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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ATM기법(챙길 것, 버릴 것, 유지할 것)

- 언제까지 일을 해야 할까

by 개미와 베짱이

지난 1회차에서 85세까지 일을 해야 한다고 심리학회 발표자료를 인용했다. 맞고 틀림을 떠나 현재보다 더 오랜 기간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의 목적도 돈이 아닌 ‘건강한 노후, 가치와 보람된 나이 듦’을 추구하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현실적 자아는 방금 전까지의 ‘나(自我)’로 인해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어느 조각가에 의해 형성된 것도 아니다. 부모 또는 형제자매들에 의해 등 떨미려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오롯이 내 몫이다. 내가 책임져야 할 뿐 아니라 자신이 보듬어 안고 한평생 살아가야 할 모습이다. 이미 과거가 된 어제는 바꿀 수 없다. 다만, 어제까지 잘잘못은 내일을 선택할 수 있는 교보재로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 좋은 것은 좋은 데로, 나쁜 습관은 좋은 습관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몸부림의 불씨이다. 훌륭한 교보재가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활용하지 못한다면 내일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낙타가 바늘구멍 지나갈 만큼 희박해진다. ‘남과 다른 삶’이 아닌 ‘선택할 수 없는 삶’이거나 ‘남처럼 사는 삶’이 될 확률이 높다. 준비하는 자만이 ‘남다른 삶’을 즐길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세상이다. ‘어제는 바꿀 수 없지만, 내일은 선택할 수 있다.’라는 짤막한 한 줄로 생애설계를 정리해 본다.


1980년대에는 현금이 필요하면 은행 창구를 찾았다. 1990년대에는 은행을 이용하는 고객의 편리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무인현금인출기(ATM : automated teller machine)가 마련되었다. 굳이 은행을 방문해야 하는 불편함을 해소시키고 이용의 편리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무인현금인출기(ATM)를 나의 생활습관 바꾸기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싶다. ‘챙기고(attach), 버리고(throw), 유지하고(maintain)’가 필자가 강조하는 ‘ATM 기법’이다. 이 세 가지를 일정 기간마다 냉철한 피드백과 함께 자신의 습관을 수정 보완한다면 영원히 마르지 않는 현금인출기를 소유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해 본다.


