에는 ‘너 커서 뭐가 되고 싶어?’였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꿈의 직업(職業)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대통령, 장군, 교사, 의사 등등 어린 나이에 동경했던 몇 가지 안되는 직군으로 답은 정해졌다. 그러다가 20대 갓 지났을 때에는 어른들의 인사가 으레껏 ‘요즘 어디 다니고 있니?’이다. 장소적 개념이 강한 직장(職場)을 묻는다. 왜 질문이 바뀌었을까? 보여지는 것에 강한 유교문화의 유산이 아닐까 싶다. 은연 중에 사회적 서열이 매겨진 직장(장소)을 묻게 되면 답변이 궁핍해 질 때가 있다. 자신이 미래지향적으로 성장할 수 있고 일한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곳이면 이타적 눈치에 자유로워야 하지만, 유교문화가 사회 곳곳에 짙게 드리워진 한국 사회에서는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 그 궁금증도 잠시다. 인생 후반에는 뭐 하는지가 궁금하다. 직업에서 직장으로 질문 포인트가 바뀌다가 다시 직업으로 회귀한다. 결국 ‘일’로 갈무리된다.
오늘 퇴직하면 무엇을 할까? 이 질문에 답이 준비되어 있는가? ‘준비된 자’는 문제될 것이 없다. 내일을 선택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미국 통계에 의하면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답변이 87%에 달한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27%는 ‘선택할 수 없는 삶’을 지내야만 한다. 60%는 ‘남처럼 사는 삶’으로 인생2막을 보내야 한다. 잘못되었거나 틀렸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한 번 주어진 삶이라는 시간을 허투게 보내는 것이 아쉬울 것 같아서이다. 어차피 지나 온 시간은 어쩔 수 없다. 바꿀 수 없다는 것은 진리이다. 다만, 앞으로 다가 올 미래는 내가 얼마나 준비하느냐에 따라 선택지가 다양할 수 있다는 또 하나의 진리가 희망이 되어 기다리고 있음을 외면하지 말자는 것이다.
어느날 저녁 식사자리에서 자녀에게 진학에 관한 질문을 했다. 돌아온 답은 ‘제가 알아서 할께요’, ‘어떻게 되겠지요’였다. 부모 마음은 어떠할까? 태산이 무너질 만큼 큰 한숨소리가 들린다. 억장이 무너진다. 자녀 선행학습에 도움이 된다면 피곤함도 잊고 학원 등록을 위해 새벽잠을 설치면서 몇 시간씩 오픈런도 마다하지 않던 시절도 있었다. 아이는 그것도 까맣게 잊은 채 태평성대 같은 답변을 앵무새처럼 되뇌이면 정말 가슴이 타 들어갈 것이다. 자녀 앞날에 꽃길을 만들려고 새벽잠 설치면서 하루를 시작했지만, 정작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하는 이유는 뭘까? 시간이 없다는 변명은 하지 말자. 시간 탓을 하지 말자. 시간은 아무 죄가 없다. 의지박약증이 완치되지 않은 것 뿐이다. 시간은 저축도 재활용도 되지 않는다. 철저한 소비재이다.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내일의 선택지가 달라진다. 오늘 퇴직하면 무엇을 할지가 명확해진다는 의미이다. 지금 이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반추해 보자.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지 아니면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지 말이다.
미국은퇴자협회(AARP)는 40대 중반부터 인생2막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은 주된 경력에 집중해야 하므로 보조 경력에 투자할 시간적 여력이 넉넉하지 않기에 충분히 시간을 가지라는 의미이다. 필자 또한 만47세에 박사과정에 도전했다. 졸업 논문은 필자가 정년퇴직 이후 사회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제목을 결정했다. 1차 베이비부머 세대 은퇴가 한참 진행될 것이고, 평균수명은 가파른 증가가 예상되면, 공적연금 고갈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큰 그림에서 전직지원시스템을 논문 제목으로 정했다. 경력설계에 관한 영역이다. 잘 맞아 떨어졌다. 약 4년 가까운 시간을 밤잠을 설치고, 모든 관계는 단절하면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적 여유를 모두 쏟아 부은 결과 정년퇴직 이후에도 강의와 컨설팅, 심사, 자문, 칼럼 기고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각자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자신의 역량을 믿어 보자. 긍정 언어의 힘을 빌려 자신을 일깨우자. 남들도 하는데 나도 할 수 있다는 스스로 자신을 업그레이드 해 보자. 그 결과 오늘 퇴직하면 무엇을 할 것인지 바로 답이 나올 수 있도록 말이다. 첫 걸음마가 힘들고 어렵다. 첫 발을 내딛는 순간 그 다음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못하는 것의 원인은 두 가지이다. 모르는 것과 해 보지 않은 것이다. 모르는 것은 배우면 된다. 해 보지 않은 것은 경험을 쌓으면 된다. 쉽게 생각하자. 그리고 쉽게 접근해 보자. 일은 벌어져야 수습할 수 있다. 99%의 생각이 아니라 1%의 행동이 더 중요하다. 지금 당장 실천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