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일을 해야 할까
한 차례 광풍이 지나갔다. 농한기처럼 당분간 글쓰기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의 틈새가 생겼다. 내년 1월말에는 남과 다른 삶을 지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암묵지를 형식지로 변환하여 세상에 내 놓으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오늘 주제는 ‘언제까지 일을 해야 할까’ 3화 ‘결과보다 과정을 즐겨야 하는 이유’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빠른 성장을 이룬 대한민국은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해 왔다. 오죽했으면 ‘가다가 아니가면 아니간만 못하다’라는 속담이 있을까! 그런데 소제목은 왜 거꾸로일까?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 마냥 말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이 가능하다. 하나는 ‘내 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하늘의 명을 깨닫는 지천명(知天命)이 되면 목적지까지 가는 과정을 즐길 줄 아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가다가 아니가면 간 건 만큼 이득이다’라고 속담이 바뀌어야 할 때이다.
첫째, ‘내 것’을 찾는 것이다. 내 것은 경력(career)이자 직업(occupation)이다. 직장(office)은 ‘남의 것’이다. 사회 초년생의 직장생활은 미완성된 ‘내 것’을 가지고 직장이라는 ‘남의 것’에 입주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입주기간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정 연령이 되면 퇴거 명령을 받는다. ‘남의 것’으로부터 나가 달라는 통보를 받게 되면, ‘내 것’ 하나만 달랑 들고 허허벌판으로 나 앉는다. 홀로 서 있음을 깨닫기 까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비록 ‘남의 것’이었지만 직장이라는 울타리가 허물어지고, 죽는 날까지 함께 할 것 같았던 동료들은 3개월이 채 되기 전에 스마트폰에서 멀어진다. 자신을 더 어렵게 하는 것은 퇴직 당시 들고 나왔던 ‘내 것’의 유효기간과 완성도이다. 유효기간이 지난 ‘내 것’은 더 이상 쓰임새가 없다. 더더군다나 완성도가 떨어진다면 정말 큰 일이다. ‘부캐’시대이자 ‘N잡러’시대에 쓰임새 없는 ‘내 것’을 들고 있다는 것은 정말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어려서부터 꿈을 찾아 헤맸던 기억이 있는가? 이 질문에 베이비부머 세대 대부분은 망설임 없이 ‘없다’라고 답을 한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중반 이전에는 배고픔을 달래고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학교 졸업과 동시에 ‘돈벌이’를 찾아 헤맸다. GDP가 100불도 채 되지 않았다. 꿈은 교과서에서나 봐 왔던 형이상학적 단어였다. 꿈은 현실에서 사치스러울 뿐이다. 이 와중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선택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갈 만큼 어려운 일 중 하나였다. 그 시간이 반복되면서 ‘꿈을 쫓아’라는 글귀가 자연스럽게 희미해졌고 현실 안주에 익숙해졌다. 그 결과 퇴직할 때 손에 쥔 ‘내 것’은 유효기간이 지났거나, ‘경력활용’이 어려운 ‘내 것’일 확률이 높아졌다. 서울에 있는 자동차 정비업소가 최근 5년간 약 1천여개가 문을 닫았다. 그 이유는 매년 전기자동차와 수소자동차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내연기관 중심의 자동차 정비기술이 설 땅이 점점 좁아졌기 때문이다. 잘 하는 것의 유효기간이 임박하거나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것은 허허벌판에 서 있는 자신을 더욱 움츠리게 만든다. 삭풍에 온몸을 떨 듯 말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새롭게 출발하자. 퇴직이 선물한 청년을 즐겨 보자. 