먼저. ‘새롭게 챙길 것(attach)’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부정적 가스라이팅 대상이 아니다. ‘타임푸어(time poor)’에서 ‘타임리치(time rich)’가 되는 전환점이다. 그 누구도 비껴 갈 수 없다. 그만큼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는 것이 시간이다. 다만,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순전히 개인의 몫이다. 퇴직은 그동안 한 가정의 경제를 떠받쳐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강박관념에서 한 숨 돌릴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준다. 삶에 틈새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 틈새 사이로 따스한 햇살이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제는 그 따스한 햇살을 즐겨야 한다. 하고 싶은 것으로 말이다. 해야만 하는 것은 조금 내려 놓아도 된다. 아니 강제라도 내려놓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돈 버는 기계야?!’라는 한숨 섞인 독백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오늘 이 일을 그만두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늘 대답할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 대답에 ‘새롭게 챙길 것’이 담겨져 있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이다. 해보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겠는가. 금년 10월에 1974년생 호랑이띠 남성분을 상담했다. 어릴 적에 꽤 부유했지만 한 순간 부친의 사업이 몰락하면서 엄마는 식당으로, 대학교 등록을 마친 내담자는 아르바이트 현장을 전전하면서 대학교는 간신히 시험만 통과하여 졸업하게 되었다고 20대를 복기했다. 이제는 그 짐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가 있게 되었고, 내담자가 하고 싶었던 여행도 준비하고 곧 받아볼 것 같은 ‘블랙카드(희망퇴직)’에 대비해 개인택시를 염두에 두고 자격증까지 취득했다고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개인택시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여행을 하면서 경제적 활동도 병행할 수 있다는 장점을 제시했다. 21세기에 자동차는 필수품목이므로 자가용 겸 영업용 자동차로서 개인택시가 안성맞춤이라는 것도 선택의 기준이 되었다. 우스개 소리로 집에 쌀 떨어지면 쌀값 정도 경제활동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오지탐험을 해 보고 싶다는 소박하지만 탄탄한 계획을 조근조근 설명할 때 부러웠다. 퇴직은 자신에게 이렇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줄 수 있는 선물을 챙겨 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둘째, ‘버릴 것(throw)’이다. 오늘의 나를 만든 다양한 습관 중에 분명 좋은 것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버려야 할 것, 새로운 것으로 챙겨야 할 것 등 바꿔야 할 대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아야 한다. 자신에게 관대한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냉철해야 한다. 비난이 아닌 비판을 통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나이 듦과 연관된 버려야 할 4가지는 ‘자존심, 욕심, 고집, 비교심’이다. 자존심 보다는 사랑을, 욕심보다는 품격을, 고집보다는 관계 개선을 위한 질문 위주의 일상을, 비교심 보다는 내려놓음으로 마음챙김이 어떨까 싶다. 이렇게 완전히 버려야 하는 것도 있다. 4 가지 이외에도 최근 회자되고 있는 ‘라떼문화’는 세대간의 소통이나 동년배들과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도 버려야 한다. 나이 들어 과거를 들추는 것 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일부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잠시 보류해야 할 것도 있다. 목표한 자격증 취득을 위해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남을 일정 기간 미뤄 보자. 필자는 47세에 박사 학위 도전할 때 가까운 지인들에게 4년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나이 들어 막걸리 값이라도 낼 수 있는 일거리를 창출하려면 지금 4년 정도는 투자해야 한다라고 푸념 아닌 푸념을 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자신이 갖고 있는 습관 중에 라떼문화처럼 유효기간이 지났거나, 트렌드에 맞지 않는 것, 삶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미련을 두지 말자. 오십 넘어 퇴직하면 모든 것이 종전과 다른 삶이 된다. 소속이 바뀌면서 공간과 소득이 변한다. 그 변화 속에 관계도 어느 새 예전같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부분을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계획이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 계획에 버릴 것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유지할 것(maintain)’이다. 지금 나의 모습이 있기까지 물심양면 도움이 된 장점은 잘 간직해야 한다. 간직하는 것으로 끝나면 안된다. 보다 발전할 수 있도록 튼실하게 근육을 강화시켜야 한다. 자신의 강점은 갈고 닦아 칼날이 무뎌지지 않게 해야 한다. 녹슬면 안된다. 칼집에 있더라도 언제라도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평생교육을 통해 말이다. 디지털의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지식과 경험의 유효기간은 반대로 점점 짧아진다. 그 짧아짐에 익숙하다 보면 어느 새 자신의 강점은 모두 소멸되고 없다. 듣기 좋은 말로 소멸은 재생의 밑거름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나이 들어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여간 강심장이 아니면 쉽지 않다. 소멸되기 전에 불씨를 살려야 한다. 유효기간을 연장해야 한다. 그 연장이 자신의 차별화이자 다양한 경력 파이프라인(pipeline)의 한 축을 담당한다면 노년은 풍요로워질 뿐 아니라, 사회적 쓰임새로 생동감 있는 ‘나이 듦’을 보낼 수 있다.


나이 들면서 나를 이해 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 무엇일까?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이해하는 시간에서 ‘새롭게 해 보고 싶은 것, 버려야 할 것, 유지하고 싶은 것’을 찾아보면 어떨까 싶다. 유교문화가 지배했던 1990년대까지는 이타적 평가에 자유롭지 못했다. 디지털 발달과 코로나19가 세상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초개인주의로 말이다. 초개인주의는 이타적 시각보다 이기적 성찰에 더 관심이 높다. 보여지는 것보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 지에 대해 말이다. ‘나이 듦’을 사랑하고 존중하자. 멋있게 나이 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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