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무기력씨, 엘리자베스를 내가 죽을 때까지 함께 가야 할 친구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운동, 독서, 일기 쓰기, 명상 등등 갖은 방법을 총동원해도 그녀를 쫓아낼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혼자의 힘으로 엘리자베스를 상대하는 것이 벅차서 얼마 전부터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얘기해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의사 선생님은 나를 면밀하게 관찰하며 질문을 던졌다. 당분간은 꾸준히 치료를 받으면서 엘리자베스의 손을 잡고 넘어지지 않는 방법을 터득해야겠다.
이번 이야기는 내가 병원을 다닌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갈 무렵의 일이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작성한 문진표를 보면서 지금 나의 상황을 물컵에 비유해 주었다. 그러니까 환자분은 컵이 넘칠 때까지 계속 물을 붓고 있는 중인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누구나 다 우울하다고, 안 우울한 사람 하나 없다고 말하던 엄마가 떠올랐다. 그 말을 필두로 엄마는 자신의 시집살이와 결혼생활에 비하면 나는 괜찮은 편이라는 말을 항상 덧붙였다. 그럴 때면 나는 내가 꼭 불안정한 결혼 생활 하나만으로 우울해하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그래도 그것이 엄마가 딸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위로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알겠다고만 대답했다. 엄마의 말대로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우울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니 좀 더 버텨보기로 했고, 그렇게 마음먹은 후론 더 이상 가족들에게 나의 기분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게 되었다. 그렇게 참고 참다가 결국 병원으로 되돌아왔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가장 견딜 수 없었던,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느끼는 절망감에 대해 털어놓자 선생님은 항우울제를 처방해 주었다. 초반엔 약에 대한 반응을 확인해야 하므로 이주 치의 약만 받아왔다. 약을 먹은 지 일주일째였으나 아침마다 밀려오는 절망감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여느 때와 똑같이 눈을 뜨며 느껴지는 절망감은 엘리자베스가 찾아왔음을 알렸다. 아무리 내가 그녀를 평생 친구로 받아들였다고는 해도 월요일 아침부터 맞닥뜨리는 건 썩 달갑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월요일 아침의 평온함을 망쳐놓은 것도 모자라 걸핏하면 아이에게 짜증을 내는 엄마로 만들었다. 이때는 아이를 데리러 갈 때까지 살짝 넋이 나간 상태로 오전 시간을 보냈다. 습한 날씨 때문에 온몸이 눅눅하게 젖어드는 것 같았다. 높은 습도가 마음까지 물들인 탓에 무거운 몸을 꾸역꾸역 이끌고 아이와 집으로 돌아오니 온몸을 지탱하던 힘이 다 빠져나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소파 앞에 거의 기어가다시피 걸어가 털썩 주저앉았다. 아이는 책가방을 내려놓다 말고 배시시 웃으며 다가와 내 다리 위에 제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았다. 그나마 기분이 괜찮을 땐 아이를 뒤에서 끌어안기라도 했는데 그럴 기운조차 없었다.
'뭐 해. 애한테 얼른 가방 정리하고
손 씻고 오라고 해.'
잠깐의 휴식조차 허락되지 않음을 엘리자베스는 마뜩지 않아했다. 그녀의 말대로 곧장 팔을 뻗어 아이의 등을 살짝 떠밀었다. 가방 정리하고 와. 학원 갈 준비 해야지. 의도치 않게 쌀쌀맞은 목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하지만 아이는 꿈쩍도 안 하고 버티고 앉아서 자길 안으라고 했다. 또 시작이구나. 둘 중 누구 하나는 울어야지만 끝나는 신경전에 급격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혼자 초조해져서 시계를 한 번 쳐다보았다. 아이가 다니고 있는 학원 건물에 수학 학원이 들어온 이후로 매일이 주차 전쟁이었는데, 그 치열한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좀 더 빠릿빠릿하게 준비해서 집을 나서야 했다.
