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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53세에 회사 떠나는 김부장을 보면서

언제까지 일을 해야 할까?

by 개미와 베짱이

52.9세 2025년 12월 2일 중앙일보에 소개된 ‘53세에 회사 떠나는 김부장을’ 보면서 숫자에 얽힌 현실을 읊조려 본다. 1964년생부터 1974년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된 일자리에서 물러나는 평균연령이 52.9세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통계청이 조사한 49.3세보다는 약 3년 6개월이 더 길다. 인생 백세시대에 만족할 만큼 긴 시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마음 졸이면서 50대 초반을 맞이한 김부장이 사업 부진에 따른 희망퇴직을 권고받으면 눈 앞이 캄캄해진다. 삭풍이 부는 허허벌판에 들고 나온 것은 경력 하나뿐이다. 그동안 갈고 닦았던 경력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으로 버텨 왔는데, 사회 어느 곳에서도 발붙일 곳이 없다면 쓸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대부분 재취업자들이 종전의 경력과는 무관한 자리를 선택한다.

69.5% 주된 일자리가 사무 서비스직이었던 희망퇴직자가 재취업할 경우 직종 이동 비율이다. 10명 중에 7명이 기존 경력을 활용한 이직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2025년도에는 AI가 전광석화처럼 사무실로 밀고 들어 와 사무직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AI 동료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이다. 그 결과 지난해부터 사무 서비스직 대상으로 한 구조조정이 휘몰아치고 있다. AI는 사무 서비스직이 켜켜이 쌓아 두었던 경력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장본인이기도 하다. 변화 트렌드에 둔감했던 자신을 탓해야 하지만, 뭔가 아쉬운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왜 경력 파이프라인을 강조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시대는 한가지 경력으로 버티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다. 외줄 타는 것과 진배없다. ‘부캐’, ‘N잡러’와 같은 신조어가 왜 생겼는지 스스로 자문자답(自問自答)을 해 볼 때이다. 유효기간이 지난 ‘내 것’을 움켜쥐고 있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유효기간이 지난 경력은 소생할 확률 또한 거의 없기에 퇴직 이후 기다리는 삶은 내가 원하지 않는 모습일 것이다. ‘남과 다른 삶’을 원하지만 기다리는 것은 ‘선택할 수 없는 삶’ 또는 ‘남처럼 사는 삶’이 될 수 있다. 그 삶이 진정 원하는 모습은 아닐텐데 말이다.

70% 55세 이상 79세까지 설문조사 결과 일하기를 원하는 비율이다. 2025년 5월 기준 55세 이상 79세 고령층 경제활동인구가 천 만명을 넘었다. 이들 중 계속 일하기를 희망하는 비율이 10명 중 7명이다. 일하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그 중 으뜸은 경제적 이유이다. 생활비 부족이 은퇴 이후에도 생활 전선으로 내몰리는 가장 큰 원인이다. 궁극적으로 자산이 부족한 것도 있겠지만,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이라는 것도 한 몫 거든다. 자산의 74.6%가 부동산에 투자되어 있어 현금흐름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 백세시대에는 ‘얼마가 있으면 될까?’에서 ‘매월 얼마가 필요할까’로 질문이 바뀌었다. 매월 현금흐름 창출 능력이 부족하면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나이 듦에도 불구하고 일터로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매월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을 만큼 자산 포트폴리오가 잘 구성되어야 하는 것도 은퇴설계 중 꼭 챙겨야 할 항목 중 하나이다. 그렇지 않으면 중장년기까지 일만 하던 생활 패턴이 노년기에도 줄곧 이어질 확률이 높다. ‘하고 싶은 일’을 즐겨야 할 나이에 ‘해야만 하는 일’에 종속된다면 얼마나 짠하고 슬프겠는가.


73.4세 경제활동인구의 70%가 일하고 싶은 연령 마지노선으로 73.4세를 선택했다. 52.9세에 주된 일자리에서 물러나면 약 21년을 더 일하기를 원한다. 자신이 갈고 닦았던 경력이 아닌 다른 직종으로 이동하면서 말이다. 이동할 수 있는 직종이 준비되어 있다면 무엇을 걱정하겠는가. 현실적으로 준비한 퇴직자는 거의 없다. 그래서 한숨이 나오고 안타까우며 쓸쓸하다. 2차 노동시장은 주된 일자리와 처우가 사뭇 다르다. 아니 완전히 다르다는 표현이 맞다. 금전보상 수준에서부터 일자리의 질적 수준까지 모든 면에서 주된 일자리와 비교하면 형편없다. 그것을 감내하면서 까지 20년 이상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자존감이 무너져 내릴 수 밖에 없다. 이제는 준비된 자만이 ‘남과 다른 삶’을 누릴 수 있다. 준비되지 않으면 선택권이 거의 없다는 것이 정답이다. ‘어떻게 되겠지’와 같은 안일한 대처는 노후의 삶을 팍팍하게 만든다. 어쩔 수 없이 ‘생계형 일’을 해야 한다면 그 시기를 최대한 단축해야 한다. ‘여가형 일’로 전환할 수 있도록 계획과 실행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말이다. ‘여가형 일’은 전투적 삶이 아니라 여유와 행복이 버무려진 즐기는 삶이다. ‘여가형 일’은 경제적․육체적․정신적 건강을 지켜 주는 종합비타민이자 만병통치약이다. 건강은 좋은 것을 먹는다고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과 맞지 않는 것을 피하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첩경이다.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어야 옷태가 난다. 좋아하는 것,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준비하자. 준비된 경력으로 은퇴 이후 삶을 즐길 권리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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