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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4]복직 후 돌연 이직을 결심한 이유

아이를 낳고 바뀐 12년 마케터의 이직 기준

by BEBENIX

육아 휴직을 하고 엄마가 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앞으로의 회사 생활에 대해 크게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고 한다.


1. 회사는 적당히 용돈벌이나 생활비 보탬용으로 다니거나, 그만두고 아이를 양육하는데 집중한다.

2. 회사 생활은 자아 성찰을 위해 꼭 필요하다. 치열하더라도 육아와 회사를 병행한다.


내 경우에는

육아를 시작하기 전에도 2를 선택할 거라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아이와 함께하며 느끼는 행복감과는 별개로

일을 하면서 느끼는 성취감이 없으니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었다.



복직에 대한 열망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져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출산 후 6개월 만에 복직했다.

(운 좋게도 돌 이전까지는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시댁에서 아이를 돌봐주시기로 했다.)



복직 후 사람들과 교류하며 내 몫의 일을 해 나가면서 다시 삶의 밸런스를 찾았다고 느꼈다.


하지만 회사에 적응할수록,

그에 비례하는 만큼

내가 해야 하는 일들과 내가 다니는 회사가 하는 선택들이 묘하게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는 사모펀드에서 운영하는 회사였는데

모든 의사 결정의 기준은 '회사의 수익성' 이었고,

장기적인 비전보다는 단기적인 이익을 중시하는 문화가 팽배했다.

'소비자 삶을 풍요롭게 만들겠다'는 선언적인 미션은 사실상 포장지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에는 내가 담당하는 브랜드나 제품에 대한 애정이 있었고,

주어진 업무를 잘 해내고 있다는 개인적인 성취감으로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니 가중치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와 있는 시간 대신 일을 선택한 만큼,

내가 하는 일의 가치가 단지 개인적인 성취감에서 그친다는 게 아쉬움이 되었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일에 몰입하는 것이, 회사가(=주주들이) 돈을 많이 버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게 어쩐지 참을 수 없이 거슬렸다.



자고로 마케터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나아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는 업이 아닌가?


가능하면, 내가 몰입해서 하는 일들이 사람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사회에 이로운 기여를 해야 한다는 소명 같은 게 본격적으로 머리를 들었다.


마케터로서, 또 엄마로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 일에 기여하고 싶어졌다.




특정 시점이 되자 이직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더 이상 내 가치관과 맞지 않는 곳에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헌신하고 싶은 회사에 대한 기준도 명확해졌다.

1. 창업자가 본인의 철학을 갖고 사업을 영위하는 곳일 것.

2. 그 철학이 '본인의 이익'이 아닌 '소비자=사람'을 향할 것.

3. 그리하여, 내가 하는 일이 '소비자=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곳에 쓰일 것.



회사와 제품을 포장하여 소비자를 기만하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고 싶은 곳이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본격적으로 구직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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