아이의 어깨를 붙잡고 차분하게 우리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못하고, 조금 있으면 출발해야 한다. 이렇게 오래 앉아있을 시간이 없다. 그러나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아이에겐 널 안아줄 시간이 없다는 말로 들렸을 것이다. 예상대로 아이는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안아줘,라고 아까와 똑같은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짙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냥 한 번 안아주고 아이를 보내면 될 일인데 이상한 데서 자존심을 부리는 스스로가 갑갑하기도 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마음속에선 감정이 휘몰아치고 있었고, 폭발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러기 전에 어떻게든 이 상황을 매듭지어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엘리자베스는 끝을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참지 마. 화를 내. 그래야 애도 말을 듣지.'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귓가에서 삐-하는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는 마치 신호탄과도 같았다. 이명이 들려오고 눈 주위가 뜨거워지더니 순식간에 눈앞이 새하얘졌다.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학원 안 갈 거야?"
한 번 터져버린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거세져 결국 아이에게 불똥이 튀었다. 내가 거칠게 아이를 밀어내자 힘없이 밀려난 아이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단 하루라도 조용히 지나갈 수는 없는 걸까. 우는 아이를 멍하니 보고만 있는 나를 엘리자베스가 어디선가 지켜보며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 엄마가 집에 오면 맨날 안아준다고 했잖아."
울먹이는 아이의 목소리가 순간 내 머리를 세게 내리치고 지나갔다. 작년 여름, 아이는 두 달간 심리치료를 다닌 적이 있었다. 그때도 나와 아이 아빠의 사이는 수시로 삐걱댔었다. 제 딴에는 내색을 안 한다고 한 것이겠지만 불안했던 아이의 마음은 여과 없이 틱으로 터져 나왔다. 상담을 마친 후 선생님은 내게, 아이가 집에 돌아오면 아무 말 없이 꼭 안아주는 시간을 가지라고 했다. 그래서 아이와 나는 매일 서로를 껴안았다. 가방이 어질러져있어도 괜찮았고, 아이가 바로 손을 씻지 않아도 나는 아이를 향해 먼저 팔을 벌렸다. 그러면 아이는 나에게 달려와 폭 안기곤 했다. 그 덕분인지 아이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거기다가 선생님의 조언은 아이에게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꽤 좋은 영향을 주었다. 콩콩콩콩, 하고 내 마음에 노크를 하는 듯한 아이의 심장박동 소리와 아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기는 내게도 많은 위안이 되었다.
치료가 끝나고도 얼마동안은 계속 아이를 안아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나의 조급함이 보채는 바람에 아이도 나도 바빠진 것이 이유라면 이유였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만 바빴다. 아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신나게 늘어놓을 때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아이의 말을 중간에 자르기도 하고, 이따가 들어줄게라는 말로 아이와의 시간을 계속 미루기만 했다. 무기력이 심할 땐 쉴 새 없이 떠드는 아이의 목소리가 나의 숨통을 조여왔다. 자꾸만 가라앉으려는 나의 멱살을 잡아끌고 가까스로 하루 일과를 끝낸 뒤 곤히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볼 때면, 무기력 때문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둘씩 머릿속에서 되살아났다.
하루 종일 힘없이 축 처져 있는 나, 그런 나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한 번이라도 엄마에게서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했을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엘리자베스에게 휘둘리고 있을 동안 아이도 제 나름대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엘리자베스를 아예 안 보는 건 어려울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나의 눈을 가리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엄마 미워, 하며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기 바빴다. 그저 잠깐이면 되었는데. 그 잠깐도 아이에게 내어줄 수 없었던 속 좁은 엄마는 또 이렇게 아이의 마음에 구멍을 내고 말았다.
"엄마가 미안해."
아이가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품에 쏙 들어오는 자그마한 아이의 체온이 얼마나 따뜻한지,
콩콩콩콩 뛰는 심장소리가 어쩜 그리 앙증맞은지, 무기력에 빠져서 하마터면 이 모든 것들을 놓치고 지나칠 뻔했다. 못 이기는 척 나를 안아주는 아이를 꼭 안고 우리는 화해를 했다. 긴긴 싸움이었다. 앞으로도 아이와의 신경전과 무기력을 견뎌내는 일은 수없이 반복이 되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지겹도록 싸우더라도 우린 다시 사랑할 수 있고, 그 사랑만 있다면 나의 무기력씨 엘리자베스도 내게서 그리 오래 머물진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