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산은, 그 자체로 두려움이다.
모든 것이 다 처음이라서.
혼란스럽고, 어렵고, 매 순간이 서툴다.
그래서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육아라는 전혀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었을 때
가장 먼저 찾게 된 건 ‘정답지’였다.
'산후조리원은 어떻게 골라야 하지?'
‘아기가 이렇게 자주 깨는 게 정상일까?’
'이유식은 언제 시작하지?’
막막하고 지친 마음에 누군가 정해둔 길이 있다면, 그냥 그 길을 따라가고 싶었다.
그때, 맘스홀릭이라는 대한민국 대표 육아 커뮤니티를 알게 됐다.
군더더기 없이 훌륭한 정보의 바다였다.
궁금한 건 이미 누군가가 물어봤고,
모르는 건 검색만 하면 대부분 나왔다.
하지만 이내 또렷하게 느껴졌다.
정보는 충분했지만, 정답은 없었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더 혼란스러웠다.
누구는 이렇다 하고, 누구는 저렇다 하고..
한 전문가는 이렇게 말하는데,
다른 전문가는 정반대의 말을 한다며.
특히 신생아 시기는 아기마다 편차가 너무 커서,
“권장 수유량은 100~120ml”가 아니라 “100~300ml 사이" 라는 식이었다.
정보를 나눠주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 정보를 내 아이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었다.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다양한 정보들을 모두 소화하고 내려야 하는 결정과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그래서
두려움과 피로감은 해소되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정보성 글보다,
그날 하루를 털어놓은 엄마들의 일상 기록에서 더 큰 위로를 받았다.
그들이 쓴 소소한 문장들 속엔
나처럼 헤매고, 나처럼 안도하고,
나처럼 울고 웃던 순간들이 담겨 있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 혼자만 그런 건 아니구나’, '모두 비슷하구나'라는 생각에
묘하게 마음이 놓이곤 했다.
그 즈음, 나는 ‘베이비타임’이라는 어플을 쓰고 있었다.
아이의 수면, 수유, 배변, 놀이 시간을 시간 단위로 꼼꼼히 기록할 수 있는
기능적인 필수 어플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수유 시간 확인용으로 썼다.
몇 시에 먹었는지, 몇 시간 간격으로 자는지
그런걸 체크하려고 시작한 앱이었다.
어느 날, ‘성장일기’라는 기능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엔 부모가 자발적으로 쓴 아이들의 성장 기록이 담겨 있었다.
비슷한 시기의 다른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아, 하루는 유난히 잠을 자주 깨는 편이구나.”
“하루는 또래보다 수유량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덜 불안해졌다.
이유를 몰라 답답했던 마음도 “다들 겪는 성장 과정이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감으로 바뀌는 순간들이 잦아졌다.
그리고 그 안에는,
아이와의 하루하루를 소중히 붙잡아두려는
수많은 부모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오늘 처음 웃어줬어요.”
“드디어 뒤집었어요.”
"믿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글에서든 빠지지 않던 말들.
“사랑해.” “축하해.” “고마워.”
아이의 성장 기록만이 아니라
그 성장을 바라보는 부모의 벅찬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힘들다, 지쳤다는 고백도 많았지만
신기하게도 글의 말미에는 늘 사랑이 가득했다.
그 모든 고단함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아이를 향한 다정한 시선으로 끝나는 글들.
그리고 어느 날은, 나도 그랬다.
갑자기 복받친 감정에,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기를 누가 읽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오늘,
내가 느낀 이 벅찬 감정을 기록해 두고 싶었다.
밤과 낮의 경계가 사라진 삶,
끝없이 반복되는 집안일 속에서
내 몸과 마음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되묻던 시기였다.
그러다가도
하루가 나를 올려다보며 웃고,
의미는 알 수 없지만 마음이 담긴 듯한 옹알이를 들을 때면
어느새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리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혼자 하루를 돌보다 잠이 들었는데,
하루가 먼저 깨어 앙!앙! 나를 부르고 있었다.
앙앙 하는 그 소리가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문득, 그 생생한 찰나를 꼭 붙잡아 두고 싶었다.
지나가기엔 너무 찬란하고,
나만 알고 있기엔 아까운 순간.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서, 글을 남겼다.
그날 이후 ‘더 자주 기록해야지’ 다짐했지만,
현실은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하는 하루하루는 분명 아름다웠지만,
그만큼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일상을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숨이 벅차
기록은 점점 간격이 벌어졌고,
결국 끈기 있게 이어가지 못했다.
그리고
더 이상 굳이 기록하지 않아도
먹고, 놀고, 자는 하루의 리듬이
몸에 익기 시작한 돌 무렵부터는
베이비타임 앱을 켜는 일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렇게
내가 벅찬 마음으로 눌러 담았던 기록들은
누구에게도 꺼내 보이지 못한 채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시간 속에 묻혀버렸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베베닉스의 온라인 채널을 기획하던 어느 날,
인스타그램과 블로그 같은 익숙한 플랫폼들을 떠올리다가
문득, ‘커뮤니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내가 베이비타임에 벅찬 순간들을 홀리듯이 기록했듯,
순수하게 자신의 감정과 하루를 남기고 싶어 하는
부모들이 분명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베이비타임이 ‘일기’라는 서브 기능으로 우연히 하루의 감정을 담아냈다면,
우리는 그 '감정 공유' 자체를 커뮤니티의 '메인 기능'으로 삼고 싶었다.
누군가는 단 하루의 기억을,
또 누군가는 몇 달의 감정을
차분히, 차곡차곡 쌓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아이와 함께한 일상 속에서 소중했던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기록되고
때로는 지칠 때마다
그 기록을 꺼내어 다시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공간.
나는 그런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었다.
맘스홀릭은 정보 검색과 질문/답변 중심의 구조로
임신 중 필요한 정보나 화제의 이슈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훌륭한 커뮤니티다.
하지만 동시에 또렷하게 느껴졌다.
정보는 넘쳐났지만, 마음은 머물 곳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다른 공간을 상상한다.
돌봄의 과정에서 느끼는
기쁨, 희망, 감동, 뿌듯함 같은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넘치고
누군가의 자랑도, 누군가의 고백도
눈치 보지 않고 나눌 수 있고, 기꺼이 환대받는 공간.
그 어떤 말도 정서적 언어로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
새로운 우주에 발을 대디딘 새로운 부모들의
하루하루 만들어가는 찬란한 일상들이
그대로 존중받고, 기끼어 공유될 수 있는 공간.
육아는 정보가 많다고 잘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
마음이 견뎌야 하고, 감정이 붙들어줘야 하며,
무엇보다도 ‘같이 가는 느낌’이 있어야
비로소 끝까지 웃으며 걸어갈 수 있는 여정이니까.
베베니티는 그래서 시작한다.
우리의 하루가 닮아 있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베베니티에서는 육아가 조금 덜 외롭고, 삶은 조금 더 다정하게 느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