주된 직장에서 물러나는 49.3세는 왕성하게 일할 나이이다. 손에 잡히지 않는 ‘내 것’이라는 결과에 집착하지 말자. ‘내 것’을 만드는 과정을 즐겨 보자. 잘하는 것을 하다 보면 좋아할 수도 있고, 좋아하는 것이 반복되면 잘 하는 것이 될 수 있다. 단계별 과정을 즐기는 여유를 갖자. 조바심은 과정 즐김에 걸림돌이다. 걸림돌을 디딤돌로 바꿀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무쇠소녀단2’ TV 프로그램에 설인아가 과정을 즐기면서 자신이 잘 하는 것을 찾은 대표적 사례이다. 설인아는 1996년생으로 태권도 유단자이자 주짓수를 좋아하는 배우이다. 프로그램 미션은 ‘복싱 챔피언 도전기’였다. 한 번도 복싱을 배워 보지 않았던 설인아는 촬영을 위해 복싱을 처음 접했고, 실제로 복싱 경기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받았다. 복싱을 배우는 과정에서 자신이 복싱에 적성이 있다는 잠재성을 깨닫게 되었고, 프로그램 종영 이후에도 지금까지 복싱을 하고 있으며 실업팀 입단을 준비하고 있다. 잘 하는 것이자 좋아하는 것을 찾게 된 것이다. 찾게 된 것은 프로그램 목표인 복싱 챔피언이 아니었다. 챔피언 도전 과정에서 복싱의 매력과 함께 잠재력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바로 이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 어릴 때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겨를 없이 취업전선에 뛰어 들었던 베이비부머 세대는, 무난함을 넘어 성공이라는 단어가 연상될 만큼 중년기를 잘 보냈지만 퇴직할 때에는 변변치 않은 ‘내 것’에 불안함과 두려움을 떨칠 수 없다. 이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잘하는지를 찾아내고 길러 보자. 인생백세시대이다. 시간은 내 편이다. 시간은 충분하다.
둘째, 지천명(知天名)의 ‘여유’이다. 불혹의 40세를 지나고 하늘의 명을 깨닫는 나이 50세가 되면 중년기의 무게감을 느끼게 된다. 무게감 만큼이나 세상의 이치에 눈을 뜨게 된다. 당장 눈 앞에 맞딱뜨린 문제 해결에 급급했던 시절은 옛말이 되었다. 거시적으로 세상을 조망할 수 있는 시간의 틈새를 즐길 줄 아는 연령이 되었다. 불을 쫓아 날아다니는 불나방처럼 모든 판단 기준이 경제적이었던 시절에서 한 발 물러서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나이 들면서 바뀌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내 것’에 대한 정의이다. 경제활동이 주된 목적일 때에는 ‘내 것’의 판단 기준은 경제적 가치이다. 지천명을 지나 이순(耳順)이 되는 60세가 되면 ‘경제적 가치’보다 사회적 ‘역할’에 무게감을 두어야 한다. 즉, 사회적 쓰임새가 있다는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일부 직업을 제외한 대부분 직업은 60세가 지나면서 경제성에 대한 사회적 평가기준이 야박하리 만큼 박하다. 60세 이상 약 75%가 경제활동 월 평균값이 3백만원 이하라는 통계가 현실을 대변한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즐기자. ‘내 것’의 쓰임새가 있다는 것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할 일’이 있고, ‘갈 곳’이 있으며, ‘만날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적 건강, 육체적 건강, 정신적 건강을 챙길 수 있는 ‘내 것’에 감사하며 하루 하루 과정에서 인사이트를 찾아보자. 어릴 때 소풍 가서 보물찾기하듯 말이다. 인사이트는 ‘내 것’을 확장시키는 마중물이기도 하다. 마중물이 좋아 하는 것, 잘하는 것과 연결시켜 주는 오작교일 수도 있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 하지 않았던가! 허툰 경험은 없다. 버릴 것이 없다. 결과까지 도달하는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 정보는 자신의 삶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보배이다. 결과에 집착하지 말자. 여유를 갖고 과정을 즐기자. 과정이 던지는 함의를 되새겨 보자. 또 다른 도전의 버팀목이자 디딤돌이 되는 과정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